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호칭파괴, 무조건 좋기만 할까?

조회수 2020. 9. 29. 17: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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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님, 회의할까요?" 대표에게 "~씨" 호칭 수평적문화 대변
별명이나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기업 늘어나
호칭과 직급 떼니 막내 직원들 적극 의견개진
'000프로' 호칭 제일기획, "프로골퍼냐"오해도
자몽님, 상큼님

직원 70명을 둔 소셜 데이팅업체 ‘이음’에서 사내 직원들끼리 서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 회사의 신입사원은 “출근 전에 미리 자기 별명을 정해주셔서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원하는 별명을 정하면 인사팀에서 명함과 명패를 닉네임으로 제작한다. 


이음 관계자는 “입사 때부터 직원끼리 별명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 회사 직원들의 별명은 다양하다. ‘만두’ ‘빨강’ ‘잠보’ ‘에슐리’ ‘끌로에’ 등이다. 김도연 이음 대표이사의 별명도 ‘마프’다. 

대리 과장 등 호칭제도를 파괴하는 기업들

외부 고객을 만날 때만 ‘매니저’ ‘팀장’ 같은 직급을 쓴다. 사내에서는 오직 별명만 부른다. 가령 직원 생일 축하파티에서

사랑하는 만두님, 생일 축하합니다

라고 축가를 부른다.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 ‘저는 만두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만두님이나 자몽님 아이디어가 좋네요’라는 식이다. 


‘대리’ ‘과장’ 등 기존의 호칭제도를 파괴해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연차와 직급에 얽매이지 않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어리지만 성과가 좋은 직원들을 우대할 수 있다. (이음 전 대표 박희은(알토스벤처스 투자심사역))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컨설팅 기업 맥킨지. 미국 유명 경영대학원(MBA) 출신이 수두룩한 엘리트만 모이는 회사다. 얼마 전 맥킨지코리아 최원식 대표와 신입사원들이 밥을 먹는 자리. 


한 신입사원이 물었다. 

최원식씨는 0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대표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때부터 대표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에게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라는 교육을 받는다. 전혀 무례한 호칭이 아니다.

직책이나 직급으로 호칭하는 기존 관행을 파괴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김 대리’ ‘박 부장’ 같은 호칭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열정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사원들이 직책이나 직급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일을 없애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제임스’ ‘케빈’같은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새로운 호칭을 도입하는 기업도 많다.

2010년부터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직원을 모두 ‘리더’로 부르고 있다. 제일기획은 ‘프로’로 호칭을 통일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부터 직원들끼리 ‘파트너’라고 부른다. 최근 스타트업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쓰기도 한다. 스타트업 아이비즈넷은 직원을 ‘1호’ ‘2호’로 부른다. 


호칭 파괴를 경험한 기업 임직원들은 회의문화가 변화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라 말한다. 제일기획의 과장급 직원 김모씨는 “타 부서들과 회의를 하면 직책과 직급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떠맡는 일이 많았다. 또 말실수를 하면 혼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프로’란 호칭을 쓴 뒤 ‘막내’란 개념이 사라졌다"며 "‘네가 뭔데?’라고 꾸짖는 상사도 줄어 들었다”고 했다. 맥킨지 컨설턴트 강수훈(30)씨는 “파트너급 임원들과 회의할 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고 말해도 존중해주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호봉제 고수하는 기업 많아, '호칭파괴' 빠르게 못 늘어

그러나 호칭을 단일화하면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이음 관계자는 “누군가 전화로 “000씨 찾는데 계시냐”는 요청에 해당 직원이 근처에 있어도 이름을 몰라 헤맬 때가 많다"며 "‘작은 회사에서 서로 이름도 모르냐’는 항의도 받는다”고 했다. 


제일기획 직원들은 외부 고객에게 ‘000 프로’라는 명함을 건넬 때 “프로골퍼 자격증을 받았냐”는 소리를 듣는다. 외국인 기업 고객들도 “전문성이 높다는 말씀이시죠?”(You mean you are professional)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럴 땐 설명하느라 애를 먹는다.

물론 호칭 파괴 기업이 급속도로 늘기는 어렵다. 연차에 따라 연봉과 직책이 오르는 ‘호봉제’를 고수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차나 나이에 상관없이 성과만 좋으면 우대하는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들이 주로 호칭을 파괴한다. 


만드는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업무 처리 속도가 중요한 IT, 광고기획, 컨설팅, 게임 업종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호칭 파괴 기업은 고가 평가도 엄격한 편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 크기 때문에 업무 평가를 엄정하게 하지 않으면 뒷말이 나올 소지가 크다. 유교적 위계 문화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자율적인 호칭 사용 문화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KT는 2012년 ‘매니저’로 호칭을 변경했지만, 2014년 기존 사원~부장 체제를 다시 도입했다. 직원들이 원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입사해 10년, 20년이 지나도 ‘매니저’라는 직책에 머문다는 직원들의 불만이 있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졌다. 우리 문화에선 호칭 파괴는 득보다 실이 많다. (KT 관계자)

obsN 블로그팀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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