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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만원 날릴까 벌벌 떠는 회계사 사연은?

조회수 2020. 9. 24. 1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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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연봉 꿈도 안꿔, 일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
회계 감사해야하는 기업 눈치보는 회계사들
보수 실망해 떠나는 회계사 급증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부품 제조 기업. 이 업체 직원들은 회계사가 감사를 나올 때마다 분주해진다. 여러 창고에 나눠 보관하던 재고물품을 한 개 창고로 몰아 넣는 것.

이후 회사 담당자는 회계사에게 해당 창고만 보여주고 다른 창고에도 이만큼 재고 물품이 쌓여 있다고 설명한다. 회계사는 다른 창고도 보여 달라고 말할 법 하지만 대개는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이 기업의 재고 자산은 실제 쌓여있는 것보다 훨씬 부풀려 기재된다. 


기업의 재무재표는 자산, 부채, 매출, 순이익 등 기업의 현황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서류다. 이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고,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관련 기업은 거래를 튼다.


그런데 최근 허위 재무제표에 의한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회계사들은 이에 대한 1차 방어선 역할을 해야 하지만 철저한 을(乙) 입장에 있는 공생 관계 때문에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회계 업계는 불안한 회계사들의 지위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jobsN 안수진 디자이너

회계부정 예방못한 회계법인

정부는 자산 100억원 이상 주식회사 등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대해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회계법인이 서류 점검과 현장 실사를 통해 각 기업의 재무제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외부 감사를 받는 법인은 2만2000개로 전체 법인의 4.5% 정도 된다.


이런 외부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분식 회계 사건이 자주 터지고 있다. 2014년 모뉴엘 사태가 대표적이다. 모뉴엘의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이 2007년 240억원에서 2013년 1조2737억원으로 53배가 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억원에서 1103억원으로 64배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급성장하는 회사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단기차입금이 1019억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70%를 차지한 것. 

영업이익이 급증하는데 단기차입금에 의존하는 기업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이런 내용의 재무제표가 어떻게 외부 감사를 통과했는지 의심스럽다. (신한은행 관계자)

모뉴엘 외에도 대우조선해양 등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기업들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보수 날릴라’ 을(乙) 위치 회계법인

회계법인이 감사를 제대로 할 엄두를 못내기 때문이다. 회계 법인이 한 개 기업을 감사하고 받는 돈은 지난해 기준 평균 2800만원. 깐깐하게 감사를 해서 해당 기업 눈 밖에 나면, 그 회계 법인은 교체돼 일감을 잃고 2800만원을 날리게 된다.


특히 회계법인은 기업들에게 감사를 하면서 세무, 경영컨설팅 등 서비스를 해주고 용역수입도 얻고 있는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감사업무로 한 번 거래를 트면 영업을 통해 다른 서비스 계약도 맺을 수 있다. 편의점의 담배처럼 감사업무가 다른 서비스를 팔기 위한 미끼상품 구실을 하는 셈이다. (삼정KPMG의 한 회계사)

제대로 감사를 했다가 교체되면 이런 용역 보수도 날리는 것이다. 


2014년 기준 1726개 상장회사들은 감사용역 보수로 861억9000만원을 지출하고, 용역보수로 417억6000만원을 썼다. 회계법인 입장에서 이런 수입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국 회계사들은 웬만한 지적 사항은 대충 넘어가면서 기업이 해달라는대로 재무제표 확인만 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감사할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고객을 상대로 제대로 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 원하는대로 보고서를 만들어준 뒤 돈을 받는 용역업체로 전락했다. 자괴감에 괴로워하는 회계사들이 많다. (한 회계사)

수습회계사 의존도 증가하는 회계업계

회계법인들의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회계법인 숫자는 2011년 274개에서 2014년 8월 422개로 증가했다. 매년 1000명에 가까운 회계사가 배출된 데 따른 것이다.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경쟁이 격화되니 회계사에 대한 처우도 예전같지 않다. 수습을 뗀 초임 회계사의 연봉은 4000만원에 못미쳐, 웬만한 대기업 신입사원 보다 낮은 수준이다. 5년차가 돼도 5000만원 수준이고, 책임자 직급으로 올라서도 억대 연봉은 꿈꾸기 어렵다.

절대적으로 낮은 급여는 아니지만 고시 수준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대가치곤 만족스럽지 않다. 막상 회계사가 되고 나면 실망하는 후배들이 많다. (회계사 A씨)
4년 넘게 준비해 겨우 붙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많이 난다. 차라리 어깨 펴고 일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을 볼 걸 그랬다. (회계사 B씨)

결국 입사 후 떠나는 회계사들이 많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회계법인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등록 1~5년 차 회계사 숫자가 9대 법인 기준으로 2010년 1834명에서 지난해 1751명으로 감소했다. 이들이 회계법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7%에서 33.7%로 줄었다. 


이들의 빈 자리는 매년 1000명씩 공급되는 수습회계사들이 메꾸고 있다. 9대 법인의 수습 회계사 수는 2010년 1107명(24%)에서 2014년 1388명(26.7%)으로 늘었다. 

수습 회계사들이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잦을수록 감사 품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회계사들은 5년차가 넘으면 새로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 영업 부담을 안게 되는데, 이게 싫어서라도 일반 기업으로 경력 입사하는 회계사들이 많다. 숙련 회계사가 모자라 책임자 직급이 돼서도 현장 실사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회계사가 많고, 결국 수습 회계사에 의존하면서 감사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금감원 조사기업 5곳 중 1곳 회계부정 발견

이런 현실이 모여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5년 간 회계부정으로 조치를 받은 기업은 294개에 이른다. 금감원은 회계부정이 일어나지 않는지 감리 조사를 나가고 있는데 조사 기업 5곳 중 1곳에서 회계부정이 적발된 결과다.

 

'헐값 수임'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감사 품질이 떨어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공인회계가회가 작년 회계감사를 받은 아파트 8319단지 중 3300곳의 감사보고서를 골라 조사한 결과 약 1800곳(54%)의 감사보고서에서 회계감사 관련 규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헐값 수임으로 인한 부실 감사 사례가 많았다. (회계사회 관계자)

회계사들이 스스로 부정을 벌이기도 한다. 한 회계법인의 경우 회계사 26명이 감사를 나간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회계와 관련된 부정을 근절하려면 관련 제도를 정비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회계법인과 기업 간 갑을 관계 시정 노력이 필요하다. 한 전문가는 “”고 지적했다.

회계법인이 소신대로 감사를 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합리적인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 (회계 관련 전문가)

jobsN 박유연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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