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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해녀가 아닐까?

조회수 2019. 8. 13. 10: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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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도 해녀

바다는 아주 재밌는 놀이터였다. 잠수도 해녀처럼 했다. 배우진 않았지만. 부모님은 바다에서 빠져 죽을 팔자라며 바다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짜 빠져 죽을 뻔도 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 간 것이다. ㅡㅡ;; 처음으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숨을 쉬려고 해도 쉴 수 없었다. 큰 파도가 나를 자꾸 바다 밑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그래도 난 다음 날 어김없이 바다에 수영하러 갔다. 바다를 영원히 싫어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바로 다음 날 가지 않으면 영영 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도 해녀

우리 집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할머니, 외할머니도 해녀다. 난 바다를 좋아하고 수영도 잘한다. 그런데 난 왜 해녀가 되지 않았을까?

출처: 비짓제주 브런치

엄마는 땅 부잣집 외가에서 땅이 하나도 없는 무일푼인 아빠에게 시집오셨다. 사전 조사가 미흡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빠의 큰 키와 좀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알 길은 없다. 엄마와 아빠는 허허벌판에 감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 감귤나무들과 내 나이가 똑같다. 정말 돈 없고 배고픈 시절이었을 것이다. 


밭농사로 어려운 부분은 엄마가 물질로 보탰다. 80년대엔 물질은 돈이 되던 때였다. 집도 짓고 우리 집안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돈을 버셨다. 다른 해녀 어머니들도 생사가 넘나드는 바당으로 물질을 하러 나갔던 때였다. 


겨울만 되면 밀감 따러 가기 싫다고 투정하는 딸에게 엄마는 자기 눈엔 밀감들이 다 돈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질할 땐 아마 소라든 전복이든 이게 다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돈으로 보이셨을 게다. 


투잡은 기본 “밭일이 물질보다 쉽지...”

제주에서는 해녀가 밭일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물질과 밭일 시기가 약간씩 차이가 나니 결국엔 일 년 내내 일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쉴 틈이 없다. 물 때에 따라 물질을 하고 밀감 농사도 지어야 하니 말이다. 


몇 년 전, 엄마와 엄마 친구 분들이 우리 집 밀감을 따러 오셨다.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기어코 함박눈까지 펑펑 내리기 시작한 때였다. 걱정하는 마음에 직장에 가기 전에, 뜨거운 차와 팥빵을 들고 밭으로 갔다.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고 말하러. 엄마와 친구 분들은 해맑게 웃으시며 "미깡 따는 게 물질하는 것보다 훨씬 쉽지게!! "라고 하셨다. 하긴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으니 바다에 떠 있는 것 보다야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시는 얼굴들의 주름들 사이로 자신들의 삶을 잘 살아낸, 어떤 선택이었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 흔적들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강인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망망대해에 떠 있어 보진 않았지만, 너무 깊어서 검게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테왁 하나에 의지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숱한 시간 속에서 그분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숨이 끊어질 듯 물건(소라, 전복 등) 하나 갖고 나와 숨비소리를 뱉어내는 어떤 날엔, 자기 삶에서 도망가고 싶진 않으셨을까.


해녀 엄마가 선물한 해녀가 아닌 나의 삶

출처: 비짓제주 브런치

2016년 12월 1일 제주의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덕분에 해녀의 위상이 높아졌다. 엄마도 해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해녀의 삶에 관한 인터뷰도 하고, 도지사에게 상도 받는 등 말년에 명예로우시다. 


엄마는 뭍과 바다에서 자연과 한평생 보낸 이유를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은 원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길 바라셨던 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나는 해녀가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인생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영예롭지만 수십 년 혹은 더 오래전 해녀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해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바다에 들어갔을 테고 주어진 삶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당당하게 살아냈다. 나도 내 삶에 눈 감지 말고 언제나 부릅뜨고 마주 보자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통해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흙을 만지고, 바다와 햇빛, 바람을 느끼는 삶에 대해 배웠다. 해녀들은 자기 숨만큼만 자연에서 얻어가고 더 탐하지 않는다. 시기를 정해 물질을 하는 등 바다와 공존해왔다. 오래전부터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했던 그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엄마는 오늘도 물질하러 나가신다. 언제나 분주하시다. 늙지 않는 정신을 가진 나의 어머니, 제주도 해녀들은 언제나 청춘이다. 


본 글은 제주관광공사 & 카카오 공동캠페인
제주스토리 고팡 콘텐츠 크리에이터 모집을 통해
선정된 전문가 크리에이터 「제주소녀」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제주 스토리 고팡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제주의 숨겨진 콘텐츠를 기획, 관광객 및 도민들에게 심도 있는 콘텐츠를 풀어 설명해줄 제주를 가장 잘 아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합니다. 고팡은 제주어로 창고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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