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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경력 '진짜' 대통령·총리 연설비서관 만나보니

연설문과 자기소개서·보고서 쓰는 방법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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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대통령·국무총리 연설문 초안 작성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거쳐
연설문·자기소개서·보고서 닮아있어
연설문은 공적인 문서입니다. 그 자체로 정책이기도 하죠. ‘검토하고 있다’는 표현만으로 국민들이 정책이 시행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말하는 기관이나 기관장의 생각을 담아야 합니다. 작성자는 그 생각을 글로 푸는 역할을 합니다. 본인 생각이 들어가선 절대 안되죠. 작성자의 이름이 안 남는다고 서운해하면 안됩니다.

김철휘(57) 국무총리실 연설비서관. 1989년 부터 16년 간 청와대 연설비서실에서 일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네 명의 대통령을 모셨다. 2007년 국무총리실로 옮겨, 국무총리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공직생활 27년 중 22년을 연설문 작성으로 보냈다. 얼마전 연설문 작성 노하우를 담은 책 ‘통하는 말 통하는 글’도 펴냈다.


인터뷰를 제안하자 한사코 거절했다. “연설문 작성자는 보이지 않는 게 도리”라는 것이다. 취업과 직업에 대해서 묻겠다고 했다. 드디어 승낙했다. 

우리 또래 자녀들이 대부분 취업 준비중인데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해 하더군요. 말하고 글 쓰는 방법을 알려 취업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지난 17일 김철휘 비서관을 만났다. 

김철휘 비서관

출처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연설비서관으로 22년 일하다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자랐다. 처음 취업한 곳은 정당 사무처였다. 연설문 쓰는 일을 맡았다.


타고난 글솜씨로 1989년 청와대 공보실 발령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행사 연설문 초안을 쓰며 청와대에 발을 들였습니다." 


글솜씨 하나로 원하던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 업무 주무 부서는 공보실이있다가, 2004년 연설비서관실로 넘어갔다.


연설비서관으로 대통령 4명, 총리 6명을 모셨다. 사람에 따라 글과 말이 달랐다. 더구나 연설문은 한 사람이 작성하는 게 아니다. 연설비서관실 소속 예닐곱명이 함께 토론해 쓴다. 초안을 보고 대통령이나 총리가 수정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바뀔 때마다 스타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 100일 정도 걸립니다. 선호하시는 단어나 표현 파악 같은 걸 알아야 합니다. 이 기간을 줄이려고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쓰신 글, 책 등을 미리 쭉 살펴봅니다.

김철휘 비서관이 쓴 '통하는 말 통하는 글'의 한 부분.

연설문은 아름다운 글 아냐, ‘신뢰’ 중요

연설비서관의 하루는 일반 공무원과 같은 듯 다르다. 오전 8~9시 공식일과를 시작한다. 그러나 연설 일정이 불규칙하게 잡히다 보니 업무를 예측하기 어렵다. 퇴근이 불규칙하고, 행사나 마감이 몰리면 자주 야근을 한다.


국무총리실에선 한달 평균 15~20건 정도 연설문이 나간다. 일주일에 3~4건 수준. '하루 반 만에 A4 한두 장 쓰니 일이 편한 것 아니냐'는 사람이 있다. 

30분이면 다 쓸 것 같죠? 글 하나 쓰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그 몇 배입니다.

연설문 쓸 행사가 정해지면 미리 개요를 살핀다. 어떤 행사이고, 대통령이나 총리의 참석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한다. 관련 부처의 정책 발표도 꼼꼼히 살핀다. 말 한 마디로 ‘부처간 엇박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사무실 뿐 아니라, 친구를 만나거나 차를 탈 때 등 틈만 나면 머릿 속으로 연설문의 흐름과 틀을 구상한다. 연설비서관이 느끼는 중압감은 말의 무게에 비례한다.

단어나 문구 하나에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책임을 져야하는 정부 정책을 담고 있으니까요. 연설이 뭔가 잘못되면 곧 정부의 잘못이 되기 때문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그는 “정부 지도자가 하는 연설은 ‘책임’ ‘신뢰’가 중요하다”며 “미사여구를 쓰는 것 보다, 왜 연설을 하고 누가 듣는지에 집중한다”고 했다.


최근 열렸던 ‘산의 날’ 행사를 예로 들었다. “17년째인데 총리님이 올해 처음 방문했습니다. 국립산림치유원 첫 개원 의의가 있고, 미래를 위해 산림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거였죠. 연설문 작성할 때 이런 포인트를 담아야 합니다.”

연설문 비서관으로 본 역대 대통령

연설 비서관으로 만난 역대 대통령의 모습이 궁금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의 생각을 담기 위해 하나하나 보시는 편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선호하는 단어로 직접 수정하시곤 했습니다.

1990년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대통령 출국 전날 LA 지역 교포를 초청한 행사의 연설문을 수정할 일이 생겼다. 밤을 꼬박 새며 쓰는데 스스로도 “잘 썼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눈을 떴다. 연설문 쓰다 잠들었던 것이다. “꿈에서도 연설문을 썼던 겁니다. 신기하게도 꿈에서 쓴 연설문의 일부분이 기억나더군요.”


김 비서관은 “대통령 연설문은 정제된 언어로 기록한 역사”라고 했다.

동료와 만든 연설문이 국가 기록으로 남는 게 큰 보람이다. 꿈을 물었다. “우선 정년퇴직을 하고 싶습니다. 아름답게 떠나고 싶어요. 이후에는 '내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공무원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고 싶어요. 국민 누구나 정부정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돕고 싶습니다.”

김철휘 비서관의 책 '통하는 말 통하는 글'에 나오는 연설문 작성 방법. 김 비서관은 연설문 쓰기와 자기소개서 작성법이 닮았다고 했다.

연설문과 자기소개서

김 비서관은 “연설문과 자기소개서, 보고서는 닮았다”고 했다.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을 위해 연설문 작성 노하우를 알려줬다.

①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아 구성안을 만들어라. 연설 행사가 잡히면 자료부터 찾는다. 자기소개서나 보고서도 ‘근거’가 중요하다. 책이나 회사 홈페이지 등을 보고 정보를 찾아야 한다. 출처가 명확한 자료를 구해서 정리하고, 글 구성안을 만들어 흐름을 잡아라. 서론-본론-결론 구조를 꼭 지킬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는 게 힘이 있을 때도 있다.


②경험을 말하라. 연설을 할 때는 방문한 지역이나 행사에 얽힌 개인적 추억을 풀어놓는다. 거리감을 좁힐 수 있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에도 경험을 담아야 한다.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표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넣어야 한다.


③핵심메시지를 짧은 문장에 담아라. 문장이 길어지면 메시지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국민 여러분, 미국에서 시작한 글로벌금융위기 여파로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우리를 둘러싼 국제여건이 불투명해지면서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렵다”라고 연설을 시작하면 청중은 본론을 듣기까지 한참 기다려야 한다. “국민 여러분,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짧게 정리한 후 본론에 들어가는 게 듣기도 읽기도 좋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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