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그 향기, 고객에겐 '진하게(?)' 남기고 싶었다

조회수 2020. 12. 18.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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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ght 04. Diversity
향수(鄕愁)로 향수(香水)를 어필하다

(편집자 주) 아래 글은 브랜드 컨설팅 기업 ‘케세라세라’가 한 섬유향수를 어떻게 브랜딩 했는지 그 과정을 써내려간 기록입니다.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풀어내기는 상당히 힘든 것이 바로 '향기'의 영역인데요.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 접근해 나간 브랜딩 여정을 찬찬히 톺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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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라는 이름의 감각

적절한 자극은 즐거운 기억과 경험을 상기한다. ‘호텔 이불’이라는 단어는 보기만 해도 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나 감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감 중에서도 후각은 특히 장면과 상황 기억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가령 빵 가게에 들어서면 나는 냄새, 고무 찰흙에서 나는 냄새, 새 신발 상자를 열면 나는 냄새 등 특정한 후각 자극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개인화 한 체험 여러 가지를 촉발한다.

이렇게 각인된 경험이나 기억이 후각을 통해 재구성되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경험을 전달할 수 있고, 기억 재구성까지 감각을 유도하는 과정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다.

문제는 후각 자극은 말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원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특정 냄새를 설명하려면 길고 수고스러운 미사여구가 필요하다. 물론 쉽게 대체하는 방법도 있다. 석유계 용제의 휘발성 화학약품 냄새보다 세탁소 냄새라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이쪽은 디테일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대신 많은 사람들이 연상할 수 있는 키워드를 이용한 방법이다. MFB의 섬유향수 브랜드, 비비디VIVIDY의 브랜딩 프로젝트는 이 후각적 자극을 BI와 VI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였다.

‘향기’라는 시장

이번에 케세라세라가 맞이한 프로젝트는 향기를 브랜딩하는 것이었다. MFB는 ‘향’을 제공한다는 매니페스토를 기반으로, 섬유향수를 시작으로 하여 보디워시와 보디로션 및 향이 가미될 수 있는 기타 코스매틱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섬유향수 시장은 2015년 무렵부터 가시적으로 성장했다. 섬유향수는 몸이 아니라 섬유에 사용하는 향수로 용도가 분명하지만 상당 기간동안 탈취제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는데, 소비자들이 점차 섬세한 자기관리를 신경 쓰게 되면서 두 제품군의 영역이 뚜렷하게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장세와 별개로 섬유향수 시장은 여전히 대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규모다. 아직 이 제품은 소위 ‘찾는 사람이 찾는 종류’에 속하며, 이렇게 대중화된 시장이 아니라는 점은 경쟁자가 적다는 면에서는 이점이기도 했지만 잠재고객을 한 번에 끌어 모으기가 어렵다는 난점도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신규 브랜드이므로 타깃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콘셉트가 필요했고, 매스-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므로 어느 정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원한다. 시향과 결정이 이루어질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확실히 눈에 띄어야 한다. 제품명과 디자인은 향후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도 해외 소비자들에게 큰 거부감이나 거리감이 없도록 기획해야 했다.

특히 섬유향수처럼 기능을 독보적으로 차별화하기 까다로운 경우에는 품질을 평가하기 어렵다. 경쟁자와 차별화 한 이미지(USP *Unique Selling Proposition)를 투영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누가 이것을 필요(needs)로 하며
왜 원하게(wants) 될 것인가?

MFB는 브랜드 콘셉트에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동화’를 원한다고 명확하게 제시했다. 초기에 이 콘셉트를 소비할 것으로 예상한 타깃은 20-30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타깃을 그냥 20-30대 여성으로 한정하기에는 너무 막연했다. 해당 범위 내 여성 중에서도 제품에 아예 관심이 없는 그룹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페르소나는 좀 더 세밀하게 구성되어야 했다.

앞으로 이 제품을 구매할 사람들은 20, 30대 여성 가운데에서도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다소 높은 가격으로 책정될 제품을 선호도만으로 선뜻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거듭 말하지만 이제 품질과 기술로는 즉각적인 차이를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위해 기꺼이 높은 금액을 지불할 사람들은 고집과 일정 수준의 소비력이 있는 그룹에 속해 있을 것이다.

이 그룹은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트렌드를 따르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일원화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도 저항감이 있다. 가령 #일상스타그램과 #맛스타그램, #~챌린지는 동일한 유형의 트렌드를 가리키지만, 이들은 같은 트렌드 내에서 똑같은 이미지로 대변되기는 거부한다.

‘향수’로 어필하는 향수
노스텔지어 디자인

트렌드와 개인화, 두 가지를 모두 잡기 위해 MFB와 케세라세라는 고객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이용하기로 했다. 과거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거나 현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제품을 재구성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데, 긍정적인 부분을 자극하면 이미지 마케팅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특히 브랜드 인지부터 시작해야하는 신규 브랜드는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를 이용하면 기업으로서도 브랜드를 알리는 데 들어가는 수고가 눈에 띄게 줄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해하는 데에도 힘이 적게 든다.

눈과 이슬 냄새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슬이 송글송글 맺힌 숲 속, 새 신발 상자를 막 열었을 때라고 했을 때 퍼뜩 뇌리에 스치는 어떤 냄새가 있다면 이 문장이 그 냄새를 설명할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의 평소 취향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공통적인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상상력에 일관성을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를 이용한다는 비책이 있었다.

소비자의 상상력에 기대하라

브랜드 에센스가 비교적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네이밍은 가능한 분명하고 단조로운 쪽으로 고안해 브랜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잡아낼 수 있게 했다. 코스매틱과 화장품에서는 ㅂ, ㄹ, ㅇ 등 부드러운 비음과 유음이 풍부한 이름을 선호하므로 제품 특성상 가능하면 발음할 때 마찰이 적고 거세지 않은 이름을 고르는 것이 좋다.

비비디VIVIDY라는 브랜드명은 마법을 상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의 발음을 차용하고, 생생한(vivid) 감각을 전달해준다는 브랜드 가치를 살려 자음부를 V로 교체했다.


‘알자스 광장에 핀 장미’, ‘알카사르 궁전에 흩날리는 하얀 드레스’, ‘아드리아 해의 청량한 바람’처럼 각 제품의 이름은 직설적인 디렉션을 피하고 향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암시를 주지 않도록 유의했다. 이렇게 우회된 제품명들은 소비자가 일률적인 경험에 빠지는 대신 향과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제품명은 장소와 키 아이템을 하나씩 조합하는 규칙을 만들어 향후 제품군이 더 늘어날 경우에도 작명이 곤혹스럽지 않도록 했다.

예리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자극하라

비비디의 상품들은 전용 진열대로 들어갈 때의 모습과 온라인 몰에서 판매될 때 모습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매스프리미엄을 표방하더라도 소비자가 느낄 심리적 거리감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맛이나 질감처럼 뚜렷하게 경쟁제품 간의 차이를 알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제품을 맞닥뜨릴 '퍼스트 뷰'에서 잠재 고객에게 브랜드 정체성을 빠르게 각인시켜야 한다.

주로 단독으로 사용할 워드마크는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가시성에 중점을 두었다. 메인 그래픽은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작업했다. 일러스트 작업을 담당한 것은 외국인 디자이너였다. 작업을 의뢰할 때에는 제품명과 제품명을 지을 때 고려했던 점들을 설명한 뒤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 달라고 했다.

모티프가 된 동화들은 모두 디자이너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므로, 제품명을 보고 연상해 그린 일러스트가 클라이언트의 원츠(wants)에 맞는다면 우리의 세 번째 과제, ‘해외 시장에서도 거부감이 적어야 한다.’는 목표에 성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장소와 키 아이템으로 조합된 이름들은 한 번 보고 오래도록 기억하기에는 길고 어렵지만, 서로 다른 컬러 팔레트로 잡힌 일러스트들이 시각적인 레이블링을 돕는다. 마치 여러 개의 차선이 있는 도로처럼 통행 시 어떤 차선을 이용해도 좋지만, 도착점은 한 방향을 가리키도록 소비자의 연상과 제품 간에 지나친 괴리가 생기지 않게 틀을 잡아주는 것이다. 저채도와 저명도로 작업된 일러스트는 긴장감을 풀어 소비자에게 정서적 여유를 주고, 디테일보다 색상과 무드의 편안한 배열을 우선했다.

타원처럼 크롭한 일러스트는 창문 너머로 장면을 내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개인화 한 브랜드 경험을 준다. 육안으로 뚜렷한 특징을 잡아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인쇄 시 약간의 후가공을 더해 자칫 디자인이 평면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했다.

향도 눈으로 볼 수 있다

‘제품 향을 유추하는 재미가 있다.’, ‘이름만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냥 시중에 나오는 장미향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비비디의 상품구매 후기들은 비비디가 당초 MFB와 케세라세라가 상상했던 결과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는 자기가 연상하는 이미지와 브랜드가 연출하는 이미지가 동일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소비자가 알자스 지방에 가보았는지 어떤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고향의 맛'이라고 했을 때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특정한 맛과 향이 있듯이, 알자스 지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나 알고 있는 시각적 지식들이 이미지를 바로잡아준다.

MFB는 각 제품 별로 섬세하게 신경 썼다는 점을 디자인으로 어필하고 싶다고 했다. 비비디의 각 제품에는 각 다른 일러스트와 함께 긴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제품마다 다르게 잡힌 색상 팔레트는 연상이 지나치게 이질적인 이미지가 되지 않게 길잡이를 도와준다. 소비자들은 수많은 향을 앞에 두고 네이밍 스토리를 찬찬히 읽어보며 원하는 것을 찾는다. 어떤 향일지 직접 상상하는 과정은 색다른 재미를 주고, ‘상상’이라는 행위의 특성 상 누구도 완전히 같은 향을 연상할 수 없다.

이제 소비자들은 절대적 필요 때문에 구매하지 않는다. 기분과 감성을 구매하기도 하고, 가치를 사기도 한다. 고객과의 관계가 비즈니스적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변할수록 메시지 전달이 쉬워진다.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은 이제 서비스만의 영역이 아니다. 복잡하고 예민해진 소비자에게 맞추어 ‘제품’도 사용자의 잠재적 경험을 고려해야한다.

*출처 미표기 이미지 : 케세라세라 제공

필자 : 케세라세라 주식회사 PR 담당자 신나라(nr_shin@queserser.co.kr)
인터비즈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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