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4억5천 받아내는 이 남자

조회수 2020. 9. 23. 11: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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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무원 4배 실적내는 중증장애 공무원의 인생
한 살 때 찾아 온 소아마비
독하게 일하며 다른 공무원의 4배 이상 실적
9급 임관 27년만에 5급 승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남부지청 1층 고객지원실. 체불 임금으로 고생하는 민원인이 매달 평균 800여명 몰리는 곳이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목발을 짚은 남성이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어머니. 못 받으신 돈 꼭 받게 해 드릴 테니 걱정마세요.

키 160㎝의 왜소한 체격의 이 남성은 오른쪽 다리를 못 쓰는 듯했다. 목발을 짚고 왼쪽 다리에만 약간 힘을 준 채 절뚝거렸다. 서울 고용노동청의 김덕환(47) 근로감독관. 한 살 때 지체장애 2급(척추측만증) 판정을 받은 중중장애인이다. 

고용노동부 김덕환 근로감독관/jobsN

철밥통에 경종 울린 사나이

그는 올봄 공무원 조직에 화제를 일으켰다. 전국 수십만명 공무원 가운데 성과가 가장 우수한 공무원 84명만 추려 주는 ‘대한민국 공무원 대상’을 탄 것. 그의 수상은 처음이 아니다. ‘올해의 근로감독관’(2013년), 모범공무원상(2009년)도 받았다. 


13년 전 근로감독관 부임 후 실적 상위 10% 공무원에게 주는 S등급(연말에 월봉의 180% 지급)을 6차례 이상 받았다. 


압도적인 실적이다. 최근 5년 간 연평균 177명에게 4억5300만원의 체불 임금을 돌려 줬다. 일반 근로감독관 연평균 53명, 1억원과 비교하면 인원은 2.4배, 금액은 4.3배에 달한다. 체불 임금 처리를 포함한 전체 민원 처리 건수는 연평균 425건으로, 일반 근로 감독관(309건)을 훌쩍 넘어선다. 불편한 몸으로 몸이 불편하지않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실적을 낸 것이다.


이 실적을 인정 받아 그는 지난달 5급 과장으로 승진했다. 고졸 9급 공무원으로 임관한 지 27년 만이다. 서울고용노동청 관계자는 “고용노동청 소속 1000여명 가운데 5급 과장급 공무원 수가 50명인데, 그 중 한 명이 된 것”이라고 했다. 경미한 장애를 가진 공무원이 5급 승진한 사례는 있지만, 중증 장애인이 승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를 만났다.


고용노동부 남부지청 1층/jobsN

한 살 때 찾아온 소아마비, 목발 찬 슈퍼맨

밀린 임금을 어떻게 받아내죠? 

민원인을 조사한 뒤 임금을 체불한 사장에게 연락합니다. 빨리 합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사장들은 정식 수배를 하거나, 영장을 발부받아 직접 찾아갑니다. 정부가 대신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해당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은 직원에게 정한 월급일로부터 14일 안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각 노동청은 1차 조사를 하고, 이후 검·경찰로 넘어간다. 

돈을 받아내는 게 어렵죠?

한 달 안에 밀린 임금을 돌려주는 게 제 원칙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장들이 전화도, 문자도, 등기도 안 받죠. 이런 사장들에게서 돈을 받아 내려면 4대 보험 내역 등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참고인 진술도 미리 진행해야 해요. 이 과정을 매년 수백건씩 반복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 감독관은 이 일을 불편한 몸으로 해낸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살 때 후천성 소아마비를 앓았다. 5살부터 목발을 짚고 허리에 보조기를 달고 살았다. 어릴 때부터 길을 돌아다니기 겁났다. 

‘쯧쯧’ 혀차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저를 안태우려는 택시 기사들이 많았죠.
김덕환 근로감독관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5살 때부터 목발을 짚고 있다/jobsN

몸이 불편한 그에게 동아줄이 돼 준 게 9급 공무원 장애인 전형이었다. 미치도록 준비해 합격했다. 1989년 고용노동부 북부지방노동사무소로 첫 발령을 받았다. 산재 보험이 첫 담당 업무였다. 목발을 짚고 한 중소기업을 방문했다. 

산재보험 현황을 파악하러 갔는데 쳐다 보지도 않았어요.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회의실로 직원들을 불러 소리 쳤죠. ‘지금 당장 장부 가져오세요. 잡상인 보듯 보지 마시라구요.’

12만원 일당 안주고 도망치는 사장을 잡아라

13년 전 근로감독관으로 발령 받았다. 공무원 세계에서 ‘3D’ 업무 중 하나로 통하는 일이다. 김 감독관이 근무하는 남부지청에서만 최근 5개월간 4000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돈을 못 받아 악에 받친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악덕업주가 끝까지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형사입건, 소송 같은 과정도 진행해야 한다.


워낙 힘들다 보니 건성으로 일하는 감독관도 있다. 6개월~1년이 되도록 임금체불 민원을 처리하지 않아 고소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쫓겨날 위험이 없는 ‘철밥통’ 공직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김 감독관은 ‘수습사원’처럼 일한다. 다른 공무원이 오전 9시에 정시출근할 때, 7시에 나온다. 그러면서 퇴근은 가장 늦게 한다. 자신의 관할 민원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민원도 처리한다. 고용노동부는 “토한다”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김덕환 근로감독관은 최근 5년간 연평균 4억원이 넘는 체불임금을 받아냈다/jobsN

가장 기억 나는 악덕업주는 누군가요.

전기공에게 일당 12만원을 주지 않은 전기 공사 업자요. 집에 찾아갔는데 없어서 수배까지 내렸어요. 수배 한 달 만에 노래방에서 잡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그 사람 아내가 ‘창피하게 12만원 가지고 경찰에게 붙잡혀 가냐’고 한탄하더군요. 알고 보니 지역에서 돈 좀 번다는 ‘동네 유지’였어요. 경찰 조사기록을 보니 무려 11번이나 월급을 안준 전과가 있더군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뭡니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월급 못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노인, 청소년, 주부 같은 취약계층이죠. 한 달만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카드빚을 써야 해요. 아수라장이 됩니다. 가족이 무너지는 거죠. 빨리 밀린 월급을 받아 다른 곳에 취직을 해야 해요. 조사가 늦으면 안 되는 겁니다.

회사가 어려워 임금이 체불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이 와도 월급은 밀리면 안 되는 겁니다. 어리다며 돈 깎는 ‘열정페이’ 일삼는 사람들이 있죠?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사장이 밀린 임금을 지불하게 하는 노하우가 뭡니까.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내 전화 안 받으면 가만히 안 둔다’고 말입니다.

몸이 불편하신데, 그렇게 활발하게 일하시는 비결이 뭡니까. 

동료들이 잘 도와줘요. 차 타는 것도 도와주고, 몸이 불편해 빠트리는 일을 점검해주죠.

평가 기준 모르는 S등급 공무원

초임 시절 장애인 보조 시설이 드물었다.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층수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층이면 다행이지만, 그 이상이면 계단을 오르내리리며 일하느라 힘들었어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지하 구내 식당을 가기 어려워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고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죠.

지금도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가건물로 된 건설 현장 같은 곳은 방문하기 어렵죠. 그래도 어떻게든 갑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해요.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성격이 못돼요. 자격증은 운전면허 밖에 없어요. 손가락질 받기 싫어 더 열심히 일합니다. ‘저 직원은 몸이 아프니까 능력이 안돼’같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요. ‘지금 바쁘니까 석달 뒤’ 같은 핑계 같은 건 안하며 살려고 해요. 악덕 업주들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더 넣으려 합니다.
학원 수업에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아침부터 줄 서 있는 노량진 학원가의 수험생들/jobsN

요즘 고학력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무원 시험이 열풍인데 과거에도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예전 9급 공무원은 고졸이나 야간 대학 출신이 많았습니다. 반면 요즘은 경력이나 학벌이 대단하죠. 그런데 갑갑해요. 어렵게 들어와 놓고 빨리 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만두는 젊은 공무원이 많나요? 

민원인들이 욕 하지, 구제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하지. 편안하고 쉬울 줄 알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으니 수개월 만에 실망하고 나가는 젊은 공무원들이 꽤 있어요. 처음엔 ‘민원인이 왕이다’라며 스스로 다잡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을 못 하더라고요. 민원이 100건이면 한 달에 만나야 하는 사람만 2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치고받고 싸우고 깨부수는 사람도 많아요. 이런 현실을 알고 준비해야 해요.”

S등급 평가를 몇번이나 받은 그는 정작 성과급 책정기준을 모르고 있다. “민원인 월급만 챙겨주다 보니 그런건 모른다”고 했다. 다음달 5급 과장으로 승진하면 새로운 부서에서 새출발을 한다. 연봉은 약 6000만원. 

제가 워낙 빡빡하게 일해서 직원들이 싫어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하.

jobsN 이신영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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