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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100번 찾아가서 11억 번 사람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9. 17: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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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10번 넘게 고궁 찾아가..문화해설사가 피할 정도
‘구르미 그린 달빛’ 원작자 윤이수
웹소설로 역사적 인물 재조명
“웹소설은 유치하다”는 편견 타파
홀로 빛나는 태양이 아닌 백성들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빛나는 달빛과도 같은 군주. 전하께선 그런 분이신것 같습니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구그달)’의 마지막회 장면이다. 효명세자를 가리키며 김병연이 말했다. 박보검이 연기한 효명세자는 21살에 단명한 비운의 왕세자다. 문학과 예술에 능했고 세도정치를 종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구그달’이 끝나면 효명세자·홍경래의 난·대리청정 등이 실시간 검색어로 떴다. ‘구그달’이 그를 지나간 역사 속에서 현실로 끄집어 냈다.


효명세자를 대중 앞에 드러낸 사람은 원작자 윤이수(41·필명)씨. 2013년 네이버에서 131회에 걸쳐 동명 작품을 연재했다. 9월말 기준 유료보기 누적 매출만 11억원을 돌파했다. 누적 조회수 5000회. 책도 냈다. 시리즈 5권이 25만부 팔렸다. 한달에 남들 연봉을 버는 수준. 

윤씨는 내년 새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처: 윤이수 작가 제공

유럽 떠돌며 보낸 20대 

필명 ‘윤이수’는 외국에서 생활할 때 쓰던 영어 이름 ‘유니스’에서 따왔다. 유대어 ‘유니게(Eunice)’에서 유래해 ‘선한 승리와 미소’를 뜻한다. “영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머무른 곳이 있어요. 집주인 할머니가 저의 밝은 성격과 행동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그 친구의 이름은 유니스였죠. 알고보니 뜻도 마음에 들어서 그 이후로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름에서 오는 좋은 기운을 깨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초등학교때부터 글짓기 대회에서 곧잘 상을 받았다는 윤씨는 문예창작과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작가는 유망한 직업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밥 못벌어 먹고 산다’며 원서를 안 써주셨어요.

1997년 대학을 그만뒀다. 100만원을 들고 유럽으로 떠났다. 전공이었던 일어일문학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한곳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비를 모으면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유랑 혹은 방랑자 생활을 했다.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달랬다. “천리안 등 PC통신 시절 인터넷에 단편을 올렸어요. 주로 로맨스를 썼는데, 그때 소설은 차마 말씀드리기 부끄럽네요.” 

출처: 네이버 책 캡쳐
초기 작품 '이웃집 남자'와 '설화', 대표작 '구르미 그린 달빛' 책 표지

2006년 6월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고 한국에 귀국했다. 그때 동갑내기 남편 김훈씨를 만났다. 김씨는 필명 ‘엽사’로 활동하는 무협 소설가다. 윤씨가 첫눈에 반해 먼저 ‘사귀자’고 했을 정도로 미남이다. “제가 쫓아다니다가 3개월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2010년 아들은 낳은 윤씨는 육아에 한동안 전념했다. 남편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남편이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요. 결혼 초부터 아이를 낳으면 2년간 일을 쉬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8개월째 접어들자 견딜 수 없었다. 머릿 속에서는 쓰고 싶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한가득이었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아이를 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몰래 쓴다고 했는데 한달 반쯤 지나 들켰어요. 남편이 온 줄도 모르고 글을 쓰다 엎드려 자고 있었거든요. 알고보니 남편이 이미 알고 있었더라고요. 그냥 내놓고 쓰라고 하더군요.

이때 ‘구르미 그린 달빛’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출처: 윤이수 작가 제

창덕궁에서 만난 효명세자 

‘시대물 로맨스’ 작가 윤이수로서 정식 데뷔작은 2006년 ‘설화’다. 조선 효종 1년 때 청나라 구왕에게 시집간 의순공주가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 국사 수업에서 토론을 많이 했어요.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닌 진짜 공부를 했죠. 조선왕조실록이나 야사를 즐겨 읽었어요. 그 때문인지 현대물보다 역사물을 쓸때 훨씬 재밌고 자신있더라고요.”


윤씨는 2013년 초봄 창덕궁에 들렀다. 낙선재를 지은 헌종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창덕궁을 좋아해요. 특유의 향도 좋고 빛에 따라 많은 색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헌종을 주인공을 삼으려 하는데 해설가가 아버지는 더 잘생겼다고 하더라구요.” 


실제 찾아본 효명세자는 미남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헌종과 대신의 대화가 나옵니다. 헌종이 ‘아버지를 그리워 하려고 해도 얼굴을 모른다’고 하자  늙은 대신이 ‘지금 거울을 보시면 돌아가신 부친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죠.”

출처: KBS 제공
'효명세자 이영'을 연기한 박보검과 '홍라온'을 연기한 김유정.

효명세자는 ‘춘양무’ 등 궁중 무용을 만들고 ‘경헌시초’, ‘학석집’ 등 여러 문집을 남겼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하려 노력했지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조선은 혼탁한 정치로 물든다. 원작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꽃비가 흩날리고 노란 연등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실제 역사는 달랐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윤씨는 그 ‘만약’에 집중했다. ‘왕다운 왕이 계속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시기 ‘홍운탁월(洪雲托月)’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만났다. ‘홍’은 ‘부풀리다’를 뜻한다. 구름을 퍼트려 달을 이끌어 낸다는 동양화 그림 기법 중 하나다. ‘백성 속에서 빛나는 군주’ 세자 이영은 그렇게 탄생했다. 

출처: KBS 제공
김윤성·조하연·김병연을 연기한 윤성·채수빈·김동연. 김윤성은 실존인물은 아니다. 조하연은 신정왕후 조씨를, 김병연은 김삿갓을 모티브로 했다.

”캐릭터들이 머릿 속에 뛰어놀아” 

과거에도 대한민국에는 여러번 웹소설 바람이 불었다. ‘엽기적인 그녀’, ‘그 놈은 멋있었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학성이 없다’는 비꼼을 받았다. 한 회를 읽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 웹소설의 특성 때문이었다.


윤씨는 이러한 편견과 싸웠다. 사전 취재를 철저히 해 이야기 곳곳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넣었다. 

웹소설은 가볍지만 개연성 없이 쓰면 유치해져요. 항상 '왜?'라고 묻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구그달’을 집필하기 전에는 자료 조사에만 1년을 썼다. 효명세자가 만들었다는 악곡이나 문집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자료가 많지 않았다. 남아있다 하더라도 열람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는 소설가 등 일반인이 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열람하기 어렵더라구요."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문화해설사·역사학 교수 등 전문가를 무작정 찾아가 물었다. 궁에서 궁중정재(무용)를 재현하는 공연은 꼭 챙겨봤다.

창덕궁에 수시로 드나들었어요. 문화해설사를 하루 종일 쫓아다녔죠. 나중에는 저를 피하는 분도 계셨어요.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복원한 효명세자 어진. 18세 때 모습을 담은 원본은 얼굴이 크게 손실됐다.

소재를 정한 후에도 바로 집필하지 않는다. 반 권 분량 정도를 수십 가지 장르로 써본다. ’구그달’을 구상할 때는 정통 역사물에 가까웠다. 사람 이야기를 넣다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시놉시스가 ‘로맨스’로 나왔다.


퇴고에도 공을 들인다.

두 권 분량을 써놓고 2주에서 한달간 묵혀둬요. 이 기간동안 이야기가 숙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보면 제가 놓쳤던 부분을 등장인물들이 알려줘요.

‘구그달’ 연재를 시작한 후에는 창덕궁에 한달에 10번 이상 들렀다. 그 자리에서 집필할 때도 많았다. “옛날에는 정자 앞 물가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하더라구요. 창덕궁 애련정에서 라온이와 명은공주가 뱃놀이 하는 장면을 썼습니다.” 

출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캡쳐
명은 공주와 홍라온이 뱃놀이를 하는 장면.

역사 속 여백을 채우는 재미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쓸 것 같지만 체력은 필수다. 윤씨는 오후 9시에 잠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난다. 일주일 2번 마감을 맞추기 위해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낮에는 육아에 집중한다. 힘들어도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캐릭터들이 머릿 속에서 뛰어놀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인 끈기도 필요하다. 마음대로 이야기가 풀리지 않으면 연재를 중단하고 싶을 때가 생긴다. 실시간 달리는 댓글에 상처 받을 때도 있지만 감사할 때가 더 많다.

오류를 지적해 줄 때 정말 고마워요. 에피소드가 더 풍부하게 발전할 때도 있고요.

윤씨는 지금까지 12개 작품을 완성했다. 이중 시대물이 7개다. 9월에는 세자 이향(문종)을 주인공으로 한 ‘해시의 신루’를 탈고했다. 당분간 시대물에 전념할 예정이다. '구그달', '해시의 신루'에 이어 또다른 왕세자 탄생을 예고했다.


실록 한줄, 사진 한장에서 힌트를 얻는다.

역사는 여백이 많아서 상상력을 발휘해 채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어요. 역사에 대해 몰랐는데 제 소설 덕분에 알게됐다고 할 때 정말 기쁩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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