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목보 나온 26세 마을버스 운전사

조회수 2020. 9. 23. 10: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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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버스 운전기사 배지미 씨의 꿈
롯데리아 야간 알바 하다
올해 마을 버스 기사로 취업
꾸준히 연습하며 가수 꿈 놓지 않아

경기도 용인과 분당을 오가는 26번 마을 버스를 탔다. 짧은 갈색 머리에 헐렁한 셔츠를 입은 기사가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한다. 남성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앳된 외모.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하다. 청순한 하이톤. 

케이블 방송 ‘너의 목소리가 들려3’에 출연해 화제가 된 배지미(26)씨를 만났다. 그녀는 방송에서 짧은 머리와 하얀 턱시도 의상, 딱딱한 표정으로 남자인 척 했다. 대부분 여자일거란 의심을 하지 못했다. 

출처: tvN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한 배지미씨/tvN 캡쳐

그런데 부른 노래는 강수지의 ‘흩어진 나날들’. 청아한 목소리에 여자인 것이 밝혀졌고, 게스트로 나온 가수 박진영과 관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  


방송 후 배 씨는 인터넷에서 스타가 됐다. 유튜브의 그녀가 노래하는 영상에는 “목소리가 너무 순수하면서 청아해요” “음원 나오면 좋겠어요” “팬이에요” 등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그녀가 화제가 된 데는 현재 직업도 큰 몫을 했다. 용인 26번 마을버스 운전 기사. 임시로 하는 게 아니라, 정식 입사해 상시 근무 중이다. 버스는 그녀의 직장이자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공간. 가수를 꿈꾸는 버스 기사 배지미씨의 얘기를 들었다. 

출처: 잡아라잡
배지미씨

◇ TV에서 노래 부른 기억, 아직 설레요


-주변 반응이 어때요? 

생각보다 많이 알아보세요. 방송 잘 봤다면서 같이 사진 찍자는 분도 있어요.


- 노래는 취미인가요? 

아뇨. 꿈이 가수예요. 어릴 때 교회에서 드럼과 음향을 배우며 음악과 친해졌어요. 그러다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고 가수의 꿈이 생겼어요. 아프리카에 가서 음악으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거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사이버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은 휴학한 상태인데요. 졸업하려면 한 학기 남았어요.


-지금 바로 데뷔하셔도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어렵죠. 방송 한 번 나왔다고 가수 하면 누구나 하게요. 가수는 나이가 중요하대요. 그런데 저는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요. 녹화가 끝난 후 게스트로 나온 박진영 씨께 제 자작곡을 들려드렸는데, 아직 아마추어 냄새가 많이 난대요.

출처: 배지미씨 제공

◇ 가정형편 때문에 택한 버스 운전 기사


배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롯데리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7년 전이다. 


-원래 어려웠나요? 

어렸을 땐 괜찮았어요. 부모님이 가정용 유류 가게를 하셨거든요. 그런데 도시가스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장사가 안되기 시작하더니 큰 빚까지 지게 됐어요. 그 후로 크게 기울었죠. 부모님을 제가 도와드릴 힘은 없지만, 저까지 부모님을 힘들게 할 순 없다는 생각으로 롯데리아 알바를 시작했어요. 시급을 1.5배로 준다고 해서 야간 알바로 일했습니다.


-마을버스 운전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2015년 1월 쯤이었나? 버스를 타는데 기사가 아주머니셨어요. 아주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근무 조건을 듣게 됐어요. 그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화물차를 운전하셨던 아빠를 닮아서 저도 운전을 잘했거든요. 마침 매장 안에 있는 게 답답하던 때여서 준비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네. 결심을 하고 며칠 안돼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를 땄어요. 그러고도 바로 할 수는 없었어요. 관련법상 만 26세가 넘어야 기사 자격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1년 가까이 기다렸다가 만 26세가 되던 작년 11월에 운전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취업 소개를 통해 올해 1월 지금 회사에 들어왔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첫 출근 날 아무도 제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나가니 “얘 진짜 할 건가 봐”, “너 이렇게 힘든 일을 진짜 할 거야?”라고 하시더라구요. 며칠 못 버티고 그만둘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 열심히 하니 다들 인정해 주고 계세요.


- 주변에서 도움을 주나요? 

원래 연차가 많을수록 새 차를 써요. 연식이 오래된 차는 기어가 잘 안 들어가서 힘이 많이 들거든요. 저는 막내라 오래된 차를 써야 하는데 기특하다고 새 차를 양보해 셨어요.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시는 게 참 감사하죠.


-운전은 하루에 얼마나 하나요? 

오전조와 오후조로 나뉘어요. 오전조는 새벽부터 오후까지, 오후조는 오후 부터 새벽까지 일해요. 근무 조가 한 주씩 바뀌어요.

출처: 잡아라잡
배지미씨

- 근무 조건은 괜찮나요?

지금 월급이 롯데리아 야간 알바보다 많아요. 경력을 쌓아서 서울 시내버스로 이직하면 연봉이 5000만원 가까이로 오른대요. 열심히 공부하면, 운전직 공무원도 될 수 있구요. 


-운전하다 보면 스트레스 많이 받죠?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힘들 때가 있죠. 손님들이 싫은 소리 하실 때도 있구요.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리고 잊어요. 마음에 두고 있으면 운전에 집중할 수 없거든요. 


◇ 여자여도 잘할 수 있어요 


- 여자 운전 기사가 거의 없어요.  

네. 우리 회사에도 여자는 저 하나에요. 전에 아주머니 기사분이 계셨는데 사고 난 후로 그만 두셨대요. 그 후론 제가 유일해요.


- 왜 별로 없을까요? 

편견 때문이죠. 운전은 남자만 잘한다는 편견이요. 남자가 여자보다 운동 신경이 좋고 운전 잘하는 사람이 많긴 해요. 그래도 사람에 따라 다르죠. 여자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요.


- 편견이 피부로 느껴지나요? 

“여자인데, 운전하네”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제가 운전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는 분도 있고요. 신기하거나 불안해서? 둘 중 하나 인 것 같아요.


- 편견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세요? 

제가 더 잘해야죠. 몇 달 전부터 다른 회사 기사분들과 인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여자인 걸 아시게 됐어요. 그 후로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정류장에 섰다가 다시 도로로 진입할 때, 조금 더 여유를 주는 식으로요. 경쟁하기보다 양보 하는거죠. 그 후로 위험한 상황이 많이 줄었어요. 손님들한테도 제가 먼저 다가가요. 마을버스라 타시는 분들이 거의 정해져 있는데요. 얼굴이 익으면 인사도 하고 수다도 떨어요.

출처: 배지미씨 제공

◇ 버스에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배 씨는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있다. 22살 때 사이버대학 실용음악과에 들어갔다. 밤 새워 일하고 잠깐 쪽잠을 잔 후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왜 졸업을 안하세요. 

못 하겠어요. 가수를 정말 하고 싶은데, 이대로 졸업해 버리면 제 꿈하고는 영영 이별해야 할 것 같거든요. 현실을 알면서도 아직 포기가 안 돼요.


-노래가 그렇게 좋나요? 

너무 행복해요. 하지만 욕심부리지 않으려고요. 지금 하는 일도 무척 소중하니까요. 계속 음악을 하면서 기회가 오길 기다려야죠. 그래서 이번 방송에도 나갈 수 있었잖아요.


- 연습은 꾸준히 하나요? 

지금 원룸에 살고 있는데 소음 때문에 방 안에서 노래하거나 기타칠 수 없어요. 그래서 운행이 끝난 뒤 운전하던 버스나 돌아가는 차 안에서 노래 연습을 해요. 얼마 전에 SNS에 차 안에서 연습한 영상을 올렸는데 많은 분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시고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틈나는대로 작사 작곡도 하고 있어요. 제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계속 행복하게 음악을 하며 살고 싶어요.

(배지미씨 제공 자작곡 동영상 바로가기)

(배지미씨 제공 '흩어진 나날들' 동영상 바로가기)


jobsN 강지수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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