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열정으로 이뤄낸 금메달, 시각장애 이겨낸 리우 패럴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광근씨

조회수 2020. 9. 24. 14: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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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까지 40연승 달성, IPC위원 꿈꿔
고2때 왼쪽 시력 잃어
2013년도까지 40연승 달성
최종 목표는 IPC(국제장애인올림픽워원회) 위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패럴림픽이 12일간의 열전을 끝내고 지난 19일 막을 내렸다. 대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은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최광근(29·수원시청) 선수를 만나 직업인으로서 장애인 운동선수의 삶을 들었다.


최광근 선수는 리우 패럴림픽 유도 남자 100kg급 금메달리스트다. 2012 런던 패럴림픽에 이어 이 체급 2연패를 달성했다. 

최광근씨 제공

최 선수는 수년 간 장애인 남자 유도 100kg급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데뷔전인 2010 터키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10 광저우 패러아시안게임, 2012 런던 패럴림픽, 2013 US오픈 국제유도대회, 2016 리우패럴림픽 등을 연속으로 재패했다.

최 선수는 비장애인 유도 선수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 왼쪽 시력을 잃었다. 이후 고도 난시가 생기면서 오른쪽 눈 시력도 점점 떨어져 시각장애인이 됐다.

최광근씨 / 잡아라잡

◇ 왼쪽 시력 잃고도 포기 하지 않아

-유도를 언제 시작했나.

다이어트를 위해 초등학교 때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몸무게가 100kg이 넘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마침 학교 근처에 유도 체육관이 있어, 어머니 권유로 다녔다. 이후 중학교 때 유도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때까지 유도 선수에 대한 꿈은 없었다. 밤에 합숙소를 몰래 이탈하는 일이 잦았다.

 

-왼쪽 눈은 어떻게 다치게 된 건가

2003년 강릉 주문진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훈련 중 선배의 손가락에 왼쪽 눈이 찔렸다. 처음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부상이 잦았고 금방 회복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망막박리증 진단을 받았다. 망막층이 찢어져 눈 속의 수분이 새어 들어가 망막의 일부 또는 전부가 안구벽과 떨어지는 현상이다. 왼쪽 눈은 거의 시력을 잃게 됐고, 난시가 생기면서 오른쪽 시력도 점차 떨어지게 됐다. 

-상대 선수를 원망하지 않았나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유도라는 운동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눈이 다쳐 속상했던 건 사실이지만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 선배와 지금도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최광근씨 / 잡아라잡

-시력을 잃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유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어머니 권유로 시작한 유도였다.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역경 속에서 훈련에 매진하다 보니 유도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생겼다.  이후 유도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당시 조문근 코치님이 멘토 역할을 해주셨다. '할 수 있다' '극복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코치님의 도움과 부모님의 격려로 힘을 낼 수 있었다. 기술 연마와 훈련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바로 장애인 선수로 전향했나.

아니다. 한쪽 눈이 남아 있으니 계속 비장애인 무대에 남았고, 체육특기자로 한체대 진학도 했다. 경기 때마다 상대방이 왼쪽을 파고 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때 허리 기술을 연마했다. 왼쪽으로 파고 드는 상대방을 내 허리 반동의 힘으로 고꾸라뜨리는 '허리 감아치기' 기술이다. 이 기술로 비장애인 국가대표 선발전 5위까지 했고, 아직까지 내 주요 기술이다.

-언제 장애인 선수로 전향했나

2010년이다. 대학교 입학 후 합병증이 찾아왔다. 녹내장, 백내장 등 신경계통의 손상 문제가 왔고 난시가 심해지면서 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게 돼 장애인 선수로 전향했다.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 플리커 제공

매 경기 결승이라 생각하며 싸웠다

-선수촌의 훈련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장애인 선수들은 태릉이 아닌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훈련을 받는다. 오전 6시-7시 30분, 오전 10시-12시, 오후 3시-5시, 오후 8시-9시의 하루 네 차례 스케줄로 진행된다. 순서대로 기초체력 운동, 근력운동, 유도 훈련, 기술보강 훈련을 한다.     


-리우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했나 강력한 우승 후보가 따로 있었다. 우수한 선수들이 계속 유입돼 왕좌를 오래 지키는 건 무척 어렵다. 메달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열심히 준비한 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에 임했다. 매 경기 한 판 한 판 '이것이 결승전'이란 생각으로 승부를 즐겼다. 관중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2016 리우 패럴림픽 영국전 / 최광근씨 제공

-금메달 따기 까지 힘든 훈련을 견뎌낸 비결이 뭔가.

어머니와 아내의 응원이다. 책임감 때문에 부담도 되지만, 그만큼 더 힘을 내게 된다. 시합 전에는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며 힘을 냈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려 한다. '더 이상 런닝머신에서 뛸 일이 없을 거다' '이것이 마지막 훈련이고, 이것이 마지막 경기다'란  생각으로 매 순간을 견디고 있다. 


-직업인으로서 장애인 유도 선수의 삶은 어떤가.

소속팀에서 월급을 받고, 올림픽 등에서 금메달을 따면 연금을 받는다. 비장애인 올림픽 금메달과 대우가 같다.  소속팀 문제로 고생한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양평군청 소속으로 있었는데, 2014년 팀 계약이 만료돼 운동을 이어

 나가지 못할 뻔 했다. 이후 감사하게도 수원시청 소속으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6 리우패럴림픽 대회 금메달 2연패 최광근 선수 / 잡아라잡

어려움 속에서도 준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온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다. 조언 한마디 해 달라  

단순히 '희망을 가져야 한다'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히 준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자주 오지 않는다. 어쩌다 오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을 꾸준히 비축해 둬야 한다. 문제 앞에 주저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력을 잃었을 때, 녹내장·백내장이 발병했을 때, 소속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안이 기울었을 때 모든 어려움을 딛고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건 성실히 준비해 기회를 잡은 덕분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유도 선수팀은 모두 비장애인 실업팀이다. 장애인만을 위한 유도 실업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수원시청에 소속되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소속팀이 없는 장애인들은 생업의 문제가 걸려 있다. 장애인 실업팀을 만들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후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3연패를 꿈꾸고 있다. 선수 생활을 마치면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 들어가 스포츠 외교활동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

jobsN 김윤상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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