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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감독 "교육 앞둔 신입사원 왜 죽었냐면…"

서른 넘고도 2년간 모은 돈 600만원 결혼생활 막막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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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 갇힌 미나가 오히려 현실적
30대에 영화라는 꿈 찾아
갑갑한 현실, 그러나 위기에는 기회 있어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 대한민국 국민은 터널 안에 갇힌 한 남자에 집중했다. 어둡고 갑갑한 배경,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라는 악조건에도 영화에는 700만명 넘는 관객이 몰렸다. 암담하고, 슬픈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 ‘터널’ 얘기다.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9월 19일, 홍대 앞 커피숍에 들어선 김성훈 감독은 다른 인터뷰에서 봤던 야구모자에 검은색 라운드 티, 회색 재킷 차림이었다. 

김성훈 감독

출처jobsN

터널이 너무 길어진 요즘

아무래도 취업 준비생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터널 속 또 다른 ‘생존자였던’ 미나(남지현)를 이야기하는 관객들이 많다. 감독이 요즘 취준생에게 주는 메시지 같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많이 접했던 이슈가 정규직·비정규직, 취업 문제였다. 저희 때는 고등학교 3년만 지옥이었다. (김 감독은 빠른 1971년생이다) 취업이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요즘처럼은 아니었다. 서울대 다니는 친구는 ‘갈 데 없으면 현대나 삼성가지 뭐’할 때다. 요즘은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부터 ‘터널’이 시작된다. 너무 길어졌다. 서울대 나와도 취업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미나도 터널을 통과했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의 부패·부실로 그 속에 갇혀 버리고 만다.

결국, 직장인 이정수(하정우)는 살아 돌아오고, 아직 신입사원 연수도 못 간 취준생 미나는 터널을 나오지 못한다.

정수는 꼭 살리고 싶었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만, 최소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결국, 미나는 희생됐지만, 오히려 현실에는 더 가까운 캐릭터다.

영화에서 이정수가 ‘하도영업소 이정수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시대 고단한 직장인의 모습 같다.

주부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세일즈맨이라는 직업, 직책이 이정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편집됐지만 터널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 이정수가 렌터카 사장에게 주문 확인 전화하는 장면도 있었다. 미나가 터널을 나가면 정수에게 차를 사겠다고 약속하는 장면도 찍었다.

오달수가 맡은 구조대장 김대경을 비롯해 신입 소방관, 사고로 죽는 최 반장 등 많은 ‘직업인’이 나온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가 현실 반영적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직업군이 영화 속에 들어오게 된다. 119 소방관들과는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들었다. 보급 시기에 따라 색깔이 제각각이고 낡은 헬멧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기자 입장에서 영화에 나오는 기자를 보기가 낯 뜨겁기는 했다.

한 소방관에게 들은 얘기다. 실제로는 ‘생명이 중요해요? 보도가 중요해요?’라는 소방관의 물음에 기자의 답은 ‘당신은 생명을 구하고, 우리는 보도하는 사람이다’였다고 했다.

영화 터널 촬영 현장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 배우 하정우와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다.

출처jobsN

30대 초반, 영화판 막내로 시작

한국외국어대 헝가리어과를 나왔다. 어떤 이유였나?

재수 해서 헝가리어과를 갔다. 사실 당시 북방정책의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옛 소련 개방 정책이 화제였다. 대우도 동구로 사업을 확장할 때고, 동유럽 쪽에 기회가 있다는 분위기였다. 동구권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영화를 공부했나? 어떤 계기로 영화판에 들어오게 됐나?

대학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군대에 갔다. 제대하는 해(1998년) 초가 돼서야 ‘나와서 뭐하지’를 생각했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 똑같이 출근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영화였다. 어릴 때 살던 강릉에서 친척이 영화관을 해 초대권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말마다 4편씩 봤다. 그때까지 영화를 공부한 적은 없었다.

맨땅의 헤딩이었겠다.

우선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반 정도 유학 준비를 했다. 토플 공부하고, (입학을 위한) 에세이를 썼다. 에세이에 이것저것 썼는데, 그걸 거짓말이 안 되게 하려다 보니 영화학교 프로그램을 들었고, 단편도 찍었다.그러다가 유학은 포기하고, 우리 나이로 31살에 충무로 연출부를 시작했다.

김성훈 감독

출처jobsN

29살에 결혼했는데, 상당히 불안했을 것 같다.

감독이 목표였지만, 내일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다. 서른 살 넘어 2년 동안 번 돈이 모두 합쳐 600만원이었다. 그때 저를 위로한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그래도 네가 부럽다’고 할 때 ‘난 네 아파트가, 월급이 부럽다’고 했다. 당시에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 건 아마 취직이 그들의 꿈이 아니었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친구들은 ‘그래도’를 빼고 부럽다고 한다.

4년 만에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감독 데뷔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고 바로 온 연출부와는 다르기는 했을 거다. 낭만보다는 현실이 가까웠고, 좀 더 조급함도 있었다. 기간은4년이지만 한 일의 양은 더 많았을 거다. 운도 좋았다.

그런데 결과는 안 좋았다.

전국 관객 57만이 들었다. 관객도 안 들었고, 평도 안 좋았다. 첫 작품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많이 못 만든 미안한 영화다. 같이 했던 스태프에게 지금도 미안하다.

첫 영화 실패, 7년 와신상담


어떻게 보면 ‘끝까지 간다’를 내놓을 때까지 7년 반이라는 기간은 일반 직장인으로 보면 재취업 기간이었을 것 같다.

취업했다가 바로 잘린 거다. 영화 끝나고 나니 남은 돈이 없더라. 때마침2008년 첫째가 태어나고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근데 그때부터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다. 편의점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활비는 벌었겠지만,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버텼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형제·자매에게 ‘빌붙었다’. 그때 썼던 것 중 하나가 ‘끝까지 간다’다.

영화 터널에 등장한 남지현(미나 역). 미나는 어렵게 엄마와 통화가 된 후 "회사에 신입사원 교육 꼭 참석한다고 전해줘"라고 말해 영화 관람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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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었을 것 같다.

첫째 포기해도 다른 걸 할 게 없었다. 둘째 영화가 너무나 재밌다는 걸 알아버렸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한 감독에게 두 번째 영화는 정말 쉽지 않았다. 영화는 토익도 없다. 내 능력을 점수로 보여줄 수도 없다. ‘끝까지 간다’는 투자를 못 받아 3년을 더 끌었다. 그럴수록 시나리오를 더 단단히 만들었다.

어떻게 버텼나?

아마 혼자였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가족이 있었고,동료 그룹이 있었다. 탁구치고 맥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있었다. ‘품행제로’ 조근식, ‘나의 독재자’ 만든 이해준, ‘더테러라이브’의 김병우,탕웨이의 남자로 더 유명해진 김태용 등이다. 그 때는 다 찌질할 때다. 옆을 보면서 ‘얘도 이렇구나. 나 혼자만 이러는 거 아니구나!’ 했다.

취준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자유분방해야 할 친구들이 ‘취업’ 딱 그 하나 보고 산다는 게 안타깝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위기(危機)’라는 말이다. 위태로울 ‘위’에 기회‘기’다. 위기가 기회라고 하는데, 사실 위기 안에 기회가 있다. 만약 저도 ‘애정결핍’이 적당히 200만명, 300만명 들어서 두 번째 작품을 쉽게 했다면, ‘끝까지 간다’는 못 찍었을 거다. 찍었다고 하더라도 투자를 쉽게 받았다면,그래서 덥석 초고에 찍었다면, 시나리오를 논리적으로 다지는 시간도 갖지 못했을 거다.

글 jobsN 조재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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