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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칸막이 사무실·구내식당, 1960년대에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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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타자기가 특허를 받았다. 처음엔 기계를 이용한 글쓰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글씨 문서와 서신이 당시의 표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870년대에 레밍턴에서 타자기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1900년 무렵 '과학적 사무관리'가 부상하면서 타자기는 오피스라는 새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1).

오피스와 오피스를 이용하는 방식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1960년대 풀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내식당이 셀프서비스 간이식당으로 대체됐다2). 비슷한 시기에 공장 작업장 레이아웃에서 착안한 빽빽하게 줄지어 늘어선 책상들이 자유자재로 배치를 바꿀 수 있게 바뀌었고, 프라이버시를 제공해 주는 칸막이 사무실로 변화했다. 전화, PC, 이메일 같은 획기적인 기술이 우리가 일하는 장소와 시간, 방법을 확대했다.


1) MIT 슬론경영대학원 조앤 예이츠 인용

2) 호주 멜버른 스윈번공과대의 건축가 겸 업무공간설계 연구원 어거스틴 체베즈 인용

2020년, 코로나19가 다시 한번 전 세계 오피스 형태를 뒤바꿔 놓았다.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로 전환된 상황에서 오피스 진화 방식을 이해하면 오늘날의 변화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HBR 2020. 11-12월 호에 실린 기사를 통해 네 가지 오피스 혁신을 살펴보자.


1
칸막이 사무실의 등장

1. 1968년에 도입된 액션오피스(RIAN PYLE)

2. 중국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닷컴 본사 직원들(CORBIS VIA GETTY IMAGES)

칸막이 사무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64년, 가구회사 허먼 밀러가 데스크, 테이블, 벽체를 자유자재로 조합할 수 있는 '액션 오피스(Action Office)'를 선보였다. 노동자의 이동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강화를 통해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고안된 형태다. 그런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오피스 공간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싸고, 조합하기 쉽고, 자리를 덜 차지하는 가구의 수요가 증가했다. 허먼 밀러는 액션 오피스를 재설계해 더 작고, 더 가볍게 만들었고 다른 가구 회사들은 짝퉁 액션 오피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것이 칸막이 사무실(cubicle)의 시작이다3).

'액션오피스2', 즉 칸막이 사무실은 직원들의 프라이버스를 더욱 보장해 주기 위해 설계됐다4). 이후 칸막이 사무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수많은 기업이 좁은 오피스에 효율적으로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칸막이 사무실을 적용했다. 액션오피스를 발명한 로버트 프롭스터는 말년에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모든 조직이 똑똑하고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조직이 무신경한 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요.

이들은 작고 좁은 칸막이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사람들을 쑤셔 넣습니다. 삭막한 쥐구멍 같은 공간에 말이죠.

로버트 프롭스터

3)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4) MIT 슬론경영대학원 조앤 예이츠 인용

칸막이 사무실 도입 초기, 실제 이용자들의 경험은 어땠을까?

1970년대에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했는데, 제도용 책상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었어요. 오피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큰소리로 말을 했고, 때로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잔뜩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어요. 이런 소음을 피해 개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는 이들에게는 정말 고역이었죠. 좁은 칸막이 사무실이 그나마 어느 정도 분리시켜 준다는 착각을 줘서 도움이 됐어요.

마거릿 리치,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미네소타 주 건축업계에 종사
저는 인사부 과장대리였어요. 회사가 급성장하던 중이라 오피스 공간이 부족했죠. 관리자가 늘면서 파티션 간격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어요. 사업이 커질수록 칸막이 사무실 크기는 줄어든 거죠. 제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칸막이 사무실 크기를 줄여야 하는 관리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날리사 수레시,
1990년대 중반 인도의 한 기술유통 업체에서 근무
칸막이 사무실로 인해 창가 사무실이 지닌 힘이 더 강해졌어요. 잘 보이게 구분된 단체석과 대비되는 안락하게 보호받는 개인석이 사무실 내 지위와 권위의 차이를 아주 극명하게 반영했죠. 좁은 칸막이 사무실 안에 있을 때는 더 무력하고 개성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낸시 핼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뉴욕 소매유통 업계에 종사
2
텔레커뮤팅, 원격근무의 시초

1. 아버지가 쓰던 PC를 생일선물로 받은 아이(HULTON ARCHIVE/GETTY IMAGES)

2. 1980년 5월 뉴욕시의 공중전화(BARBARA ALPER)

3. 개인 업무용 아파트(BILL JOHNSON/THE DENVER POST VIA GETTY IMAGES)

텔레커뮤팅(telecommuting)은 NASA의 엔지니어였던 잭 닐스가 1970년대 초에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오일쇼크가 터진 상황에서 텔레커뮤팅이 자원 소모의 측면에서 '통근'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직원들이 거주지 근처에 있는 위성 오피스(satellite office)에 출근하게 되면 도시의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980~1990년대에 기술이 개선되고 기술 비용이 낮아지면서 텔레커뮤팅이 가능한 업무 범위가 확대되었다. IBM, J.C Penney, 심지어 미연방기관까지도 오피스 경비를 절감하고 직원들에게 더 많은 업무 유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원격근무 실험에 돌입했다.

2013년에는 전체 미국 노동자의 2.5%가 원격 근무를 했다. 이후 협업과 소통, 혁신이라는 키워드가 다시 강조되면서 야후, 뱅크오브아메리카, 심지어 IBM까지 텔레커뮤팅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로 다시 전 세계의 많은 근무자들이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텔레커뮤팅 도입 초기에 직장 생활을 했던 HBR 독자들의 경험담은 다음과 같다.

통신기기라고는 호출기(삐삐)뿐이던 시절 텔레커뮤팅을 했던 기억을 종종 생각해 봅니다. 한 번 메시지를 보낼 때 입력할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메시지를 보낼 때는 몇 번에 걸쳐 이어 보내야 했죠. 그렇게 받은 메시지들을 순서대로 모아서 요청사항을 해독한 다음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리했어요. 이메일이 없어서 요청사항 하나를 처리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죠.

프렘 랑가나스,
1990년대 중반 위스콘신 주 기술 컨설팅 업계에 종사
1999년 벨기에의 한 기계 제조 업체에서 일할 때, 아르헨티나의 가변 데이터 인쇄 프로젝트를 맡게 됐습니다. 저는 아직 구현되지 않은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 때문에 유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건너갔어요. 업무 중 이슈가 생길 때마다 지문보안 시스템을 거쳐 벨기에로 AT&T 수신자 요금 부담 전화를 걸어야 했죠. 이런 과정 때문에 업무 속도가 엄청 더뎠습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던 거죠.

아이드 클라슨,
1990년대 말 벨기에의 한 기계 제조 업체에서 근무
3
PC의 등장

1. 바이트 매거진(Byte Magazine) 1977년 12월 호에 실린 애플2광고 코모도어 펫 2001 시리즈 PC(SSPL/ GETTY IMAGES)

2. 공항 터미널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쓰는 여행자(DAVID BUTOW/CORBIS VIA GETTY IMAGES)

3. 1981년 데이터 제너럴 컴퓨터를 사용하는 보스턴의 한 직장인(FPG/ARCHIVE PHOTOS/GETTY IMAGES)

1936년에 앨런 튜링이 논문을 통해 '자동 기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종이테이프에 문제를 부호화하면 튜링의 기계가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각종 컴퓨터가 전 세계 오피스에 보급됐다.

거대하고 투박한 이 기계들은 오피스 공간 전체를 차지하곤 했고, 여러 직원이 공유했다. "인맥 쌓기 좋은 시절이었죠!" HBR 독자 타니아 미자스는 1980년대 GM의 브라질 지사 오피스에서 동료 직원 140명과 함께 공용 컴퓨터 한 대를 나눠썼다고 한다. 컴퓨터를 쓰기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하며 다양한 동료들을 마주치곤 했다고 전했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인 PC가 등장했고, 이는 직원의 모든 것을 바꿨다. 여러 독자들이 회사에서 처음 PC를 받았을 때 "성공했다"라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PC가 생기면 장소에 구애 없이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신기술을 둘러싼 혼란과 저항도 있었다.

1994년에 Coopers & Lybrand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제 인생 첫 노트북 컴퓨터를 갖게 됐어요. 제가 하게 될 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표식이었고, 굉장히 자랑스러웠죠. 하지만 컴퓨터가 어찌나 무거운지 클라이언트 미팅에 들고 갈 때마다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어요.

세실리아 베르겐달,
1990년대 초 스웨덴 컨설팅 업계에 종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거대 광물기업에서 일했을 때 그 나라에 들어온 초기 PC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회사에서 채광 현장에 있는 제너럴 매니저들에게 PC를 가장 먼저 지급했는데, 그 PC의 99.9%는 화분 받침대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본체 표면을 보호하려고 깔개를 덮어놓기까지 했죠. 지질학자와 행정담당자가 합류하고 나서야 PC가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어요.

르네 펫저,
남아프리카공화국 채광 업계에 종사
4
이메일 활용으로 즉각적 소통

1. 페르시아 만에 주둔 중인 해병대 헬리콥터 조종사 아버지로부터 온 이메일을 자녀들에게 읽어주는 캘리포니아 여성(DON BARTLETTI/LOS ANGELES TIMES VIA GETTY IMAGES)

2. 2007년 4월 8일에 캡처된 AOL 홈페이지

3. 1995년 9월 27일 뉴욕시의 한 인터넷 카페에 있는 사용자(JONATHAN ELDERFIELD/LIAISON)

1965년 MIT 연구진이 컴퓨터끼리 파일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후 1971년 레이 톰린슨이 인터넷의 전신인 알파넷(Arpanet)을 이용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메일을 만들었다. 1993년에 AOL과 아웃룩이 출시됐고 1996년에 무료 이메일 서비스가 등장했다.

이메일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즉각적인 방식으로 메시지와 파일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클라이언트, 동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완전히 변했다. 오피스에서 오고 가던 종이쪽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오피스에서 인간 유전체를 서열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1989년의 일이죠. 한 남자가 오피스로 들어오더니 제 컴퓨터에 이메일이라는 것을 설치하려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한 시간 동안 제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더니 포스트잇에 뭔가를 적어 저에게 건네면서 “이건 이메일 주소라는 겁니다”라고 했어요. 그날 저는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의 오피스에 있는 동료에게 처음으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을 받을 생각에 너무 신이 나서 밤잠을 설쳤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더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마법 같은 글자가 뜨더군요. 그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죠.

루시 길시먼,
1980년대 말 독일 생물정보학 업계에 종사
런던에서 법률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때였는데, 처음 이메일을 썼을 때의 두려움을 아직도 기억해요. 엄청난 변화처럼 느껴졌고 너무 즉각적이었어요. 소통 방식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했던 게 기억납니다. 전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비서를 거쳐야 했고, 여러 인간관계를 맺어야 했죠. 이메일은 그보다 더 직접적인 말투와 사고방식을 요구했습니다.

페타 스위트,
1990년대 말 영국 언론계에 종사
저는 런던의 한 B2B 직접마케팅 팀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주문을 팩스로 받곤 했죠. 우리는 팩스기의 신호음, 전자기기가 내는 기묘한 소음, 주문서가 천천히 뽑아져 나오는 광경을 정말 좋아했어요. 1년 새 이메일이 접수하는 주문서 비율은 5%에서 60%로 급증했습니다. 주문서가 이메일 편지함에 즉각적으로 뜨는 건 효율적이었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었죠.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즐거움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싱가포르와 버지니아에 있는 해외 지부와 연락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지부 간 근무시간이 몇 시간만 겹쳐도 팩스나 전화를 통하지 않고 이메일로 작업과 수정을 끝낼 수 있게 됐죠. 세상은 아주 빠르게 좁아졌습니다.

엘리엇 윌리스,
1990년대 중반 영국 언론계에 종사
오피스는 하나의 발명품

지금은 회사에서 칸막이 사무실, 텔레커뮤팅, PC, 이메일 활용을 하지 않는 곳을 찾기 드물다. 지금은 굉장히 당연한 것들이지만, 이런 기술을 낯설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HBR 독자 크레이그 다울링은 그가 일하던 뉴질랜드의 한 신문사가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전환했던 1980년대에 그의 상사인 에디터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다.

제가 지금까지 잊지 않는 교훈 중 하나는 새로운 기술로 전환할 때 특히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들이 변함없이 제공하는 가치를 고려해서 적절한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일은 계속 진화한다. 앞서 설명한 네 가지 오피스 혁신 중 우연히 일어난 것은 없다. 사람들이 일하는 장소와 일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령, 타자기의 발명 덕분에 더 많은 여성이 화이트칼라 인력으로 편입되었고 사회구조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오피스 내 변화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거스틴 체베즈는 "오피스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발명품입니다. 오피스를 발명품으로 생각한다면 오피스를 재발명하는 일도 가능하겠죠."라고 밝혔다.


출처 세계적 경영 저널 HBR 2020년 11-12월 호

필자 켈시 그리펜스트로

HBR audience engagement 에디터

정리 인터비즈 정예지 박은애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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