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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팬심'을 가져간 이 앱, 알고보니 덕후가 만들었더라

조회수 2021. 4. 1.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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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 인터뷰

뮤직 크리에이티브 그룹. 스페이스오디티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해왔다. 2017년 설립된 스페이스오디티는 독특한 길을 걸어왔다. 멜로망스 '짙어져', 육성재 '고백' 등 음원을 약 50곡가량 선보였고 가수 헤이즈 전시회, 김이나의 밤편지 굿즈 등을 기획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함께 한 '디깅클럽서울', CJ문화재단과 함께한 '아지트라이브' 등 음악 캠페인도 진행했다.

출처: 스페이스오디티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

놀라운 건, 스페이스오디티에 소속 아티스트가 없다는 점이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철저하게 음악 브랜딩에 집중한다. 좋은콘서트, 로엔, 네이버, 카카오, 메이크어스 등에서 음악 브랜딩을 주도해온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핵심은 브랜딩, 본질은 음악"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세로라이브>와 <이슬라이브> 기획자로 유명하다. 이제 스페이스오디티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보증 수표처럼 여겨진다.

최근 스페이스오디티는 회사의 영역을 뮤지션을 넘어 팬덤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케이팝레이더'와 '블립'으로 MZ세대를 한차례 더 공략하는 것이다. 케이팝레이더는 아티스트와 SNS의 팔로워 수, 유튜브 조회수, 공식 팬카페 가입자 수를 측정해 데이터 보드에 올리는 서비스다.

블립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컨셉으로 팬들이 아티스트 사진, 스케줄, 관련 소식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구성된 모바일 앱이다. 블립은 출시 초기부터 '진짜 덕후가 만든 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이제는 MZ세대 아이돌 팬에게는 없어선 안 될 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었고,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스페이스오디티에서 김홍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Q. 그동안 음악 분야에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쌓으셨다. 특히 메이크어스에서 기획한 <세로라이브>와 <이슬라이브>, 네이버에서 기획한 <음악 감상회> 모두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창업을 시도하며 두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커다란 배 안에 있다가 잠수함으로 옮기고, 잠수함에서 빠져나와 바라만 봤던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정글이구나. 사실 네이버에서 카카오로 옮길 때 두려움이 정말 많았다. 당시 네이버는 직원 수 3000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대기업이었고 카카오는 성장 초반이라 규모가 작았다. 한 번 작은 회사로 옮겨봐서인지, 카카오에서 메이크어스로 옮길 땐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건 그만하자, 나도 밥상을 차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창업을 꿈꿔본 적 없었다가 너무 늦기 전에 도전해보자 싶어 회사를 만들었는데, 초반에는 뭐가 펼쳐질지 모르니 너무 두려웠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영화를 많이 봤다. 회사명의 모티프가 된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많이 봤고, <히든 피겨스>, <머니볼>, <파운더> 등도 봤다. 공부도 많이 했다. 물론 요즘에도 두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스릴도 펼쳐져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출처: 딩고 유튜브 캡쳐
메이크어스 <세로라이브>

Q. 그동안 음악 분야에서 브랜딩을 많이 하셨다. '음악 브랜딩'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악으로 브랜딩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음악을 브랜딩하는 것이다. 음악으로 브랜딩하는 건 사람들에게 음악의 팬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감성적인 음악의 요소, 그걸 표현하는 영상, 가사의 메시지, 제목의 시적 표현, 가수가 주는 이미지 등을 종합해 브랜드가 주는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게 음악이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건 음악을 브랜딩하는 측면이 크다.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손에 잡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첫 직장에서 매일 고민했던 게 바로 이거였다. 이문세 음악을 어떻게 브랜드로 보여줄 수 있을까. 아티스트들을 앉혀놓고 장점과 약점, 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했었다. <세로라이브>, <이슬라이브>, <음악 감상회> 모두 영상이나 경험을 통해 음악을 청취자들의 기억에 잘 남게끔 만들고 싶었다.

메이크어스 <세로라이브>

Q. 스페이스오디티에서도 다양한 음악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 그동안의 성과가 하나하나 뜻깊고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스페이스오디티를 세울 때 내건 비전이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음악 콘텐츠로 우리 비전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리고 모두 의미가 있었다. 초반에는 폴킴, 멜로망스, 치즈, 에릭남과 같은 아티스트를 섭외해 큰 히트곡을 만들었다. 스타트업 초반에 히트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네이버 문화재단과 함께한 '디깅클럽서울'은 트렌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디깅클럽서울은 흘러간 20세기 노래와 21세기 아티스트가 만난다는 컨셉이었다. 1970~1980년대 노래를 을지로를 기반으로 한 힙스터 주제곡으로 만들었다.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영역이었다. 디깅클럽서울을 통해 스페이스오디티의 팬이 아닌, 디깅클럽서울의 팬을 만들어냈다.

Q. 그런데 '케이팝레이더'와 '블립'은 기존에 스페이스오디티가 선보였던 서비스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동안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라는 비전 아래 음악 생산자 역할을 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그러다 음악 시장의 중요한 다른 축을 담당하고 있는 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팝 팬들이 마주한 불편함을 없애고 팬들이 더 편안하게 '덕질'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게 아닐까?

출처: 스페이스오디티
트위터에서 #Kpop 해시태그 사용 증가량. 케이팝레이더는 트위터의 공식 파트너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트위터의 케이팝 역사를 데이터로 발표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쉽게 케이팝 팬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들이 음악으로 위안받는 순간도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받고, 음악이 삶의 동기가 된다면 그것도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블립과 케이팝레이더를 만들었다.

지금은 블립과 케이팝레이더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특히 블립은 MZ세대에게 있어 덕질을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는 서비스에 집중하지만 블립의 브랜드를 키워나가려 하고 있다. 플랫폼 서비스 외에도 유튜브 영상이든 음원을 내든 블립의 연장선으로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Q. 블립은 출시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고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 구글 플레이 라이프스타일 급상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출시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블립의 성과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출시 반년이 좀 지났는데, 앱 다운로드 20만 회를 기록했다. 아직 멀었고 계속 성장 중이다. 유저분들 중 해외 유저분들의 비중도 40%정도 된다. 처음에는 한국어 앱만 만들었는데 해외 분들이 튜토리얼을 만들어 사용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됐다. 글로벌 언어 대응을 천천히 하려고 계획했다가 어쩔 수 없이 바로 영어와 일본어 서비스도 오픈했다. 해외 유저분들 중에서는 일본분들이 가장 많다.

출처: 인터비즈 가공
스페이스오디티

그 외의 성과는 코어팬을 많이 모았다는 점이다. 트위터 등 SNS를 찾아보면 블립 좋아, 블립 사랑해, 블립 귀여워 등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팬아트를 그려주시는 분들도 있고, 심지어는 팬 계정도 있다. 브랜드를 좋아해서 브랜드 팬 계정을 만들고 팬아트를 그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브랜드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클럽하우스에서 블립 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게 청취자 한 분이 팬덤이 대접받는 느낌, 팬덤을 생각해 주는 느낌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 생각해 보면 다양한 산업군 중 이렇게 돈 많이 쓰는 소비자가 홀대받는 산업이 또 있을까?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팬으로 지내며 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 마음을 씻어주는 게 블립이라고 하셨다. 블립은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마음이 전해지는구나 싶어 뿌듯했던 순간이다.

로고를 귀여워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블립 로고를 팬아트로 그려주신 분들도 많다. 블립은 전 세계 모든 팬들에게 삐삐를 나눠준다는 컨셉에서 출발했다. 사실 삐삐의 안테나와 블립(Blip)의 B에서 영감을 받아 블립 로고를 만들었다. 블립 서비스 자체는 앱이지만 MZ세대는 좋아하는 서비스를 하나의 인격체로 느끼는 것 같다.

Q. 블립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티스트 중심의 팬덤 앱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팬카페와 같은 커뮤니티와도 다른 점이 많다.

블립은 '팬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브이라이브'나 빅히트 '위버스'처럼 아티스트의 IP가 중요한 아티스트 중심의 플랫폼이 아니다. 블립은 아티스트가 없어도 팬들이 앱을 사용하게 하는 게 본질이다. 그래서 아티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걸 고민하는 게 아니라 팬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편이다.

커뮤니티 기능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사실 팬 커뮤니티는 그동안 너무나도 많았다. 트위터 등 SNS도 있고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도 많다. 그래서 사실 블립 내부에는 자유게시판도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유저분들이 자유게시판이 없는 상황에서도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더라. Q&A 게시판에서 친구를 사귀신다. 트와이스 팬분들의 경우 "오늘 오신 분?" 이런 글을 남기며 자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블립만의 커뮤니티를 고민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블립만의 정체성과 저희의 본질에 맞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려고 작업하고 있다. 블립의 본질인 아티스트의 스케줄, 차트 및 유튜브 돌파 현황, 그런 것들부터 커뮤니티화 시키려고 한다. 아예 신생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보다는 하나하나 블립만의 커뮤니티를 테스트하고 확장할 계획이다.

다만 팬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줘야 한다는 블립의 목표는 분명하다. 블립을 만들 때 팬들이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부로 이용해서 돈을 벌지 말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저희는 절대 팬들에게 무의미한 투표를 시키거나 경쟁을 붙이지 않을 생각이다.

Q. 앞으로 스페이스오디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하다.

마치 나이키가 운동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블립이 팬덤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 블립이라는 말이 덕질을 대체하는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누군가의 팬이라는 표현을 할 때, "블립한다"고 말하고, "나는 누구를 블립해"라고 말하고 전 세계 모든 팬들이 다 블립을 얘기하는 게 저희 꿈이다.

전 세계의 음악팬들이 블립을 쓰며 다 같이, 더 농도 깊게 음악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블립이 그런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아티스트의 팬이 된 분들뿐만 아니라 팬이 아닌 분들도 스페이스오디티를 통해 누군가의 팬이 되고,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팬덤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 데 블립이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작 서정윤 ㅣ 디자인 김경수
seo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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