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율 세계1위 나라 인턴 체험기

조회수 2020. 9. 23. 11: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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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무 일 없게 해달라" 기도
해외 취업에 뛰어드는 청년이 늘고 있습니다.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은 어떨까요. 저희 '잡스엔'에서 일하는 강지수씨는 중남미 인턴 경험이 있습니다. 22살이던 작년, 살인율 세계 1위 엘살바도르에서 6개월 간 인턴으로 일했다는데요. 달콤살벌했던 경험을 들어 보시죠.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아침마다 버스에 오르며 했던 기도다. 6개월 간 인턴으로 지냈던 엘살바도르는 중미의 작은 나라다. 살인율 세계 1위다. 외신에 따르면 평균 한 시간에 한 명씩 사망한다고 한다. 신문에는 매일 마약 거래상들의 총기사건을 다룬 기사가 오르내린다. 주위 사람이 강도를 만나 몽땅 털리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환경에도 현지인들의 관심과 넘치는 사랑 속에 잊을 수 없는 6개월을 보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교감했던 순간을 소개한다.

강지수 잡스엔 인턴기자/jobsN

출근 시간 8시, 지키는 사람 별로 없어

2015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6개월.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 본부가 있는 국제기구 SICA(중미통합체제)의 홍보팀 인턴으로 일했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게 인연이 돼 우리나라 외교부를 통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SICA는 중미 지역 국가들의 상호 협의체 중 하나다. 이곳 홍보팀에서 중미 주요 이슈를 스크랩하고, 각종 국제회의 및 행사를 취재해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일 등을 맡았다.


출근 시간이 아침 8시로 의외로 빨랐다. 하지만 제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8시 30분은 돼야 사무실에 활기가 돈다. 다소 이른 출근 시간은 대체로 시간 개념이 느슨한 중남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외부 약속을 잡으면 상대가 30분 혹은 한 시간씩 늦는 것은 다반사. 근무중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출근과 달리 퇴근 시간은 잘 지킨다.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시해 회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생일을 챙기고, 워크숍, 체육대회, 연말파티 등 각종 사내행사를 통해 친목을 다진다.

현지인과 함께 일했던 강지수씨/jobsN

여유 있는 토론식 업무 문화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일할 때 여유가 넘친다. 월드컵 기간이면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출근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본다. 자국팀이 이기면 소리를 지르며 회사 밖으로 뛰쳐 나가기도 한다.

토론을 즐긴다. 대부분 말이 많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표출한다. 합의를 끌어 내려면 회의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직급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곳 사람들은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 친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공용어인 스페인어에도 영어와 마찬가지로 존칭이 없다. 상대방을 높이고 싶으면 너(tú) 대신 당신(usted)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같은 회사에선 연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상대를 너(tú)라고 부른다.

살인율 1위는 고단한 삶의 부산물

엘살바도르인들의 삶은 고단하다. 한 동료는 “인생은 스트레스야”란 말을 늘 달고 살았다. 

엘살바도르의 최저 임금은 한 달 약 35만원. 물가가 낮은 것도 아니다. 채소류나 교통비 등 몇 가지 항목만 빼면, 대체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여기 인턴들은 한 달 40만 원 정도를 월급을 받았는데, 집세를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다.

높은 범죄율은 이런 고단한 삶의 부산물이다. 사무실의 한 동료가 강도를 만나 월급을 통째로 털린 적이 있다. 

엘살바도르의 버스 풍경. 사람들이 꽉 차다 못해 문에 매달려 가기도 한다/jobsN

버스 타고 들어간 그들의 삶 속

인턴을 한 지 3개월이 넘어갈 무렵, 택시 대신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이곳 버스와 비교하면 한국의 지옥철은 천국이다. 우리나라는 문은 닫고 달린다. 그러나 이곳 버스는 사람을 매단 채 달린다.

더 위험한 것은 치안이다. 낡은 버스에서 총기사고가 가끔 벌어져, 외국인들은 거의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버스를 많이 이용했다. 계속 한 발 떨어져 있으면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엘살바도르인들

살인율, 저임금,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를 생각하면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곁에서 본 그들의 삶은 생각처럼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흥겨웠다.

매년 연말 파티 때면 지인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게임 등을 하며 논다. 경품도 나눠준다. 백미는 밤새 이어지는 춤이다. 평소 점잔 빼던 사람들도 이때 만큼은 모든 걸 잊고 막춤을 춘다. 처음엔 너무 의외였지만 곧 흥겨운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외부 워크숍을 가면 유튜브 가라오케를 틀어놓고 장기자랑을 하거나 살사 댄스를 추는 행사가 빠지지 않았다. 이때마다 한국 노래를 불러 보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아이돌 댄스곡 외에도, 한국 발라드도 좋아했다. 나미의 '슬픈 인연'을 부른 적이 있는데, 다들 좋다고 했다. 

현지 친구와 함께 캠핑을 떠난 강지수씨/jobsN

소지섭에게 안부 전해달라던 하숙집 아주머니

무조건 개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배타적인 모습도 봤다. 나는 일하던 국제기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자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였다. 처음엔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종종 소외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혼자 선수에서 배제된 적이 있다. 

이럴 때 마음을 열어준 몇몇 동료들이 큰 힘이 됐다. 함께 캠핑이나 시내 관광을 다니며 많은 힘을 얻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 “너를 울릴 수 있는 건 네 가족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너를 울릴 수 없다”며 위로해 줬다.

아주머니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특히 연기자 소지섭을 좋아했다. 떠나던 날 소지섭을 만나면 안부를 전해달라던 모습이 아직 떠오른다. 중남미에 잘 적응하려면 두루두루 잘 어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친한 동료를 만들어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아이들/jobsN

한국 버스는 리무진 느낌

엘살바도르를 어느 정도 알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6개월이 모두 흘렀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과 집을 오가는 빨간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엘살바도르에서의 삶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지금 타는 버스는 그때와 비교하면 리무진이다. 엘살바도르에서 느낀 사소했지만 강렬했던 자각들. 앞으로 많은 변화의 싹이 될 것으로 믿는다. 

jobsN 강지수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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