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명품 가전업체 밀레 오너가 광화문 찾은 이유는?

조회수 2020. 9. 24. 14: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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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독일 가전회사 '밀레' 비독일인 최초 해외법인장의 정년퇴임
쌍용상사에서 해외 시멘트 시장 주름잡아
밀레로 옮겨 깐깐한 독일인 신뢰 얻어
영업맨에게 중요한 건 '겸손'과 '신뢰'

밀레는 진공청소기·오븐·냉장고·세탁기 등을 파는 세계적인 생활가전업체다. 1899년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이 공동창업해 1904년 세계 최초로 전기 세탁기를 만들었다. ‘최초’ 행보는 거듭됐다. 1929년 전기 식기세척기를 개발했고, 1971년 세라믹 부분을 뜨겁게 달궈 음식을 조리하는 세라믹레인지를 만들었다.


밀레는 두 가문이 관리와 기술을 번갈아 맡으며 4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다. 현재는 진칸 회장이 관리를, 밀레 회장이 기술을 맡고 있다. 작년 34억9000유로(약 4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독일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인이 있다. 2005년부터 밀레 한국 법인을 이끈 안규문(65) 사장이다. 47개 해외 법인 중 밀레코리아의 성공은 독보적이다. 지난 10년 간 단 한 번의 적자 없이 매출상승률 413%를 기록했다. 월풀 등 다른 프리미엄 가전회사가 한국에서 맥을 못춘 것과 비교된다.

   

안 사장은 밀레에서 여러 최초의 역사를 썼다. 처음 비(非)독일인으로 해외 지사의 수장이 됐고, 인터넷 판매를 시작해 다른 해외 법인으로 확장시켰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3~4년 마다 교체되는 법인장 자리를 10년 넘게 유지했다.

안 사장이 10년 넘게 입었던 밀레 옷을 스스로 벗는다. 9월 27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 호텔에서 퇴임식이 열린다.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참석한다. 2016 국제가전박람회에서 진칸 회장은 "I miss him"을 3번 말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 사장을 만나 영업맨의 신화를 들었다.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는 안규문 사장 /밀레코리아 제공

20여년 영업맨에서 해외 법인장으로

“아내가 골라주었는데 괜찮지요.”

 

 9월 12일 서울 역삼동 밀레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안규문(65) 사장이 왼편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색에 빨간 테두리가 둘러진 포켓 치프였다. 10개 후보군 중 아내가 고심 끝에 골라주었다고 했다.


멋내기 위한 용도가 아닌, 남을 배려하기 위한 겸손함의 표시다. "오랫동안 해외 영업에 종사하다보니 '겸손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자신 있는 사람일수록 교만하지 않다."


1977년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쌍용상사 공채 2기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영업망이나 수출 판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때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잘나가던 시멘트를 담당했다. 해외 바이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리 저리 뛰었다. 회사 근처 여관이나 김포공항을 집으로 삼기 일쑤였다. 수출 유공 사원 표창을 받으며 입사 5년 만인 1982년 쿠웨이트 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여권을 갖고 있기만 해도 부러움을 사던 때였지요.”

 

이때 탄탄대로가 막혔다. 발령받자 마자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곧바로 철수했다. 갑작스런 전략 수정으로 고민하다 원형 탈모증이 생겼다.


굴하지 않았다. 당시 시멘트 수출 1위국이었던 일본에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시멘트를 팔았다. 이후 해외 근무 기회가 다시 찾아와 LA에서 5년, 태국에서 4년 일했다.


늦게 나마 아버지 역할을 하기 위해 2000년 쌍용상사를 나와 벤처기업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쌍용맨의 향수를 잊을 수 없었다. 3년만에 쌍용의 자회사인 코미상사로 복귀했다.


이곳에서 당시 판권을 소유했던 밀레의 한국 사업을 총괄했다.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중심으로 '붙박이 가전제품(빌트인)' 계약을 따냈다. “계약 한번에 각종 가전제품이 몇 천대씩 팔려나가니 본사에서는 놀라울 따름이었죠.” 밀레는 안 사장을 ‘미스터 안’이라 부르며 신뢰하기 시작했다.

 

2005년 쌍용이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독일 밀레가 코미상사 인수 의사를 밝혔다. 해외법인 형태로 한국에서 직접 사업을 하겠다는 것. 계약 조건에 안규문 사장이 들어갔다. ‘미스터 안이 쌍용으로 돌아가면 계약 무효’라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밀레 역사상 처음 비(非) 독일인 해외 법인장이 탄생했다.

밀레코리아 제공

'독일에서 밥솥 팔아 보라' 했어요

안 사장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법인장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취임 후 얼마 안돼 오븐과 커피메이커를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팔라는 겁니다. 안된다고 했죠. 주식이 빵이 아닌 밥이니까요. 커피메이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커피 수입량이 엄청나지만 대부분 커피 기업이 사는 겁니다. 소비자들은 그 기업이 만든 커피를 사죠. 그런데 본사가 이런 식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는 1년에 30만~40만대 팔리는데 한국에서는 왜 못 파냐면서요. '그럼 독일에서 밥솥을 팔아보라'고 했어요. 한국에서 엄청 잘 팔리는데 독일에서 왜 못파냐고요.”

(왼쪽부터) 밀레코리아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안규문 밀레코리아 사장·마르쿠스 밀레 독일 본사 공동 회장, 라인하르트 진칸 공동 회장, 악셀 크닐 마케팅 세일즈 부문 최고경영자 /밀레코리아 제공

대신 청소기·세탁기 등 한국에서도 많이 쓰는 제품을 더 팔기 위해 판로 다변화에 나섰다. 안 사장은 쌍용의 위기를 지켜보며 빌트인 계약의 한계를 피부로 느꼈다. 건설업계는 경기를 쉽게 탔다. 좋으면 한번에 많은 양을 팔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타격이 컸다. 2005년 소비자거래(B2C)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 판매에 나섰다. 본사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명품’이미지를 훼손한다는 것.


끈질긴 세일즈맨 정신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진공청소기만 파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명품'으로 홍보하자 곧 반응이 왔다. ‘한국에도 이런 제품이 들어와야 할텐데요’란 댓글이 달렸다. 200~300개 준비한 재고가 금세 동났다. 대기 고객에게 ‘일주일 내에 제품을 보내주겠다’고 약속 했다.


선박으론 한달 이상 걸린다. 비행기로 물량을 대달라고 본사에 요청 했다. “오랫동안 해외 바이어를 만나며 깨달은 건 ‘신뢰’였다. 한 번 깨지면 관계를 회복하기 힘들다. 고객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를 잃을 게 뻔했다.”

안 사장의 고집에 본사가 다시 항복했다. 비행기 3~4 편으로  나눠 청소기를 500대씩 보내줬다. 그렇게 안 사장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켰고, 본사는 2009년 전 해외법인에 인터넷 판매를 허용했다.

 

이불 빨래를 하는 한국 상황에 맞게 세탁기 용량을 키웠다. 독일에서는 주로 5kg짜리를 썼다. 한국에서는 2배 크기인 10kg을 출시했다. 300만원 가까이 되는 가격에도 1년에 3만대 씩 팔렸다.


국내 진출한 외국 가전제품 회사 최초로 AS 체계를 구축했다. ‘외국 회사는 AS가 엉망이다’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AS인력을 정규직으로만 고용했다. 서울 역삼동 건물을 산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한국에서 제대로 하는 기업'이란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대부분 전략이 주효했다. 밀레코리아는 2005년 법인 설립 이후 매년 두 자릿수 매출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IFA에 참가한 안규문 사장 /밀레코리아 제공

밀레 성공신화의 한 토막

“모두 미스터 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진칸 회장이 일본 등 해외 법인장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안 사장의 성공 이후 밀레는 47개 해외 법인 중 일본·홍콩·인도에 현지인 법인장을 임명했다.

   

1막은 영업맨, 2막은 외국계 사장. 자그마치 40년을 직장생활로 꽉 채웠다. 직원에게 공을 돌렸다. “백조효과란 말이 있어요. 제가 대표이니 주목을 받았을 뿐 직원들이 열심히 뛴 덕분입니다."

   

인생 3막을 앞두고 있다. 퇴임식 후 아내와 미국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다. 딸 안선주씨가 조지아대에서 교수로 있다. 안 사장은 “쌍용을 나오고 2달간 술자리가 굉장히 많았다.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아내가 나를 피신시키는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jobsN 이연주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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