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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까지 글 못 읽던 아이, 최고 자격증 '기술사' 4개 따기까지

조회수 2020. 9. 29. 17: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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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석간신문 배달 알바하며 빵한조각으로 끼니 떼우고 공부
어릴 때 발달 느렸지만 포기 안 해
자격증 33개, 자격증의 달인
기술사 4관왕 달성

김성용(43)씨는 '기술사 4관왕'이다. 2007년 34살 나이로 '용접 기술사'를 딴 뒤, 기계 기술사, 금속가공 기술사, 금속재료 기술사를 연달아 취득했다.


기술 자격증은 기능사, 산업기사, 기사, 기술사 순으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기술사는 기술자격증의 꽃으로 불린다. 고시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 시험이다. 작년 '용접 기술사' 필기시험 합격률은 5.5%였으며, 지금까지 총 취득 인원이 270여명에 불과하다.


김성용 씨는 이런 기술사를 4개 취득했다. 기술사는 현장에서 박사학위급으로 인정받는다.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셈. 여기에 다른 자격증이 29개 더 있다.


현재 공군제15특수임무비행단 시설대대에서 6급 용접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항공기 출입문 용접 보수, 부대 입간판 제작 등 업무를 담당한다. 

출처: jobsN
박사학위급 자격증으로 불리는 기술사자격증을 4개 딴 김성용씨.

초등학교 6학년까지 한글 서툴러, 고3 때 첫 자격증 취득 

어린시절 또래 보다 지적 발달이 느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글 읽는 게 서툴렀다. 몸도 약해 학급 친구들 놀림 받기 일쑤였다. 담임 선생님이 힘을 줬다. “발명왕 에디슨도 어릴 때 ‘바보’ 소리 들었지만 성장하며 큰 인물이 됐다. 너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아라.”


길거리 간판을 읽으며 한글을 익혔고, 태권도로 체력을 단련했다. 중학교 부터 또래 학습 수준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토목학을 전공하던 둘째 형 조언에 따라 1989년 서울공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다듬질기능사 2급, 기계조립기능사 2급, 사출금영기능사 2급 등 다양한 시험에 도전했는데 모두 불합격했어요. 한 번에 합격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부족한 손재주가 원인이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학년 2학기 때 드디어 기계조립기능사 2급, 전기용접기능사 2급을 취득했습니다.

기능사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당시 서울공고는 시설이 열악해 따로 자격증 수업을 해줄 여력이 안됐어요. 책 보며 혼자 공부했습니다. 석간신문 배달을 했는데 마치면 오후 6시였어요. 이후 학교 작업실로 돌아와 빵 한 조각 먹고 오후 9시까지 공부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나요?

아주 어려운 건 아녔어요. 다만 형이 둘 있어서 옷이나 운동화를 계속 물려받아야 했어요. 새 옷 사고 싶어 아르바이트 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일하면서 책임감과 근성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처: jobsN
김성용씨가 취득한 기술사 자격증

끝없는 실패, 서울대 도서관에서 자격증 12개 취득

어렵사리 기능사 취득에 성공했지만 대학 진학은 실패했다. 1992년 서울산업대와 금오공대에 지원해 모두 불합격했다. 학력고사 성적이 좋지 않았다. '화성코리아'에 병역특례요원으로 취업했다. 3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영등포 청과물 시장에서 하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우연히 ‘항공정비학원’ 광고를 접했다. 항공정비자격증을 딴 뒤 공군 정비부사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항공사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렵사리 항공기관정비 기능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공군부사관 시험에 불합격했다. 끝없는 실패의 연속. 항공사 꿈을 접고 21살에 육군 광학기재 수리병으로 입대했다.

군대에선 길이 보이던가요

망원경이나 전차에 들어가는 광학 렌즈 수리 업무를 담당했어요. 실무를 해보니 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틈틈이 공부해 자동차정비 기능사도 땄습니다.

제대 후 취업에 성공했나요

군대에서 정비 기능사 자격증 딴 걸 계기로 대기업인 효성물산에 들어갔습니다. 수입 자동차 수리를 담당했어요. 그런데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월급이 너무 적기도 했고요.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1997년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1년 만에 직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신문배달을 시작했어요.
출처: jobsN
25세에 입학한 대학에서 2년간 자격증 12개를 땄다. 이후 대학 설비실 등에서 일하다가 7급 공채에 합격해 군무원이 된 김성용씨는 기술사 자격증을 4개 더 땄다.

신문 배달 하다 우연히 서울정수기능대학(현 폴리텍 1대학) 모집 광고를 봤다. 25살, 다소 늦은 나이로 산업설비학과에 입학했다. 다른 학생과 마음 가짐이 달랐다. 많은 실패를 경험한 만큼 절박했다. 입학 2년 만에 가스용접, 특수용접, 보일러 시공사, 배관설비 등 12개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교 시절 그렇게 어려웠던 실기 시험이 척척 손에 붙었다. 

짧은 기간 많은 자격증을 취득한 비결이 뭔가요

생존본능이죠. 살기 위해 시험 봤어요. 학교 수업 마치고 신문배달까지 한 뒤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했습니다. 공부 분위기가 좋아 몰래 책 쌓아놓고 살다시피했어요. 집에 거의 가지 않고 도서관 책상에서 쪽잠 자며 공부했습니다.
출처: jobsN
김성용씨 가족사진

평생 공부, 군무원 돼 기술사 4개 취득

2000년 3월 서울정수기능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학생기숙사 보일러 조작원으로 취업했다. 격일 근무제였다.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 쉬었다. 근무 없는 날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정보처리 기능사, 정보처리 산업기사 등 5개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했다. 틈틈이 서울정수기능대학 실습실을 찾아 기술 연마도 했다.


2001년 12월 전국용접기능경기대회에 나가 산업체 개인부 금상을 받았다. 곧 직장을 나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1년여 만인 2003년 5월 공군 군무원 7급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용접 업무를 맡았다.


군무원이 돼서도 자격증 취득을 멈추지 않았다. 최고 자격증인 기술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전을 계속한 이유가 뭔가요

20대 때 정말 다양한 일을 했어요. 기계 가공, 자동차 정비, 건물 보수 등 여러 분야 일을 했죠. 30살에 군무원이 돼 정착하고 나니, 한 분야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자신있는 용접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산업이건 용접이 안 쓰이는 데가 없어요. ‘앞으로 절대 없어지지 않겠다’ 생각으로, 기술사에 도전해 2007년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다른 기술사에도 도전한 이유는요

용접 기술사 취득하고 얼마 안돼, 한 후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일이 있었어요. 지식이나 기술은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녹슨다는 것을 알았죠. 평생 공부해야겠더라고요. 다른 시험에 도전해 기계 기술사를 2007년 바로 땄구요. 금속가공 기술사(2013년), 금속재료 기술사(2016년)까지 성공했습니다.

계속 공부하는 원동력이 뭔가요

저보다 상황이 어렵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는 선배들 만날 기회가 종종 있어요. 용기가 생겨요. 인내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경희대 경영대학원 MBA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어요. 기술 분야는 전문성을 많이 쌓았으니, 관리자 준비를 하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신소재 제조업체를 창업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스위스나 독일에서 볼 수 있는 힘 있는 중소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작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요.

글 jobsN 김윤상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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