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400개만에 한전 합격, '죽고 싶다'는 생각도..

조회수 2020. 9. 24. 19: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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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경험을 한전과 어떻게 연결시켰을까?
여태껏 쓴 자소서만 400개 이상
5번째 도전만에 한국전력공사 취업 성공
전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사람 되고파

전인숙(29)씨는 2016년 상반기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했다. 경기포천지사 요금관리부에서 5월 30일부터 3개월간 수습과정을 밟고 있다. 4학년인2012년부터 올 초까지 무려 4년 동안 취업준비를 했다. 그동안 쓴 자기소개서만 400여개. 2013년 2월 졸업 후 취업하기까지 공백도 길었다. 

 

한국전력공사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신입 초봉은 3194만원. 서류전형단계 경쟁률이 100~150대1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전씨는 2014년 하반기부터 채용형인턴, 상·하반기 공채에 5차례 지원한 끝에 ‘최종합격’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묻지마 지원'에서 벗어나 모든 활동 목록화

스펙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중앙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공부했다. 학점은 3.72, 졸업 전부터 국토대장정 등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여했다. 인턴·아르바이트 경력도 다양했다. 리서치 업무부터 예식장 안내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졸업 직전에는 리히텐슈타인으로 6개월간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이렇게 취업이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다양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력서는 화려했다. 하지만 서류 합격률은10%에 불과했다. 연이은 낙방에 슬럼프에 빠졌다. 

회사나 직무를 고려하지 않고 대기업 위주로 지원했어요. ‘묻지마 지원’이 탈락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을 흘려보냈다.  


전씨는 2014년 하반기부터 한국전력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했다. 그해 여름 한국전력공사에서 인턴을 한 게 계기였다. 5개월 동안 민원 처리, 수금 업무를 맡았다.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업무도 제 적성에 맞았어요. 불만사항을 끝까지 들어 주기만 해도 고객들이 화를 내지는 않았어요. 제가 남의 이야기 듣는 데 자신 있었거든요.

채용 시 나이·학점·경력을 묻지 않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대학교 때 했던 대외활동∙인턴∙아르바이트 등을 시기별로 정리했다. 활동마다 내용과 느낀 점을 적었다. 학교에서 팀 과제를 할 때 조장을 맡았던 경험까지 포함했다. 60개가량의 활동을 A4용지 3장에 담았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고, 어떤 활동이 직무와 연관을 갖는지 눈에 보였어요.
출처: jobsN
입사동기들과 함께한 전인숙씨

인턴으로 일하며 경험한 한국전력 사무직은 '서비스 마인드'와 '협력'이 가장 중요했다. 이와 관련된 경력을 자소서에 ‘골라’ 적었다. 어학연수 등 직무와 관련 없는 활동은 아무리 좋아도 언급하지 않았다. 서류는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직무를 분석한 덕분이었다. 

조급한 마음 들수록 기본기 다져

하지만 이번엔 인적성이 발목을 잡았다.

먼저 합격한 친구들에게 인적성을 잘 푸는 법에 대해 물어봤어요. 하지만 의견이 천차만별이었죠. 한 친구는 잘 안 나오는 영역은 아예 포기하라 했어요. 다른 친구는 골고루 맞아야 한다고 했어요.

시중에 ‘한국전력’이라 쓰여있는 책은 모두 풀었다. 정답만 보고 해설서는 보지 않았다.

해설을 보면 다 안다고 착각해요. 잘 모르는데도 넘어갈 수 있어요. 같은 문제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장 취약한 도형 전개도 문제에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했다. 직접 전개도를 오려 비닐 봉투에 넣어 갖고 다녔다. 이동하며 버스∙지하철 안에서 접어봤다. 그래도 인적성 단계를 넘기기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4년 하반기 공채와 채용형인턴, 2015년 상반기 공채에 탈락했다. 


졸업을 한지 시간이 꽤 흘렀다. 전씨는 조급했지만 공부만 하지 않았다.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를, 오후에는 스터디를 했다. 

저는 공부만 하다 보면 제 생각에 갇혔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비관적인 생각을 떨치려 했어요.

전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2015년 하반기부터 한국전력이 채용 시 NCS를 도입한 것.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중에는 제대로 된 책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바뀐 채용과정에 정신이 흔들렸다. 2015년 하반기에는 서류전형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2016년 상반기는 마지막 기회였다. 2년 전 따놓은 오픽 IH, 한국사 2급,KBS한국어 3+ 자격증의 유효기간이 곧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반기 공채를 위해서는 자격증을 다시 따야 했다.

 

NCS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습용과 교수용으로 나온 NCS자료를 모조리 인쇄했다. 6개 유형 중 ‘자료해석’이 난관이었다. 공무원 시험용인 PSAT 기출문제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인쇄해 공부했다. 인적성과 마찬가지로 해설서는 보지 않았다.

스터디원과 한 문제를 두고 2시간동안 고민한 적도 있어요.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을 때가 많았죠. 하지만 기본기를 다져야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공부한 책과 인쇄물을 쌓아 놓으니 상체키를 넘을 정도였다.

출처: jobsN
한국전력공사 입사 동기들과 신입사원 교육 받던 시기.

전공지식 답변 못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것

처음으로 인적성을 통과했다. 어렵게 얻은 면접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면접은 혼자 대비했다.

합격해서 흥분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 떨어질 것 같았어요. 그만큼 마음가짐을 조심했어요. 정말 간절했으니까요.

전씨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기출 질문과 예상 질문을 정리했다. 질문은 정리했지만 답변은 정리하지 않았다.

답변을 달달 외웠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전에 정리해 둔 활동 목록을 보며 이 질문에는 이런 경험을 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먼저 한국전력에 입사한 친구들에게 전화해 면접 질문과 분위기도 들었다. 


1차 직무역량면접 당일. 전공 지식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3명의 지원자 중 전씨가 가운데 앉았다. 면접관이 ‘공유경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잘 모르지만 알고 있는 대로 답변을 하자면…

면접관이 전씨의 말을 끊었다. ‘ESS(신재생에너지)’를 묻는 질문에는 잘 답변했다. 하지만 첫번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반면 양쪽 지원자들은 전공지식을 막힘없이 술술 답변했다.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는지 물었다. 전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필했다.

저는 제 자신보다 팀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저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국전력에 없으면 안 되는 인재가 되고 싶습니다.

거짓말하면 꼬리질문에 대처 못해, 솔직함이 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빛을 발했다. 1차 면접에 합격한 것. 마지막 경영진 면접만 남았다. 이 관문만 통과하면 합격이라는 사실에 전씨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면접장에 2시간 전에 도착했어요. 그런데도 이날은 너무 떨렸어요.”

답변할 때마다 말끝이 떨렸다.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면접관이 ‘본인과 맞지 않은 사람과 근무할 때 어떻게 대처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전씨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거짓말을 하면 꼬리질문에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회사와 자신이 어울린다면 억지로 포장하지 않아도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바꾸기 위해 채근하기 보다 제가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사무직 최종합격 명단 20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년전 인턴으로 같은 직무를 경험했지만 배울 게 많다.

사무직이라 해도 전기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아야 민원처리를 할 수 있어요.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서는 직원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선배들께 하루에 10번이상 질문해요. 그게 5번으로 줄고, 저 혼자 능숙하게 처리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jobsN 이연주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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