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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황제조사' 특종한 조선일보 사진기자의 하루

조회수 2020. 9. 29. 1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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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조사 사진 "믿을 수 없어 셔터 누르다보니.."
우병우 전 수석의 '황제조사' 찍어
중앙대 사진학과 나온 2년차 기자
"단 한 장의 사진이 때론 글보다 많은 걸 말해줘"

“마치 영화 같았다. ‘내부자들’ 같은” 지난 7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한 장.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모습이었다. 피의자와 조사관이 뒤바뀐 듯했다. 사진은 현정권과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며 거대한 분노를 일으켰다.


사진은 고운호(26) 조선일보 객원기자가 촬영했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 중앙일보 대학생 사진기자를 거쳐, 조선일보 객원기자로 2년째 활동 중이다.  

출처: 조선 DB
고운호 기자가 찍은 우병우 수석의 '황제수사' 장면. 우병우 수석은 팔짱을 끼고 있고, 상대편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야기를 듣고 있다. 검찰은 오른쪽 인물이 검사와 검찰수사관이라고 밝혔다.

영화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사진 촬영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영화 '내부자들' 실사판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사진 기자는 현장을 맨눈으로 보지 못한다. 눈에 계속 렌즈를 대고 있어야 한다. 렌즈 속 상황에 고도로 집중하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착각을 배가시켰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현실로 돌아왔다. 국민에게 빨리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특종 이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치부를 드러낸 데 대해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길게 글 쓰지 않고,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에 달린 내 바이라인(기자 이름 표시) 보고 많이들 연락을 해왔다. 모르는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를 걸어 오기도 했다. 특종기를 알려달라는 언론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 신문, 라디오, TV에 모두 출연했다. 사람들의 사태에 대한 관심을 체감했다.
출처: TV조선 방송 캡처
방송에 출연한 고운호 기자(왼쪽). 서초동 빌딩에서 검찰에서 조사받는 우 전 수석 모습을 담았다.
출처: jobsN
조선일보 고운호 객원기자

사건의 시작과 끝이 출퇴근 시간 

사진기자는 어떤 직업인가

국민의 눈 역할을 한다. 각종 사건 사고 때 현장에 재빨리 나가 먼저 보고 알린다. 우리만 접근할 수 있는 아름답거나, 반대로 끔찍한 순간이 있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

통상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야근이 있을 경우 9시까지 일한다. 사실 의미 없다.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지면 무조건 나간다. 사건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기획 취재도 하나

물론이다. 당장 진행 중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발제해 찍는다. 1주일에 한 번 아이디어 회의에서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킬(거절) 당하는 경우가 있고, 선배 피드백을 받아 찍는 경우도 있다.

언제 일이 힘든가

혹한 또는 혹서기에 현장 출동하는 게 힘들다. 식사 시간에 사건이 터지면 밥 때를 놓친다. 신문 찍기 전 매일 마감시간을 맞추는 스트레스도 있다. 좋은 장면을 잡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피의자 검찰 출두 같은 현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일상이다.
출처: jobsN
고운호 기자가 우병우 전 수석의 사진을 찍기 위해 사용한 카메라 장비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나

성공 보다 실패 기억이 크다. 이완구 전 총리후보자 지명 논란 때 집 주차장에서 경비원들의 감시를 피해 13시간 숨어 대기한 적이 있는데 촬영에 실패했다. 롯데 사태 때는 신격호 전 총괄회장을 찍기 위해 롯데호텔 요리사 출입구를 통해 잠입 시도 했지만 실패했다.

뉴스 자체를 즐기는 기자

원래 사진기자가 꿈이었나

중학교 때 아버지가 직장 사은품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받아오셨다. 그 카메라로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다. 중학교 신문부, 고등학교 사진부 활동을 하면서 사진기자 꿈을 키웠다.

사진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진 좋아하는 것은 기본이고, 뉴스 감각을 갖춰야 한다. 뉴스 흐름을 읽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사진 기자도 사람이라 예쁜 사진만 찍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가. 보기도 싫은 현장을 무수히 찍어야 한다. 곤란한 상황이라도 사명감을 갖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깡'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이 사진 기자를 위협하지 않나

카메라 기술이 갈수록 좋아진다. 드론을 활용해 찍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현장을 잡아 최적의 각도로 찍는 것까지 기계가 할 수 없다. 현장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한다.

앞으로 어떤 기자가 되고 싶나

이번 취재를 통해 사진 한 장이 나라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기자로서 평생 한 번 해보기 어려운 경험을 일찍 했다. 한 번 일냈다고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취재하겠다. 선배 조언이 도움 됐다. “또 뉴스가 바뀌고 다른 뉴스가 온다. 뉴스 자체를 즐겨라.” 계속 의미있는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

<이하 고운호 기자가 조선일보에 게재한 특종 취재기>

11월6일 오후.

오후 편집회의가 끝난 뒤 부장으로부터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검찰 밖에서 보이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니라 조사실의 우병우를 찍어보라”는 지시였다.

앞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한 우병우 전 수석은 질문을 하는 여기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봐 언론의 지탄을 받은 터였다. 사진 부장의 판단은 이런 것이었다. “소환과정에서 보여준 우 전 수석의 고압적인 자세, 그리고 검찰의 저자세. 조사실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우리가 확인해 보자”


사진부 야간 데스크가 곧바로 검찰출입 기자에게 연락, 우병우 전 수석이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사실 층수와 호수 정보를 파악해줬다. 다음 숙제는 조사실이 잘 보이는 촬영지점을 물색하는 것. 데스크는 조사실이 가장 잘 보이는 맞은편 건물의 ‘지점’을 낙점해줬다.


밤 8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맞은편 건물에 도착했다. 운좋게 옥상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기자의 무기는 캐논 1DX 카메라, 렌즈는 600mm 망원 렌즈. 여기에 2배율 텔레컨버터(화질은 떨어지지만 2배로 확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를 끼우고 모노포드를 사용했다. 옥상 울타리에 렌즈를 거치한 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안정적’ 포즈를 잡았다. 이렇게 해야 셔터를 누를 때 흔들림이 없다. 데스크가 직접 건네줬던 고배율 망원경도 틈틈히 사용해 가면서 조사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사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 8시 50분.

건물 오른쪽부터 1호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카메라 렌즈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며 겨눴다. 건물 중간에서 약간 왼쪽. 1118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 전 수석 조사를 담당한 김석우 특수2부장실이었다. 그 순간 특수2부장실 바로 옆에 딸린 부속실 창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출처: 고운호 기자

아무 생각 없이 첫 셔터를 눌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고 눈으로 식별이 불가했지만, 느낌이 왔다. 누군가 목을 뒤로 젖혀 돌리는 식으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검찰 관계자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수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촬영된 사진을 살펴보니 역시나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밤 9시 19분.

육안으로 보기에 흐릿한 형상의 누군가 나타나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는 우병우의 변호인 곽병훈 변호사였다. 곽 변호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검찰 관계자들 앞에서 크게 웃는 모습이었다.

출처: 고운호 기자

밤 9시 25분.

다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병우였다. 점퍼 차림의 그는 팔짱을 끼고 웃음을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그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의 검찰 관계자는 정자세로 서서 우 전 수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뒤이은 컷에는 우 전 수석이 계속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향해 서 있었고, 검찰의 두 사람은 자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손을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3초. 셔터를 누른 시간이었다.

출처: 고운호 기자

노트북을 열고 사진을 송고했다. 이 사진들 중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이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다.

출처: 고운호 기자

이후로도 7일 새벽 1시까지 조사실과 부속실을 향해 카메라를 맞추고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잠깐 빛만 스쳐도 찍은 사진만 900장. 우병우의 ‘위세’는 검찰에 출두할 때는 물론, 조사를 받을 때도 ‘한결 같은 것처럼’ 보였다. 조사실 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보는 눈’이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았다.

글 jobsN 이수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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