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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회사에서 옮기는 지방 알짜 기업

조회수 2020. 9. 24. 14: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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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독일계 윌로펌프
독일계 144년 장수기업 윌로펌프
이직률 1~2%, 평균 근속연수 13년
삼성 등 좋은 기업 관두고 이직러시 이어져

딜로이트 컨설팅 싱가포르 법인에 다니던 전경윤(36) 씨는 최근 부산의 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서강대와 싱가포르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일본 가전기업 산요와 동국제강을 거쳐 세계 5대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의 촉망받는 컨설턴트였다.


현재 이 회사에서 그가 맡은 일은 경영전략 총괄. “퇴근 시간이 오후 5시 15분이에요. 회식이 많지 않고, 자기계발이 가능해요. 연봉이 좀 떨어졌지만 나에게 정말 맞는 기업이죠. 무엇보다 서울의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탈 필요 없는 게 좋습니다.” 

윌로펌프 직원/윌로펌프 제공

전 과장이 다니는 회사는 부산에 있는 '윌로펌프'. 윌로(WILO)그룹은 1872년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출범한 144년 글로벌 장수기업이다. 수처리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직원 7400명이 60개국에서 지난해 매출 13억17백만유로(1조6300억원)를 달성했다. 2000년 설립된 한국의 윌로펌프는 400여명의 직원으로 1711억원(순이익률 13%)의 매출을 올렸다. 주상복합 등 빌딩 펌프 서비스 분야에서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50~60%에 달한다.


윌로펌프는 '이직 고수'들에게 ‘서울 대기업을 관두고 옮겨도, 커리어가 쌓이는 지방의 알짜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년 신입사원 20명을 포함해 20~25명을 채용하는데, 채용인원의 30% 이상이 서울·수도권에서 몰려온다. 경쟁률은 기본 20~30대1. 부산 서면역에서 차로 23km 떨어진 부산신항 외딴 곳에 있는데도 직원이 몰린다. 윌로의 인사담당 임원과 직원들에게서 이유를 들었다.

윌로펌프 부산공장 전경/윌로펌프 제공

이직률 1~2%, 20년 역사인데 근속연수 13년

윌로펌프가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0%를 넘는다. 영업·마케팅 조직만 갖춘 다른 외국계 기업과 달리, 제품을 생산하면서 40여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을 두고 있다. 포스코, 삼성전자 등 대부분 국내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수출도 하고 있다. 수요가 꾸준한 제품 특성상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매출이 올랐다. 이런 위상 덕에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겸하고 있다.


윌로그룹은 국가 별 문화를 존중하는 인수합병 전략으로 성장했다. 그룹 역사상 인위적인 구조조정으로 구설에 오른 일이 없고, 독일의 여러 주요 매체가 고용친화적인 강소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한국 지사 역시 인위적인 구조조정 사례가 없다.


윌로펌프 직원들은 “연봉은 중견기업 수준, 복지는 대기업 수준, ‘워킹 라이프 밸런스’는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직률은 1~2%, 평균 근속연수는 13년이다. 역사가 40~50년을 넘으면서 평균 근속연수가 채 5년이 안 되는 국내 대기업과 비교하면 무척 긴 편이다. 

윌로펌프가 공개한 승진·평가제도/홈페이지 캡처

대졸신입 초봉은 3100만원. 매년 임금인상률은 5~6% 정도다. 과장급이 되면 5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연봉의 15~20%를 경영성과급으로 준다. 조천삭 인사담당 이사는 “개인 성과에 따라 연봉의 40%까지 성과급을 주는 경우도 있다”며 "좋은 직원이 있으면 희망액수보다 20% 인상된 연봉을 주면서 스카우트한다"고 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지향하는 독일계 기업답게 비상장회사인데도 매출·순이익같은 민감한 정보를 직원에게 매달 알려주고, 홈페이지에 인사 평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승진율은 사원→대리 90%, 대리→과장 70%, 과장→차장 50%, 차장→부장 30% 선이다. 조 이사는 “인사적체가 극심한 국내 기업 현실을 감안하면, 부장 승진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했다. 

윌로펌프 직원들

높은 일의 만족도

젊은 직원도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진행할 수 있다. 기획팀 전경윤 과장은 “2020년까지의 중장기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여러 대기업을 거쳐 이곳에 왔는데, 지금껏 일한 곳 중 브랜드는 가장 덜 알려졌지만 업무 스케일은 가장 크다”고 했다.


미국 유명 MBA를 나와 현대차와 삼성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재무를 총괄하고 있다”며 “전 회사에선 베트남, 호주 등 특정 국가 일만 담당했지만, 지금은 아시아 전체를 맡고 있어 보람이 크다”고 했다.


국내 A대기업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2년간 일하다 윌로펌프 유통영업팀으로 옮긴 이인건(30) 대리는 "아파트 단지용 펌프 설계, 제작, 판매, 배달 과정 전체를 관리하고 있다"며 "상사들이 ‘찍어 누르기 식’ 강요를 하지 않으면서도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줘 명확한 일의 목표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윌로펌프 사무실/윌로펌프 제공

배우자 부모 의료비까지 지원..5시15분 퇴근 

복지 혜택은 연봉 이상이다. 우선 충분한 휴식이 보장된다. 8월 첫주에 무조건 회사 문을 9일 간 닫아(셧다운제), 연초에 여름 휴가 일정을 미리 짤 수 있다. 이 기간은 기본 연차 15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 창립기념일·명절 연휴 앞뒤 자체 휴일·겨울 정기 셧다운, 주말을 포함해 연간 137일을 쉰다. 조 이사는 “휴가 때 일을 하는 직원이 일부 있지만, 현금으로 실비보상한다”고 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 20분부터 오후5시 10분. 불필요한 회식, 야근, 주말 특근을 찾아보기 어려워, 자기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인건(30) 대리는 “직전 건설 회사에서 중동 현장으로 파견돼 연봉은 높았지만 하루 18시간씩 일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저녁이 보장된 삶을 살고 있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직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자녀·부모·배우자 부모까지 실손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 보험으로 커버 되지 않는 의료비가 있으면, 2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한끼 당 7000원 가치의 점심과 저녁 구내식당 식사를 무상 제공한다. 혼자 사는 직원은 소정의 관리비만 내고 회사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다. 다른 직원은 심사를 거쳐 전세보증금을 지원한다. 

윌로펌프 직원들/윌로펌프 제공

서울에서 내려온 직원들은 출퇴근 지옥이 없어 행복하다. 오후 5시 15분이면 짐을 싸들고 여유롭게 차를 몰고 퇴근한다. 서울 출신 한 직원은 “서울에서 치여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오퍼가 있었지만 다 뿌리쳤다”고 했다.


생활비도 적게 든다. “40평 넘는 아파트 전세가 2억5000만원이 안 돼요. 서울에선 4~5억원은 줘야 하잖아요.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다만 승진할수록 연봉 상승폭이 작다는 점, 펌프시장에서 중국이 기술력으로 맹추격하고 있다는 점이 회사의 한계로 꼽힌다. 최근 오픈한 채용전용 사이트(https://wilo.recruiter.co.kr)를 통해 채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jobsN 이신영 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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