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변호사 두 가지 인생 사는 여자

조회수 2020. 9. 23. 1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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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 접하다보니 변호사 꿈꾸게 돼
MBN 아나운서 출신 김유나 변호사
일∙학업 병행..잠은 이틀에 한번꼴
아나운서와 변호사 경험 서로 도움돼

아나운서와 변호사. 누구나 한 번은 꿈꿔 보지만, 골인에 이르는 사람은 드뭅니다.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사람이 있네요. 아나운서 출신 변호사. 김유나(36)씨를 만났습니다.

김유나 씨는 서강대 중문과를 나와 2003년 아나운서가 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 경쟁력 있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중앙대 로스쿨 1기로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로스쿨 입학 후 아나운서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저녁 뉴스를 진행했죠. 3년 간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그의 생각이 바뀝니다.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걷기로 한거죠. 법무법인 바른을 거쳐 지금은 삼화페인트 사내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법 공부가 인생의 경로를 바꿀지 몰랐다'는 김 변호사. 그의 얘기를 들어 보시죠.

김유나 변호사/jobsN

 7살 때부터 품어온 아나운서의 꿈과 새로운 꿈

원래 꿈이 아나운서였나요? 

7살 때 방송국에 견학을 갔어요. 앵커 자리에 앉아 봤죠. 그때부터 제 꿈은 오로지 아나운서였어요. 하지만 제 맘 속에만 담아 뒀죠. 정말 소중한 꿈이어서 아무에게도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말하지 않은 거예요. 말하는 순간 꿈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끼고 아꼈죠.

아나운서로 얼마나 활동하셨나요?

대학생 때 서강대 방송국 SGBS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했어요.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건 2003년 ITV경인방송(현 OBS) 기상캐스터가 되면서 부터예요. 2004년 TBS TV서울(현 TBS TV)로 이직해 교통캐스터로 활동했구요. 2007년 MBN에 공채 3기 아나운서로 입사했죠. 2011년 9월 퇴사했으니 10년 가까이 아나운서로 일했네요.

오랫동안 바라던 꿈을 이루셨는데 로스쿨에 들어간 이유는 뭔가요?

아나운서는 대개 전문분야가 없어요. ‘사회 전문 아나운서’ 나 ‘경제 전문 아나운서’라고 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저는 특정 분야의 전문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어요. 매일 뉴스를 접하는 과정에서 법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법 전문 아나운서가 돼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 마침 다양한 분야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 제도가 생겼죠. ‘내게도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 했어요. 그리고 덜컥 합격한 겁니다.

동료나 지인의 반응은 어땠나요?

남편과 부모님 모두 전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물론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긴 했어요. ‘아나운서와 로스쿨 병행은 말도 안 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신 교수님도 계셨어요. 그런 교수님께 제가 '성적이 떨어지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어요. 다행히 성적이 계속 올라 장학금도 받고 칭찬도 들었어요. 이후엔 모두가 지지해 주셨죠.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아나운서를 그만둘 수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간절히 바라던 꿈이었고 일하면서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법 공부에 푹 빠졌어요. 깨알 같은 글씨로 된 서적을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논리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난 후였죠. 또 아나운서는 뉴스를 전달하는 일을 하지만, 변호사는 뉴스 해결 과정에 참여하죠. ‘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데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MBN 앵커로 활동하던 모습 /김유나씨 제공

이틀에 한번 꼴로 자며 일과 공부 병행 

로스쿨 공부와 앵커 활동 병행이 가능하던가요?

심야 혹은 철야 뉴스를 진행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가능했어요. 철야 뉴스 담당 앵커는 이틀에 한 번 밤 10시에 출근해 새벽 5시에 퇴근하고, 나머지 하루는 쉬어요.

그래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몸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죠. 뉴스가 있는 날엔 퇴근하고 돌아와 1~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어요. 그리고 뉴스를 쉬는 날 몰아서 잠을 잤죠. 그런데 생체리듬이 깨지니 불면증이 와서 몰아 자는 것도 만만치 않았어요.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스스로 되새겼어요. 회사와 학교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방송이든 공부든 하나라도 제대로 못하면 ‘만만하게 봤다’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어요. 결국 결석 한번 하지 않았어요. 물론 주변의 도움도 있었죠. 한 아나운서가 계속 심야나 철야를 맡기는 어려워요. 당시 회사 동료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죠.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일하지 않는 모든 순간에 공부를 했어요. 씻으면서,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틀어놨어요. 이렇게 공부에 쏟은 시간을 따지면 최소한 12시간정도 될 것 같아요. 머리가 쓸 수 있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했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쉬운 과목보다 어려운 과목을 골라 들었어요. 남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수업시간에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최대한 얻자는 생각이었어요. 매일 시험을 본다거나 시험을 어렵게 출제하기로 유명한 교수님 수업을 일부러 들었죠.

지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남편이요. 지금의 저를 만든 일등공신이에요. 제가 로스쿨에 도전할까 말까 망설일 때 “당신이 못하면 누가 하겠냐”며 힘을 북돋아 줬어요. 그리고 지칠 때마다 “도전하는 모습이 제일 멋져”라며 끊임없이 저를 다독여줬어요.

제일 어려웠던 과목을 뭔가요?

‘민사재판실무’란 수업이요. 판결문 쓰는 법을 배우는 건데요. 민사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법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려워요. 공부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죠. 그런데 기말고사가 끝나고 교수님께 문자 하나를 받았어요. ‘채점을 했는데 네가 1등이다. 장하다’는 내용이어요.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랐죠.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jobsN

아나운서 경험 덕분에 변호사가 됐다

아나운서 경력이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아나운서 시절 쌓은 말솜씨가 큰 도움이 돼요. 요즘 법조계에선 준비서면으로만 진술하는 서면주의 대신, 말로 변론하는 구두주의가 주목받고 있어요. 변호사로 일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의뢰인이 제 변론을 듣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신 적이 있어요. 동료들에게선 ‘네가 말하니 신뢰가 간다’는 칭찬을 들었죠.

두 직업의 장단점은 뭔가요?

아나운서는 시청자와 세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선망 받는 직업인 것 같아요. 다만 연예인처럼 외모로 평가 받는 경향이 강해요. 결국 나이가 들면 일하기 쉽지 않죠. 반면 변호사는 경험이 쌓인 만큼 인정받아요. 사건당사자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변호사의 단점이예요. 사연을 듣다 보면 몰입이 되며 같이 우울해질 때도 있죠. 또 자문 역할을 할 때는 제 결정대로 기업 경영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법무법인 바른에서 삼화페인트 사내변호사로 이직한 이유는 뭔가요? 

기업 자문을 하다 보면 사건이 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전 예방 기능이 있는거죠. 보람이 커요. 그리고 소송 사건 시장은 포화상태이지만 사내 변호사는 블루오션이에요. 마침 제가 바른에서 삼화페인트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사내 변호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옮겨 갔어요.

변호사로서 꿈과 비전은 뭔가요? 

사내변호사의 역할을 확대하고 싶어요.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한 후 해결하는 역할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삼화페인트’ 하면 김유나 변호사를 떠올릴 만큼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jobsN

jobsN 이연주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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