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앓던 삼성맨, 고민 상담사로 직업 바꿔

조회수 2020. 9. 24.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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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1등 입사한 청년, 우울증으로 퇴사한 이후
청춘 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
3년 동안 2만 7000건 상담

고민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지인에게 말못할 사정으로 끙끙 앓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럴때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무료로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 놀아본 언니들’은 2030 청년에게 무료 상담을 해주는 비영리단체로, 장재열씨(31)가 2013년 11월 만들었습니다. 장재열 대표 한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6명의 상담가와 3명의 스텝으로 늘었습니다.


'해결사’나 ‘결정 대행자’를 자처하지 않습니다. 고민하는 청춘이 스스로 되물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군요. 3년 만에 상담건수가 2만 7000건을 넘어섰습니다.

장재열 대표/jobsN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의 20대 끝은 우울증 환자인가”

장재열 대표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수석으로 입사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수십개의 스펙을 쌓은 결과죠. 그런데 1년이 안돼 퇴사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제일모직은 왜 그만두셨나요? 

대기업이 안맞는 사람인데 ‘서울대 나왔으니까 당연히 삼성 가야지’란 생각으로 회사에 간 탓이었어요. 경쟁심이 강해서 각종 시험에서 1등 하지 못하면 힘들었어요. 지쳐버렸고 우울증이 왔어요. 동생 또래 아이들에게 취업설명회에서 희망 섞인 말을 하고, 나중엔 불합격 통보를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결국 우울증이 심해져 치료를 위해 그만뒀어요.

치료는 어떻게 하셨나요?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자문자답 글쓰기를 권했어요. 네이버 계정을 2개 만들어놓고, 블로그에 자문자답을 시작했어요. 첫 질문은 ‘나는 10대 · 20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왜 20대 끝은 우울증 환자인가’ 였어요.

어떤 답변을 하셨나요?

나와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 가정하고 답변하라더군요. ‘목적 없이 1등에만 집착한 결과다. 결국 성취감 없이 지친거다’란 답을 했어요.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스스로 내린 답이죠. 이런 식으로 많은 자문자답을 했어요.
'좀 놀아본 언니들' 오프라인 상담 현장/jobsN

상담전공 박사, 회장님 아들도 문 두드리는 상담소

우울증 치료후 상담소를 시작한건가요? 

우울증이 어느 정도 치료되어, 재취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블로그는 치부를 드러낸 흑역사이니까 비공개로 바꿨구요. 그런데 며칠 사이에 메일이 100통 넘게 왔어요. 블로그 계속하면 안되냐구요. 어떤 분은 장문의 편지를 보냈어요. '정말 공감 많이 되고 위로받았으니 자기까지만 상담해달다'더군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얘기 들어 주다가 상담소를 열게 됐어요.

‘좀 놀아본 언니들’은 온라인으로 상시 상담을 진행합니다. 오프라인 상담은 한 달에 한 번 집단으로 진행하구요. 과거 장재열씨에게 고민을 털어놨던 평범한 사람들이 상담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교사 · 디자이너 · 심리학 박사 · 취준생 등 다양하죠. 각자 생업은 따로 있고 무료로 상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좀 놀아본 언니들, 왜 ‘언니’예요?

블로그 운영할 때, 제가 누군지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글만 보고 여자인 줄 알더라구요. 자꾸 저한테 ‘언니’라고 불렀죠. 그리고 답변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하니까 '세보였나' 봐요. 그들이 상상하던 이미지 대로 ‘좀 놀아본 언니’로 정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상담을 신청하나요?

20~30대가 가장 많이 옵니다. 미혼모 등 다양해요. 재벌 2세가 온 적도 있어요. 각자 위치는 다양한데 고민은 비슷해요. 어느 날은 20명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17개 사연이 이름과 성별만 다를 뿐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은 대학 선택의 문제. 중반은 진로 선택의 문제 그리고 30대는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도움을 주시나요? 

대부분 선택지를 들고 옵니다. “A랑 B 가 있는데 어떤 게 좋을까?”라고요. 저는 결정 대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계속 되물어요. “A는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이 걸리는데?”라고요. 대부분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고민하도록 도와줍니다.

도움이 되나요? 

저는 모든 해답을 줄 수 없거니와, 설령 해답을 주더라도 도움이 안돼요. 평생 그 친구와 함께할 수 없는데 먼 훗날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해요.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죠.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합니다.

상담 후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신 스스로 고민해서 자신을 알게 되죠. ‘내가 생각보다 현명하구나’라는 걸 깨닫고 자신감을 얻어 가요.

상담의 원칙이 있는 것 같네요. 정리해 주세요. 

다섯 가지예요. 첫째, 답을 주지 않는다. 둘째, 중요한 사고(思考)의 지점을 알려준다. 셋째,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고 알려준다. 넷째, 월권하지 않는다. 다섯째, 심리상담이 필요하면 병원으로 보낸다.
장재열 대표/jobsN

상담소로 돈 벌고 싶은 생각 없어

언제까지 하실 계획인가요?

우리 청년들이 고민을 호소할 데가 별로 없습니다. 끝은 생각하지 않고 계속하고 싶습니다. 시작할 땐 마음대로 했는데 끝내는 건 마음대로 안되네요.

지금 상담소에서 얻는 수익은 없나요? 

거의 없어요. 또래 동생들 상담해 주는 건데,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 다만 Youtube에서 <언니 티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구독자가 1만명이 넘으면서 딱 한 번 수익이 났어요. 15만원이요. 수익이랄 것도 없죠. 대신 개인적으로 방송하고 책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앞으로 돈도 잘 벌고 싶어요. 무료로 상담해주면서 저 또한 잘 벌고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목표예요.

고민 상담은 점점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 가족문제, 취업, 면접, 창업에 대해 폭넓게 고민을 상담해주는 코칭 분야는 국내에 12년 전에 도입돼 유망 직업으로 촉망받고 있습니다. 1대1 상담을 통해 돈을 벌수도 있지만, 강연, 저서 학술 활동으로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jobsN 김가영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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