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4년만에 행시 합격 " '신의 한수'는 인도여행"

조회수 2020. 9. 23. 13:0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공무원 지망생은 꿈이 없다고 누가 그래요?
1차 시험 두 번 탈락 고배
인도여행 다녀온 후 합격
'세상을 바꾸는 공무원 될 것'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듣고 인도 여행을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배인(28)씨는 2014년도 행정고시에 최종합격했다. 2010년 공부를 시작해 4번의 도전 끝에 얻은 결과물. 


고용노동부 1년차 사무관인 그가 합격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차 선택형 필기시험(PSAT)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셔야했다. 대부분 최종 합격생들은 1차 시험은 어렵지 않게 붙는다.


2012년 7월.  공부를 잠시 접고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음을 편히 먹고 밖을 좀 보고 오라는 어머니의 조언 때문이었다. 


인도여행이 ‘신의 한수’가 됐다. 인도 최북단 라다크 지역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이 ‘우물 안 개구리’였던 그의 시야를 ‘세상 밖’으로 넓혔다. 배인 사무관을 만나 행정고시 합격비결을 들었다.

배인 사무관/jobsN

아버지 따라 키운 공무원의 꿈

현재 담당하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현재 고용노동부 우문현답TF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4년 합격한 후 1년 동안의 연수 과정을 거쳐 올해 4월 정식 임용과 함께 부서배치를 받았어요. 우문현답 TF는 15명의 수습사무관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 개선사항을 발굴하는 팀이에요. 고용노동부 내 여러 과를 3주 간격으로 돌면서 정책과 향후 과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요. 서울청이나 대전청 등 지정된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현장도 봅니다. 이후 각자 ‘개선 방안’을 제출하구요. 이에 따라 정식 발령을 받습니다.

행시에 도전한 이유는요?

아버지가 해군이셨어요. 지난해 전역을 하셨는데 어릴 때는 공무원인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기도 했어요. 너무 행동을 조심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더라구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공직자들만 알 수 있는 보람을 봤어요. 제가 만든 정책이 국민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면 신림동 고시촌 생활

공부는 언제 시작했나요.

2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휴학 후 바로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대학교 2년 동안 신나게 놀다가 다시 고3처럼 살아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오직 합격만 꿈꾸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츄리닝만 입고 생활하니까 우울하기도 했어요. 고시촌에서 2년 동안 생활했고, 이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어요.

고시촌 얘기 좀 더해 주세요.

계속 혼잣말을 하는 등 독특한 분들이 많으셨어요. 독서실에는 “숨소리를 크게 내지 마라” “외투 벗고 들어와라”는 포스트잇이 붙곤 했구요. 잠자던 곳은 ‘미니 원룸’이라고 불릴 정도의 작은 원룸이었는데요. 부엌 없이 침대와 책상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죠. 딱 잠만 잘 수 있는 곳이에요. 방음이 정말 안됐어요. 옆방에서 한 숨 쉬는 것까지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마치 같이 사는 느낌이었죠.

방음이 안돼 생긴 에피소드도 있겠네요.

어느 날은 옆 방 여자가 술을 많이 마시고 왔는지 통곡하면서 울더라고요. 어떤 시험 합격자 발표 날이었거든요. 떨어졌구나란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 잘 아니까 제가 먹던 사탕을 문 앞에 두고 왔어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뭐였나요? 

매일 공부해야하는 저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였어요. 토요일은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삼겹살 구워먹고 수다를 떨면서 놀았어요. 그리고 일요일 오후 늦게까지 늦잠을 잤죠.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합니다. 그래야 또 한 주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공부할 수 있거든요. 고시생이 아닌 친구는 되도록 만나지 않았어요. 절대 술도 마시지 않았구요. 토요일 밤에 체력을 소모하면 다음 주 공부가 잘 안되거든요.
공무원 임명장 받는 배인 사무관/jobsN

신의 한수가 된 인도여행

행정고시는 과정이 어떻게 돼죠?

3단계로 진행돼요. 1차 선택형 필기시험(PSAT), 2차 논문형 필기시험, 3차 면접시험이요. 개인적으로 1차 시험 통과가 어려웠어요. 1차는 마치 수능 시험과 비슷해서 그 날의 컨디션 영향을 많이 받고 IQ 테스트에 나올법한 문제도 있어서 열심히 준비해도 성적이 계단식으로 오르지 않거든요.

어려움을 많이 겪었나봐요.

2년 연속으로 1차 탈락했어요. 모의고사는 잘 나왔는데 실전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죠. 특히 두번째는 1점 차로 떨어졌어요. 이전까지 내가 공부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1차조차 못붙나란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나이는 먹어 가는데 영영 붙지 못하는 건 아닌가란 불안감도 생겼죠.
합격하지 못하면 누가 고시 공부했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인생의 슬럼프를 어떻게 빠져 나왔나요.

어느날 엄마가 좌절만 하지 말고 바깥 세상을 좀 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요. 그길로 2012년 7월 공부를 중단하고 인도 최북단 라다크지역으로 40일간 여행을 떠났어요.

왜 그 지역을 선택했죠?

스웨덴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 때문이었어요. 라다크는 히말라야 서쪽의 사막 고원 지대에요. 문화가 융성한 지역이면서 이슬람교와 힌두교로 나눠 종교 전쟁을 벌이고 인도와 중국이 국경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기도 해요.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 정부도 있어서 평소 무척 궁금했던 지역이었요.

여행에서 어떤 경험을 하신 건가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허름한 시내버스를 18시간 동안 타고 고산지대에 올라가 봤구요. 거기서 고산병에 걸려 코피를 계속 흘리기도 했어요. 허름한 숙소 침대에서 묵은 후 벼룩에 물리기도 했죠. 그런데 정신은 맑아졌어요. '내가 너무 작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구나라'란 걸 깨달은거죠.

어떤 계기로요?

사회운동을 하는 유럽인과 태국 기자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들은 제 꿈이 공무원이라고 말하자 “공무원하고 나선 뭘 하려고 싶은지” 묻더라고요. 저는 시험에 합격하면 평생 이 일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공무원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더라구요. 큰 충격이었죠. '세상은 넓다. 합격과 불합격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편하게 마음 먹자'라는 생각으로 돌아왔습니다.

편안하게 마음을 먹은 게 합격으로 이어졌군요.

네. 그 전까지는 합격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시험 전 날까지 체력을 깎아가면서 공부했는데 여행을 다녀온 후 달라졌어요. 이듬해 1차 필기시험 때는 일주일 전부터 그간의 공부를 정리 하면서 잠을 충분히 잤어요.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구요. 결국 1차 시험 점수가 매우 높게 나왔어요. 그해 2차에선 떨어졌지만 살짝 삐끗한 정도였죠. 그 때 탄력을 받아서인지 네 번째인 2014년도에 최종 합격에 성공했습니다. 인도에 갔던 건 정말 ‘신의 한수’였어요.

합격 순간이 어땠나요?

합격 문자를 받는 순간 내년엔 1차를 다시 안 봐도 된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죠. 펑펑 울었습니다. 부모님도 울먹거리시면서 기뻐하셨어요. “고생했다” “장하다”라는 말씀만 계속 하셨던 것 같아요.

공무원은 꿈이 없는 사람?

합격 후 연수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1년 동안 진행되는데요. 5개월은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이론수업과 공직관 수업을 들어요. 이론 수업 시간에는 행정 분야의 저명한 인사나 대학 교수님의 강의, 예산과 법제 실무 교육 등을 들어요. 주기적으로로 한자와 헌법 시험이 있어서 관련 공부도 따로 해야 해요. 팀을 짜서 정책 기획을 하는 수업도 있었어요. 예산 집행부터 홍보까지 정책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해보는 거예요. 남은 2개월은 용인에 있는 한 제조업분야 중견기업의 총괄과에서 근무했습니다. 민간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거죠. 그리고 마지막 5개월 간은 서울시청에서 신임 관리자과정 교육을 받았습니다.

공무원을 바라보는 주변 시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제구호 활동가 한비야 씨가 ‘7급 공무원’이 꿈이라고 말한 한 청년을 때리며 “꿈이 없다”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꿈이 공무원이라고 하면 칼퇴근하면서 편하게 일하려고 한다거나 꿈이 없는 젊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거죠. 하지만 저는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꿈이 없다”고 매도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에 후줄근한 옷차림에 화장도 못한 채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해야합니다. 이게 꿈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인가요.

그래도 붙고 나면 편하잖아요?

아니에요. 5개월 간 서울시청에서 근무할 동안 칼퇴근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야근이 일상이고 주말 근무도 많아요. 중앙부처는 더해요. 저희 부처의 지역산업고용과는 거제도 중공업 대규모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요즘 무척 바쁜데요. 세종시에서 밤새 일하고 아침 7시에 서울로 회의하러 가는 사무관도 봤어요. 뉴스에 나오는 모든 일이 저희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에요. 다들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죠. 그런데 공무원이 편하게 산다라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요?

선배들에게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한 선배가 주 5일제 시행이라고 대답했어요. '주 5일제 근무를 정책으로 만들고 법제화했는데 이제는 누구나 토요일은 쉬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주말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죠.
저도 미래에 제가 만든 정책으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바뀌었다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추상적이지만 장시간 근로문화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jobsN 신승우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