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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300만원으로 차린 꽃집 연간 10억 번다

조회수 2020. 9. 24. 14: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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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못 구해 다양한 직업 전전 노숙하던 부부의 대변신
스물여섯에 빈털터리 남편 따라 제주도로
300만원으로 차린 8평짜리 꽃집
12년째 연 매출 10억 꽃집으로 성장

1995년 여름 이해원(47)씨 부부는 낡은 자동차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서울을 떠났다. 목적지는 제주. 2박 3일이 걸려 완도에 도착, 제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남편 이광직씨는 서울에서 작은 신문사를 경영했다. 해원씨는 같은 신문사에서 6년 동안 편집기자로 일했다. 1995년 신문사 사정이 크게 어려워졌다. 설상가상 광직씨가 거래처에서 부도난 가계수표를 받으면서 완전히 문을 닫았다.


벼랑 끝 선택이었던 제주. 순탄치 않았다. 수산물 유통업, 신문사, 카페 등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잘 안됐다. 초기 자본금 1450만원이 6개월만에 300만원으로 줄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8평짜리 꽃집 ‘조천화원’을 차렸다. 2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다. 드디어 빛을 봤다. 전국 500여개 가맹점을 거느린 꽃배달전문점 ‘플라워몰’로 성장했다. 2004년부터 12년 째 연매출 10억 원을 올리고 있는 플라워몰 대표 이해원씨를 만났다. 

이해원씨/jobsN

스물여섯, 빈털터리 된 남편 따라 제주로

왜 제주 였나요?

원래 미국에 가려고 했어요. 미국에서 사업하는 남편 지인이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거든요. 남편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 저도 따라 떠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출국장에서 남편 여권기간이 만료된 사실을 알았어요. 재발급 받는데 일주일이 걸렸고, 그 사이 남편이 ‘영어도 못하는데 차라리 제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바다 건너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정말 대책없이 떠났어요.

스물여섯 어린 나이에 낯선 제주로 가는 게 무섭진 않았나요?

25년 동안 살아 온 서울을 떠나려니 두려웠어요. 그런데 막상 제주에 도착해 밤바다를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파도 따라 고깃배 불빛이 출렁거리고, 어부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줬어요. 뭐든지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정착해서 어떤 일을 했나요.

남편 초등학교 동창 분이 저희보다 5년 먼저 내려와서 활어차를 몰고 있었어요. 제주에선 농수산물 유통업이 최고라면서 남편 더러 자기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워보라고 하더라구요. 아내 분은 횟집을 했는데, 저는 그 분께 생선 손질하는 법을 배웠구요.

잘 되던가요.

한 달 쯤 됐을 때 칼에 손이 베어 며칠 동안 일을 못나갔어요. 그런데 그 쪽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어요. 제가 일이 서툴러서 같이 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러자 남편이 업종을 바꾸자고 했어요. 밤에 호프집으로 쓰이는 곳에 월 임대료 60만원을 내고 낮 시간 카페를 해봤어요. 일주일 동안 손님이 한 명 왔어요. 바로 그만뒀죠. 농가주택에 살게 해준다는 토마토 농장에 찾아갔지만, 집 바닥이 푹 꺼져 있었고 사방에 지네와 돈벌레가 기어 다녔어요. 결국 남편이 막노동을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한 달 만에 잘렸어요. 남편이 용접할 때 불빛을 정면으로 봤다가 앞이 안 보여 일주일동안 쉬었거든요.

생활이 힘들었겠어요.

돈을 아끼려고 끼니 대부분을 라면으로 해결했어요. 천지연 폭포 주차장에서 돗자리를 펴고 잔적도 있고요.
이해원씨 부부/이해원씨 제공

전재산 300만 원으로 차린 8평 꽃집 ‘조천화원’

꽃집을 차린 계기가 궁금해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 처음 가지고 온 1450만원을 거의 까먹고 300만원만 남았어요. 남편과 전화번호를 뒤지며 새로운 업종을 찾다가 한 꽃집의 작은 박스 광고를 봤어요. ‘꽃에 관한 모든 것, 00 꽃방’ 꽃의 예쁜 이미지도 있고 경조사 처럼 꽃이 필요한 일이 많기 때문에 실패할 위험이 낮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광고를 낸 사장님께 찾아가 창업 상담을 받았어요.

300만원을 어떻게 썼나요?

마침 조천 지역에 연세(年貰) 180만원으로 8평짜리 가게가 났어요.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였지만 작은 방과 부엌이 있어 살림을 하면서 매장 운영도 가능했죠. 50만원으로 ‘조천화원’ 간판을 만들고 나머지 돈으로 가게 인테리어를 했어요. 서울에선 300만원으로 꽃집 창업이 어림도 없지만 제주에선 가능하더라구요.

그럼 남는 돈이 거의 없는데요. 꽃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꽃을 도매로 가져와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외상을 했어요. 용기를 내 무작정 화훼 도매 사장님들을 찾아갔어요. ‘저희가 가진 돈이 없습니다. 외상으로 부탁합니다. 결제는 두 달 후부터 할게요.’ 사장님들이 두 달은 어렵지만 한 달은 외상을 해주시겠다고 했어요. 서울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이죠.

장사는 잘 됐나요?

외상을 했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되면 어쩌지’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첫 날 8만5000원 어치를 팔았어요. 6개월 만에 제대로 된 수입이었죠. 5000원짜리 꽃 화분을 사갔던 첫 손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하루 매출을 보고 먹고는 살겠다 싶었어요.

일을 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꽃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손해를 볼 때가 많았어요. 하루는 남편이 ‘켄자야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3만5000원에 주문을 받았어요. 꽃집 사장님이 손님에게 '그 꽃 모른다'고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할거라면서 주문을 받은거죠. 알고 보니 도매가격이 5만원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도매 농장에 들를 때마다 식물 이름을 닥치는 대로 외웠어요.
2003년 이해원씨와 플라워몰 직원들/이해원씨 제공

서울 출신 부부, 제주 조천에서 살아남다

조천은 제주에서도 텃세가 세기로 유명하다면서요.

맞아요. 조천사람들은 자존심이 세고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해요. '조천사람이 앉은 곳에는 풀도 안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에요. 처음에 ‘육짓(육지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여기 와서 꽃집 장사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텃세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남편과 함께 동네 경조사를 열심히 쫓아다녔어요. 곧 조천화원 부부가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조천 사람이라면 조천화원에서 꽃을 팔아줘야지'란 말이 나왔죠. 덕분에 조천읍에서 가장 유명한 꽃집이 됐어요. 꾸준히 매출이 올랐고 제일 좋았을 때는 한 달 600만원 매출도 올려 봤어요.
이해원씨/ jobsN

조천화원→제주지역 꽃배달전문점→전국 꽃배달전문점로 성장

꽃배달전문점은 언제 시작했나요?

전화번호부에서 우연히 서울 ‘목동꽃배달전문점’ 상호를 발견했어요. 제주 사람들은 차로 30분만 넘게 걸려도 먼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꽃집들도 보통 가까운 곳에만 배달을 했죠. 멀리 배달을 하는 꽃집이 없었던 거에요. 바로 시작했죠.

어떻게 전략을 짰나요?

114콜센터 안내원 휴게실에 ‘제주꽃배달전문점 조천화원’이란 상호와 전화번호가 적힌 거울을 보냈어요. 114우선안내 유료 광고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엔 콜센터 안내원이 친숙한 업체의 전화번호를 안내해줬거든요. 꽃배달 업체 번호를 물으면 우리 가게 번호를 우선 안내하도록 유도한거죠. 실제 우리 번호가 많이 안내돼 매출이 바로 늘었어요.

조천화원은 창업 2년 만에 제주시 연동에 있는 100평 매장으로 확장 이전했다. 동시에 전국꽃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국 꽃배달 서비스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400만원을 들여 홈페이지를 만들고 가맹점 500곳을 모집했어요. 가게 이름은 전국을 아우르도록 ‘플라워몰’로 바꿨고요. 주문은 플라워몰 제주 본점에서 전화와 온라인으로 받아요. 그 다음 가장 가까운 가맹점에 주문을 넘기면 그 곳에서 꽃배달을 해요. 결재액의 5%를 수수료로 받고 있어요.

요즘은 전화보다 인터넷 주문이 더 많은데요.

맞아요. 2000년대부터 인터넷 쇼핑이 대세가 됐어요. 온라인 시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매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죠. 포털에 매달 500만원을 내고 스폰서 링크 광고를 냈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팩스에서 주문서가 끊임없이 나와서 직원들이 쩔쩔맸죠.

새로 하는 마케팅을이 있나요?

광고비가 적게 드는 SNS마케팅(블로그, 페이스북 운영)을 하고 있어요. 꾸준히 매출을 유지하면서 가맹점들의 내실을 다지고 있죠.

해원씨 부부는 2005년 은행대출을 제외한 나머지 빚을 정리했다. 그리고 제주시 연동에 시가 25억 상당 건물도 지었다. 

매주 2회 제주관광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마케팅 교육을 하는 이해원씨/이해원씨 제공

당장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절박함이 성공비결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뭔가요? 

사후 클레임 처리요. 까다로운 고객일수록 응대를 잘하면 충성고객으로 변해요. 클레임이 들어오면 가맹점에 불쾌하지 않게 전달해요. 같은 이유로 5번 이상 불만 사항이 접수되는 가맹점은 협력점에서 제외시키구요.

해원씨는 2009년에 제주대학교 주야간 경상대 수석 졸업을 했다. 현재 동 대학원 경영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공부할 틈이 있던가요.

사업을 하다 보니 상거래법, 회사법, 회계, 세무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더라고요. 5살 딸아이를 키우면서 늦은 나이에 제주대 경영학과에 야간으로 진학해 재무관리를 전공했어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6년 만에 졸업했어요.

제주에 오려는 분들께 조언을 하자면요?

플라워몰의 성공 비결은 당장 무언가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절박함이었어요. 꽃집을 하면 하루 종일 예쁜 꽃을 만지면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반 이상이 막노동이었어요.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제주도에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잠깐 내려왔다가 안 되면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론 성공하기 어려워요. 확실한 아이템으로 절실하게 버텨야합니다.

jobsN 김란영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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