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원하던 대기업 입사 7개월만에 퇴사한 사연

조회수 2018. 11. 6. 10: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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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너무 다른 회사&업무, 퇴근 후 집 가는 길엔 한숨뿐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절벽 앞에서 절망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경쟁자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취업준비생은 '입사는 별따기'라고 한다. 그러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 20%가 입사 첫해 나간다"며 "사람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잡스엔이 올해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한 젊은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년간 취업준비
CJ제일제당 입사 7개월만에 퇴사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 중

김영업(가명·28)씨는 올 1월 CJ제일제당 영업직 신입으로 입사했다. 합격 문자를 받던 순간 그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그때 복잡한 지하철안이었다. 갑자기 고함을 치면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입사 7개월 만에 김씨는 회사를 나왔다. 지금은 9급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씨는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4학년이던 2014년부터 2년간 취준생으로 살았다. 사실 원했던 직장은 은행권. 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자산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나 은행문은 좁았다. 은행 이외 100여개 회사에 지원했다. 어렵게 최종 합격한 곳이 바로 CJ제일제당이었다. 

출처: CJ그룹 제공
CJ 본사 사옥

“한 번만 도와주세요”

7개월만에 회사를 나왔다니요?

3개월은 교육기간이었어요. 4월 발령을 받아 경기도 소재 공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간 차를 타고 선배와 돌며 ‘공장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등 현장 실무를 배웠어요. 사실 그때부터 걱정이 앞섰어요. 신경 써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마트에 회사가 공급한 냉장고 고장 수리 처리를 제가 해야 했습니다. 또 판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오면 수거하고 고객불만도 처리해야 합니다. 치킨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면 그걸 가져와 분석하고 고객에게 백배사죄합니다. 대기업에서 영업을 하면 이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실제 회사 생활이 많이 달랐죠.

업무량이 많았던 건가요?

저는 회사 막내라 오전 6시 30분까지 출근해 오후 8시쯤 퇴근했습니다. 근무시간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업무량보다는 업무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출처: 김영업씨 제공
CJ제일제당 근무할 당시 김영업씨

실제 영업 업무는 어땠나요?

제품과 시장을 분석하고 팔아 매출을 올리는 게 영업직 일이라 생각했어요. 오해였습니다. 그런 업무도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업무의 90% 이상이 이마트 같은 대형고객을 찾아가 ‘물건 좀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부탁하나요?

그냥 떼쓰는 거에요. 어린 아이가 아빠한테 사탕 사달라고 조르는 것처럼요. 매장 담당자를 만나 커피 한 잔 사면서 ‘그런데요 사장님’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죠.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 진짜 이번에 안 되면 잘려요’라면서 매달립니다. 매달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문자하고 전화를 보내도 담당자가 아무런 응답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일을 마친 뒤 차에 타면 한숨이 나와요. 진짜 ‘내가 이럴려고 들어왔나’ 싶죠. 비굴하게 계속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합니다. 보통 매일 오전 11시 정도면 영업직 직원들은 다 나가요. 매일 이런 일을 반복했어요.

언제 퇴사를 결심하신건가요?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배를 계속 지켜보니 미래 계획 없이 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무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죠. 전망이 안 보였습니다. 제가 쓰는 사무실 옆에 진급 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이 있었어요. ‘나도 저렇게 되진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일도 힘들고, 미래도 안보이고 계속 고민하다가 ‘안 되겠다’ 생각해 7월말 퇴사를 결정했어요.

그러나 CJ제일제당은 진급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은 따로 없다며 퇴사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CJ입사하기 위해 담당자 찾아가 질문하기도

처음 입사할 때는 이런 사정을 모르셨던 거네요?

오히려 정말 들어오고 싶었죠. tvN ‘집밥백선생’을 볼 때 CJ제일제당 제품이 계속 나왔습니다. 간장, 밀가루, 설탕 등이 다 CJ 제품이더군요. 회사가 튼튼해 보였습니다. CJ가 식품, 생활, 문화 등 우리 삶에 깊숙히 파고 든 회사라 더 관심이 컸습니다.
출처: 김영업씨 제공
취업준비할 때 공부했던 책들

입사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처음엔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 지원했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지원자에 비해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7월부터는 CJ입사에 집중했습니다. 직접 이마트나 홈플러스를 찾아가 ‘CJ 담당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시식코너에 CJ 소속 직원이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CJ그룹은 1차 때 그룹면접이 있다. 현직자가 들어와 토론 주제를 주고 지원자끼리 논쟁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형식이다. 이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김씨는 면접 스터디를 두 개나 했다. 매주 3번 이상 모여 실전에 대비했다. 

출처: 김영업씨 제공
독서실에서 공부중인 김영업씨

대기업 나와 결국 공무원의 길로

어렵게 원하는 회사에 합격했는데 나올 때 아깝진 않았나요?

오랜 시간 취업을 준비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오는 건 조금 아쉬웠죠. 하지만 ‘더 버텨야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어요. 단시간에 너무 지친 것 같아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친구들은 ‘작은 회사도 아닌데 왜 나오냐’면서 ‘처음이라 그런 거다. 좀 더 버텨보라’고 얘기했어요. 오히려 부모님은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고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습니다.

경찰시험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순경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있어요. 한창 회사 일로 제가 힘들 때 친구를 만났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겼어요. 경찰은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잖아요.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니까요. 안정적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목표는요?

우선 내년 3월 시험에 합격해야죠. 전문성을 길러 인정받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윤상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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