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간호사와 의사의 하루

조회수 2020. 9. 23. 11: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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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00시간 근무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대충 떼워
과밀화지수 전국 1위 서울대병원 응급실
주 100시간에 육박하는 근무시간
인턴∙전공의 수당 합쳐 월 250만~400만원
끼니 거르고 멱살 잡혀도 보람있어

7월 11일 오전 6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70대 남성 환자가 이동 침대에 실려 들어왔다. 움푹 패인 볼에 노란 얼굴. 지난 1월부터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는 전민진(29)씨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아버님, 제 말 들리세요'을 연신 외친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환자는 새벽 3시부터 의식이 희미했다. 환자의 보호자는 "나흘 전부터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다"고 불안해 했다. 

 

전씨가 환자의 손을 꼬집었다. 환자가 탁한 목소리로 "으으. 하지마"라며 소리를 낸다. 그제서야 보호자는 "아유. 다행이네"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jobsN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의료센터다. 의료진 250명이 연간 6만명 이상의 응급 환자를 돌본다. 응급 병상 31개에 하루 150~160명 환자가 몰린다.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는 명절에는 200명에 육박한다. 아픈 것엔 휴일이 없기 때문이다.

 

과밀화지수는 182%. 병상이 100개 있다면 환자로 모두 차고, 82명은 대기실이나 복도에서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런 응급실에서 의료진은 교대근무를 하며 365일 24시간 불을 켜놓는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서울대병원 응급실 현장을 찾았다. 

강은정 주임간호사와 이수진 책임간호사/jobsN

위급한 생명 살리는 소생실

응급실에 환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는 오전 10시 전후와 오후 7시 전후다.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만큼 사고도 많다. 월·화요일 오전이 특히 바쁘다. 아픈데도 주말 동안 참다가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응급실로 급히 이송되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활동하지 않는 새벽은 한산한 편이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언제 응급환자가 들이닥칠지 모른다.

전민진 수련의가 간경화 환자를 돌보는 사이 다른 의료진의 무전기가 '삐리릭' 울린다. 곧 "소생실 환자 입실합니다"는 방송이 응급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타다닥' 급한 발걸음 소리. 위독한 60대 여성 환자가 소생실로 이송됐다.

응급실에는 밤새 119에 실려오는 환자들이 많다/jobsN

의료진 15명으로 소생실이 꽉 찼다. "지난주 금요일 외래진료했던 HCC(간암)환자입니다. HCV(C형간염)도 있습니다. 통증에만 반응하고 멘탈이 회복되지 않고 있어요." 정형배(36) 간호사가 침착하고 빠르게 말했다. '타다, 타다닥' 옆에서는 전공의와 간호사들이 각종 기록과 처방을 하며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배는 물이 차 볼록했다. 최영호(30) 4년차 전공의가 작은 망치로 무릎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수련의 4명이 장갑을 낀 채 뒤에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섰다. 얼굴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거(물)부터 빨리 빼주세요

응급의학과 신상도(48)교수가 말했다. 이수진(29) 간호사가 가위로 환자의 상의를 가슴 부위부터 갈랐다. 이후 각종 장비를 연결해 물을 빼낸다. 이렇게 20분 만에 위기를 넘긴 환자는 컴퓨터단층(CT)촬영실로 이동했다.

조민아 수련의/jobsN

일주일에 96시간 일하는 응급실 인턴

응급실 의료진은 격무에 시달린다. 새벽의 경우 간호사 9명, 전공의 4명, 인턴 5명. 전문의 1명이 일한다. 간호사는 3교대, 전공의는 2교대로 일한다. 인턴은 24시간 일하고 24시간을 쉰다. 주당 최대 96시간을 일하는 것이다. 법정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의 2배 이상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만 환자와 갈등이 자주 벌어진다. 까치집 머리를 한 김기홍(31) 3년차 전공의는 멱살 잡히는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기 어려워요. 정성껏 봐드리고 싶지만 한 의사당 동시에 20~30명을 진단해야하는 상황이라 한계가 있죠. 1년에 한번은 환자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 같네요.
의료진은 짬을 내 빵이나 족발, 과자로 끼니를 떼우며 일에 몰두한다/jobsN

아주 잠깐 짬이 나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조은아(27) 수련의가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 의학서적을 읽고 있다. '심막 질환', '심장 종양' 같은 단어가 보인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왜 하냐고 물었다. "부모님 따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방글라데시에서 보냈어요. 가벼운 병으로 안타깝게 죽는 아이들이 많죠. 직접 돕고 싶다는 마음에 의사를 꿈꿨고 그 꿈을 이뤄 가고 있어요."


병원마다 의료진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대학병원 인턴은 한달에 대략 250만원, 전공의는 2년차에 400만원, 신입 간호사는 350만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당직이나 주말근무로 생기는 수당을 포함한 금액이다.

사람 살리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응급의학과는 의외로 인기가 높다. 매년 전공의 모집 정원의 50%를 초과하는 인원이 몰리고 있다. 올해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의 경우 전공의 9명을 뽑는데 15명이 지원했다.

   

응급의학과 1기인 신상도 교수는 일의 보람에서 이유를 찾는다. 

내과·외과 등의 전문의는 매일 똑같은 환자만 돌봐야 해요. 반면 응급실은 여러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죠. 또 짧은 시간 안에 환자의 호전 상태를 목격하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의사들의 모습/jobsN

신 교수 역시 20년 전 기억 때문에 응급실에 정착했다. 전공의 1년차 때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온 암 환자가 있었다. 심폐소생술로 살려 냈지만 며칠 뒤 사망했다. 몇 달 후 환자의 딸이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임종을 준비할 기회를 줘서 아버지가 행복해 하셨다'며 연신 '감사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람 살리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얼마든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응급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오전 6시 30명이던 환자수가 오전 11시 70명으로 늘었다. 병상은 물론 49개의 의자도 모두 차 사람들이 서서 대기하기 시작한다. 보안요원이 게시판으로 다가와 대기 시간을 '60분', 대기인원을 '65명'으로 고쳤다.

대기인원이 언제나 많은 응급실/jobsN

jobsN 이연주 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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