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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싫어증" 만든 사람 직업은?

조회수 2020. 9. 24. 1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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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해본 적 없지만 10가지 직업을 겪고 나온 결과물
직장 無경험자의 '사이다'만화
'랩하는 부처' 불교미술가→직장인 만화로 큰 인기
광고 섭외 쇄도로 제2 인생 열어
꿈이 없었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이라는 걸 꾸게 되었어. 퇴사라는 꿈을…퇴몽이야

요즘 소셜미디어(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삽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직장인의 속내를 묘사하는 역설적인 그림체와 대사. 한 눈에 주인공에 동화된다.


“딸 같아서 그래” 여직원의 손을 만지는 상사에게 “아들만 둘이잖아요”라며 되받아 치고, 지나가는 개에게 “이거 너 가지렴”이라고 '보람'을 내민다. 

하나같이 웃는 표정의 주인공들은 속으로 울화가 치밀지만 겉으로 웃어야 하는 직장인의 속내를 잘 드러낸다. 

미술 작가 양경수(33)씨가 ‘약치기 그림’ 계정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삽화들이다. 웹툰처럼 연속성 있는 만화가 아니다. 그림 한 컷에 독립적인 상황을 담는다. 새 삽화가 올라올 때마다 '공감한다'는 의미의 ‘좋아요’가 수천~수만개 달린다.

그리는 기술 대신 스토리텔링이 중요 

그림이 재밌어요.

메시지의 힘인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해요. 압축적으로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하죠.

의도를 갖고 그리는 건가요?

가끔 '꼰대들을 향해서 한마디 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누구를 비난하거나 상처주려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재밌으면 돼요. 보는 사람이 공감하고 '피식' 웃는 게 딱 좋습니다.

그는 추계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3~4년은 직장생활을 한 것 같지만, 회사에 몸 담은 적은 없다.

불교미술가이면서 직장인의 생활을 그린 만화로 공감받고 있는 작가 양경수씨/jobsN

그림만 그려온 건가요?

아뇨. 회사원 빼면 다 했어요. 대학 가면서 독립했거든요. 일종의 가출. 온전한 내 삶을 추구하자는 다짐이었죠. 생활비, 학비, 재료비를 전부 제가 벌었어요. 초등학생 미술 과외 부터 안해 본 게 없어요. 굳이 거쳐간 직업을 따지면 한 10가지 정도 될 것 같네요. 미술과 관련된 일이 많았는데, 아예 상관없는 클럽 직원이나 운전 일 같은 것도 해봤어요.

사업도 해봤나요?

네. 2000년대 초반 서울 홍대앞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팔았구요. 제대해선 벽화 그리는 일을 했어요. 서울 동대문에서 인테리어 사업도 해봤어요.

잘되던가요?

가장 크게 벌렸던 게 동대문 인테리어 사업이에요. 상점 내부 인테리어를 해주는 1인 기업이었는데요. 쓴맛을 많이 봤어요. 다른 상인들은 내공이 대단하신데, 저는 20대 중반이라 연륜도 요령도 부족했거든요. 한 번에 수백만원 벌어본 경험이 있긴 한데, 결국 잘 안됐어요. 사기당해 돈 떼인 적이 있고, 돈이 안 벌려 2000원으로 며칠 버티기도 했어요.

2000원으로 며칠을요?

달걀 20개를 사서 아껴먹었죠. 2000원으로는 30개짜리 한판은 못 사더라고요.

넉넉지 않은 생활이 원망스럽지 않았나요?

불편하긴 했죠.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하지만 원망이나 증오 같은 건 없었어요. 스스로 내 생활을 꾸리는 게 뿌듯했어요.

그때 경험이 삽화에 도움 되나요?

술로 돈 버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현실감각을 갖고 그림 그리게 된 거예요.

직접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회사원 친구들이 많은 얘기를 해줘요. 카페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귀동냥도 하구요.
지난달 서울 연남동에서 열린 양경수 작가의 전시회. 불교를 주제로 그려온 그림들을 볼 수 있다./양경수씨 작품

순수 미술 전공…상황에 따라 다양한 시도

불교 미술을 하는 부모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부모님은 그가 불교 미술을 이어받길 바랬다. 하지만 왠지 모를 반항심에 서양화과에 진학했고, 한동안 불교미술과 담을 쌓고 지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나요?

미술과 불교 문화를 일상처럼 접했어요. 하지만 생각만큼 그림이 잘 되지 않았어요. 실력 없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죠.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보면 많이 부러웠어요.

포기하고 싶었겠어요.

아뇨. 좌절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지?'란 마음으로 노력했죠.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녔는데요. 그림이 좋아 무협만화를 그려서 친구들과 돌려봤어요. 직접 스토리를 짜고 만화를 그렸죠.

이 경험으로 2010년초 '웹툰 스토리 작가'에 도전했다.  

친구를 통해 웹툰 작가를 알게 됐어요.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어요.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때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디지털 기기를 배워서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불교 미술이요.

불교 미술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 아닌가요?

그랬죠. 그런데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불교미술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어려서 접했던 영향 때문인가봐요.

양경수 씨의 불교 미술은 도발적이다. 부처님이 랩을 하고 디제잉을 한다.

그림이 독특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불교 미술하면 지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교 미술이 융성하던 옛날로 돌아가면 굉장히 앞서가고 유행하는 문화였어요. 그 메시지는 현대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죠. 이걸 알려야 하는데 옛날 방식으로 할 수는 없고 새롭게 바꿔본 거에요.
양경수씨 작품

불교계에서 항의하지 않나요? 

아뇨. 제가 아는 스님이나 불자 그 어떤 분도 나쁜 말씀 하시지 않아요. 오히려 재밌게 봐주시고 불교를 널리 알릴 수 있다며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미술계 평가는 어떤가요.

밖에서도 알아봐 주세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내년 1월까지 전시회를 열어요. 네덜란드 한 미술관에서 제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직접 섭외가 왔어요.

미술 작가로서 목표는 뭔가요?

세계 100위권 작가가 되는 겁니다. 세계에서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워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100명을 꼽으라면 술술 나와요. 그 100등 안에 들고 싶어요.

불교 미술 대신 삽화로 인기를 얻어 허탈하진 않나요? 

전혀요. 그림에는 위아래가 없어요.

영감을 받는 다른 분야가 있나요? 

음악을 좋아해요. 특히 힙합을 좋아합니다. 힙합이라면 국내외 안가려요. 클럽도 자주 가죠. 이 인연으로 래퍼 ‘MC스나이퍼’의 뮤직비디오와 힙합 듀오 ‘배치기’ 음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어요.
가장 널리 알려진 양씨의 삽화. 올해 5월에 출간돼 한달 만에 5쇄를 찍어낸 히노 에이타로의 책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표지 그림이다.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내용 뿐 아니라 표지에 등장한 ‘돌직구’ 삽화로 더 유명해졌다.

유명해지고 싶은 세속적 마음 다스리고 있어

 

이제 그는 '핫한' 작가다. 삽화가 인기를 끌면서 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렸고 광고 제의도 숱하게 들어온다. 제품을 삽화로 그려달란 요청이다. 인터뷰도 하루 몇 건씩 한다. 

수입이 많이 늘었나요?

책은 계약금 받고 끝내는 방식이라 많이 팔려도 더 받진 않아요. 이제 광고를 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도움이 되겠죠. '사이다' 광고를 해보고 싶어요. 제 그림 보고 '속이 시원해진다'며 사이다라고 하시는 분이 많거든요. 예술로 돈 버는데 관심이 많아요. 예술가도 배고프지 않고 충분히 밥벌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곧 결혼할 여자친구가 돈 관리를 해주고 있는데, 착실히 모을 거에요.

다른 계획은요?

이제 대중에게 저와 제 그림이 알려졌어요. 삽화 덕분이죠.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불교 문화를 그리면서 삽화 같은 다른 시도도 계속 해나갈 거에요.

jobsN 감혜림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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