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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시되는 '리더십', 정약용에게 묻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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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자신의 자리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자세는 '중용'이라는 개념으로 조선왕조 내내 강조되었다. 중용에 대해 묻는 정조의 물음에 정약용은 '중용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DBR 308호에 실린 기사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원문 기사 더보기(링크)

공자가 지극한 덕(德)이자 군자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칭송한 '중용'은 나의 마음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중(中)]" "언제나, 항상 그러한 [용(庸)]"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 치우쳤는지 아닌지, 정도가 지나쳤는지 모자랐는지의 기준은 고정돼 있지 않다. 환경이나 변화한 양상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중용이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장 적절한 지점을 찾는 노력이자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중용은 조선왕조 내내 매우 중시됐는데, 정조는 초계문신(抄啓文臣)을 대상으로 연 절일제(節日製)에서 중용에 관한 문제를 냈다. 정조가 세부적으로 질문한 30개 내용 중 2개만 꼽아서 소개하자면 하나는 '시중(時中)이고 다른 하나는 '정성(誠)'이다.

시중: 현재 상황을 헤아려 '시(時)'에 맞게 중용하는 자세

우선 정조는 "군자도 시중(時中)을 필요로 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이 '시(時)'자란 말인가?"라고 물었다. 중용이 '지금 여기'에 꼭 알맞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지금 여기'가 어떤 상황인지부터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때에 맞는 중용'이라는 의미로 '시중'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치우치지 말라는 경계 자체는 중용을 고정된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시(時)'자를 망각하곤 하는데 군자는 반드시 '시'에 맞게 중용을 행한다.

 

여기에 대해 정약용은 "사물의 마땅한 법칙은 때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마치 저울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물건의 무게에 따라 추가 달리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군자도 중용하려면 당연히 시중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시'가 왜 중요한지를 부연해 설명한 것이다.

중용의 자세로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애를 쓴다고 해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실패하고 만다. 이상과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낼지, 시의성을 확보할지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시중'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정성: 스스로를 경계하며 중용을 실천하는 자세

지식을 쌓고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통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을까? 흔히들 '시중'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정말로 그것을 실천해야 함을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중용'을 행하기 위해 무언가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절박하게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용에서 '정성(誠)'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정조는 "성이라는 글자가 중용의 주축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정약용은 조심하고, 삼가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계신공구 (戒愼恐懼)'의 자세로 언제나 '정성'을 다한다면 중용을 실천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내가 무엇이 옳은지를 알면서도 귀찮아서, 혹은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이를 걱정하고 조심하는 자세로 계신공구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성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 게을러지고 방심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소통하는 것 또한 정성이다. 정성이 있어야 나도 성장하고, 마음을 움직여 상대방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중용'을 실천하고 '시중'을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성은 왕에게 매우 강조됐다. 왕이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고 맡은 역할을 수행하려면 쉴 틈 없이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대리청정 시절, 신하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하께서 요즘 중용을 공부하고 계시는데 중용에 이르기를 '정성스럽지 못하면 만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저하께서는 모든 순간에 항상 정성을 다하십니까?

이런 얘기를 듣는 왕도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리더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리더들도 늘 부하 직원이나 주변인들로부터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받곤 한다. 누군가 '지금 당신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겸손함 때문이 아니더라도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정성의 본래 특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정성이란 내가 꾸준히 노력할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완벽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종의 의무 기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늘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반성하며, '내가 더 정성을 다해야지'라고 다짐하는 마음가짐이 나의 게으름을 방지하고,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308호

필자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인터비즈 이한규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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