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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중국집 사장 '연수입 10억' 눈물의 창업기

조회수 2018. 11. 5. 14: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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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 프랜차이즈 '최고루'
14개 체인점 주무르는 사업가로 변신
매달 순수입 5000만원 이상
배달, 주방장도 척척 밑바닥부터 시작한 성공의 길

프로 운동선수가 은퇴 후에 매달 현역 시절 연봉만큼 번다?

 

이런 꿈 같은 이야기를 실현한 사람이 있다. 바로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連覇)를 할 당시 주전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던 최해식(49). 그는 지금 중국음식점 '최고루'의 사장이다.


선수 생활 은퇴 이후 2004년부터 14년째 ‘최고루’를 운영 중이다. 최고루는 광주광역시 지역에 14개 체인점을 거느리고 있다. 선수 시절 5000만원대의 연봉을 받았던 최해식 대표는 요즘 매달 당시 연봉 이상의 돈을 번다.  

출처: 조선DB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최해식

◇연수입10억…이젠 성공한 사업가

야구인들이 사업가로 성공한 선수를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최해식을 꼽습니다. 

처음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한 가게였습니다. 매달 조금씩 매출이 다르지만 순수입이 매달 5000만원~1억 정도 입니다.

매달 선수 시절 연봉 이상을 벌어들이는 셈이네요.

선수로 뛸 때 가장 많이 받을 때도 억대 연봉은 못 받았습니다. 지금 더 잘나가는 셈이죠.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불러주던 곳이 없던 차에 마침 동네 주민들이 ‘가게를 해보라’고 권유해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최해식은 은퇴 이후 KIA 타이거즈(해태의 후신) 코치를 거쳐 화순고 코치를 맡았으나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마땅히 할 것이 없었던 그는 서울로 올라가 야구해설을 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든 동네 주민들이 ‘중국집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 자의반 타의반 2004년 최고루 1호점을 열었다.

출처: 최해식 제공
최해식의 최고루 가게 전경

◇철가방 메고 발로 뛰었다

생판 모르던 일이었을 텐데요. 

자본금이 많질 않으니 처음엔 뭐든지 제가 다 했습니다. 철가방을 메고 직접 배달도 뛰었고요. ‘최해식이가 얼마나 어려우면 배달까지 하느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서러웠을 때도 많았겠네요. 

이름값 앞세워서 동네 중국집 다 망하게 한다고 견제를 심하게 받았어요. 난데없이 가게 유리창이 깨지는가 하면 쌀이나 밀가루가 없어지길래 범인을 잡아보니 이웃 중국집이었습니다.

최해식이 가장 ‘눈물 났던 순간’으로 꼽은 장면이 있다. 배달을 하다 친구와 함께 가던 아들과 마주쳤다. 아들이 창피함을 느낄까 봐 일부러 숨으려고 했던 그에게 아들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그때는 나보다 더 어른 같았어요. 미안하고 고마웠죠.

언제쯤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초기에 전단 돌릴 때였어요. 아침 10시쯤 전단을 받은 막노동하시는 분들이 ‘우리는 유명인 필요 없다. 무조건 일찍 나온 사람한테 시킨다’고 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심을 먼저 얻어야 하고,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성공한다. 그 이후론 새벽 5시에 나와서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최해식 제공
직접 만든 짜장면을 들어 보이는 최해식

◇짬짜면은 내가 원조

주방 일도 직접 하시던데요

이제 칼을 안 잡으면 어색해요. 처음엔 어깨너머로 ‘독학’으로 배우다가 주방장 제자를 자처하고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낮에는 일 방해하면 안 되니까 주방장 퇴근하고 난 다음에 새벽까지 연습을 했어요. 아예 가게에 다락방을 만들어놓고 3년 정도는 집에도 거의 안 들어갔어요.

사업을 하면서 야구 선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되돌아봤다고 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 주고 얼마나 좋나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냉혹한 바깥 사회로 나가보면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느낍니다. 야구와 비교가 안 되게 사업이 힘들어요.

최고루만의 독특한 메뉴도 있습니까

 

13년 전에 ‘짬짜면’을 제일 처음에 개발한 게 바로 접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고 손님들이 고민하던 걸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그땐 짬짜면 전용 그릇도 없어서 그릇도 특수 주문해서 만들었습니다. 요즘엔 부추를 믹서로 갈아서 밀가루 반죽에 넣어 요리를 합니다. ‘부추 짜장면’ ‘부추 짬뽕’이죠. 맛과 영양 둘 다 잡는 저만의 아이디어예요.

그가 언급한 짬짜면은 짜장면과 짬뽕을 한 그릇에 담아서 먹는 메뉴. 사실 짬짜면을 내가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다. 음식 메뉴는 과학 특허처럼 명확하게 개발자를 규정지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 분야는 아니다. 특정인을 최초의 개발자로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장충동 족발이나 신당동 떡볶이 등도 원조 논쟁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최고루는 처음 짬짜면을 내 놓기 시작한 중식당 가운데 하나다. 

출처: 최해식 제공
최고루에서 판매하는 물짜장. 최해식 사장 아이디어로 탄생한 상품이다

◇환골탈태 각오로 창업해야

야구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미련은 없어요. 코치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만둬야 하잖아요. 지금도 가장 슬픈 게 후배들이 ‘돈 좀 빌려달라’고 손을 벌리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은 듯한데요. 

목돈 생기면 주식 도박 등에 빠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인생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빈털터리로 전락한 다음 유혹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봤습니다. 선수 생활은 잠깐이지만 인생은 ‘100세 시대’이지 않습니까.

최해식은 “왕년에 내가 누구였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자존심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동안 불우이웃에게 짜장면 6만 그릇을 제공했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수시로 기부활동을 벌여오고 있다”는 최해식은 이제 야구 유니폼보다 주방 치마가 훨씬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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