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00만원 직장인에서 2천억대 회사 CEO가 된 비결

조회수 2018. 11. 6.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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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전문대, 월급 100만원 신입직원, 14년 만에 2000억 가치 기업 대표로
대구 출신… 부산에서 취업, 창업
개발자 출신 연쇄창업가
유한양행처럼 존경 받는 회사 만들고 싶어

1994년 어느 날 오후 대구 동구 신암동 대구공고 앞. 하굣길 남학생 3명의 눈에 여고생 3명의 뒷모습이 ‘포착’됐다. “남자 학교 앞에서 여학생들을 보니 무슨 일인지 궁금하더라고요. 쫓아갔죠.” 얼떨결에 그녀들을 따라 들어간 곳은 바로 컴퓨터학원.


‘여기어때’의 심명섭(39) 대표를 이른바 ‘코딩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건’이었다. ‘여기어때’는 모텔예약앱으로 유명한 스테이테크(stay tech·숙박기술) 기업이다. 2016년 매출 250억원, 업계 1위다. 2017년엔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을 예상한다.

출처: jobsN
인터뷰 당일 심명섭 대표. 심 대표는 평소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을 주로 한다.

IT 개발자 출신 창업가

12월15일 오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여기어때 본사. 테이블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소회의실에서 만난 심 대표는 청바지에 검은색 니트 차림이었다.


이날은 호텔, 게스트하우스, 펜션 등을 통합한 ‘여기어때 3.0’이 서비스를 시작한 날. 개그맨 신동엽이 나온 CF 세편도 막 공개된 참이었다.

-‘여기어때’라고 하면 개그맨 신동엽이 “아저씨도 갔었잖아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광고가 떠오른다.

신동엽씨가 모델을 하면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 ‘쿨(cool)하다, 키치(kitsch·눈길끌기)하다’는 반응도 있고, ‘모텔앱 사업을 왜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하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는 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병재, 박기량씨 편도 여자가 먼저 할증을 얘기하는 건 고정관념을 뒤집은 거다.

-개발자 출신 창업가다. 모텔 O2O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됐나?

3~4년 전 모바일 대중화를 보면서 기존 PC 기반 사업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O2O라는 말은 없었고, ‘생활밀착형’ 서비스 중에서 찾았다. 후보가 택시, 대리운전, 모텔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던 중 부산 출장길에 모텔에서 우연히 숙박 업체를 소개하는 잡지를 봤다. 본래 모텔은 가격도 모르고, 시설도 모르고, 서비스도 모르고 가는 곳이었다. 예약도 없었다. ‘이건 되는 비즈니스’라는 감이 왔다. 모텔 이미지 때문에 대기업이 쉽게 들어오기도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택시는 카카오가 들어왔고, 대리운전은 카카오도 힘든 걸 보니 잘 선택한 것 같다.
출처: 네이버TV캐스트 캡처
2015년 방영된 ‘여기어때’ CF 신동엽 ‘아저씨도 갔었잖아요.’편. 여기어때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첫 월급 100만, 2년 만에 연봉 7000만

-대구 출신이고, 취업, 창업은 부산에서 했다.

공고를 나와 대구에서 전문대를 졸업했다. 2002년 당시만 해도 대구에는 IT업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서울은 갈 생각도 못했고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찾은 게 부산이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첫 회사를 꼽았다.

그 회사 첫 개발자로 들어가 2년쯤 일했다. 사무실 골방에서 먹고, 자고 했다. 처음엔 10명 정도였던 직원은 나올 땐 300~400명까지 늘었다. 내가 뽑은 개발 인력만 180명에 달한다. 개발에서 기획, 마케팅, 영업까지 다 해보고 마지막엔 부대표도 했다. 첫 월급은 식대 10만원까지 포함해서 100만원이었는데, 3개월마다 늘어서 나올 때는 연봉이 7000만원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서울로 이사하고, IPO(기업공개)를 하는 과정에서 심 대표는 창업의 길에 들어선다. 2004년 부산 경성대 앞 센츄리빌딩,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구했다. 

-상장 덕은 못 본 건가?

상장 직전에 나와서 금전적인 이득은 없었다. 대신 퇴직금은 잘 챙겨주셨다. 큰 회사 임원 출신들을 영입하는 상황에서 빠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돈보다는 사장님과 같이 있으면서 회사를 키워나가는 분의 생각을 공유한 게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창업과 매각도 많았다.

첫 창업은 제휴마케팅(광고주와 사이트·블로그 등을 중개하는 사업)으로 했다. 경험도 있고, 당시엔 핫한 분야였다. 2년 정도 뒤에 팔아서 몇억 정도 벌었다. 이후 2년 정도는 ‘엠파일’이라는 웹하드 사업을 했다. 소리바다가 합법화되는 걸 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되겠다 싶어 뛰어들었는데, 시장이 빨리 크지 않았다. 결국 수십억 정도 받고 매각했다.
출처: 여기어때 제
2013년 회사 비전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심 대표.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추산한 여기어때의 기업가치는 2000억원 수준이다.

애플을 넘어 유한양행 같은 회사 추구

2008년 심 대표는 IT 종합개발업체인 위드웹을 세운다. 문자메시지 발송부터 서식서비스(위드폼), 파워포인트 템플릿(PPT코리아), 광고 대행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다.


하지만 2014년 4월 시작한 ‘여기어때’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2015년 말까지 다른 사업은 모두 매각한다. 금융투자업계가 추산하는 ‘여기어때’ 기업가치는 2000억원, 직원은 180명까지 늘었다. 

-5년 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전체 인원이 50명이었는데 38명이 같이 왔다. 부산에서 같이 올라온 멤버들은 지금도 거의 다 남아있다. 부산에 있을 땐 주말마다 직원 모두가 등산을 갈 정도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초기 멤버들의 끈끈함이 이직이 심한 IT업계에서 색다른 경쟁력인 것 같다.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나?

구성원은 자부심을 느끼고, 고객은 신뢰했으면 좋겠다. 애플처럼 사랑하고, 유한양행처럼 존경하는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다.

-많은 취준생, 창업가, 특히 지방 출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내부 강연에서 하는 말인데, 꼭 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거기서 전문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지방이냐 서울이냐보다는 자기가 하려는 일, 좋아하는 일이 먼저다. 서울이 좀 더 배울 게 많은 곳일 수는 있다. 창업도 전문가는 서울에 많다. 하지만 우리 경우엔 작은 시장에서 의리로 뭉친 게 성공률을 높였다.

글 jobsN 조재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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