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페트병이 이렇게 가방이 됐다고?

조회수 2020. 11. 26. 1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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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씻어서 버린 플라스틱은 어디로 갈까. 재활용은 또 어떻게 이뤄질까.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뜨겁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변화로 인해 환경에 관심이 깊어지면서는 특히 더 그렇다. 2017년 11월 닻을 올린 플리츠마마는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바로 버려진 페트병을 사용해 옷과 가방을 만드는 것. 가방 하나에 페트병 16개가, 플리스 재킷에 페트병 53개가 들어간다.

왕종미 대표는 창업하기 전 패션 회사에서 근무했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문을 닫았고, 사용처가 없어진 원단만 남았다. 니트를 만들었던 경력을 토대로 그 원단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한 왕 대표는 조금씩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을 꾸준히 가져가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원단이 아닌 새로운 원단이 필요했다.

어떤 원사를 사용할까 고민하던 그의 눈에 효성티앤씨의 '리젠'이 들어왔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활용한 리젠 원사는 쓰레기 매립 양도 줄이며 동시에 발색력도 좋았다. 이후 왕 대표는 플라스틱을 활용한 가방 '플리츠백'을 필두로 플리스 재킷, 담요, 노트북 파우치 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제주도에서 나온 폐페트병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먹고 쓴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 것이다. 세계 최초로 100% 리사이클 스판덱스 상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왕 대표는 "고객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에코백 같으면서도 멋진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출처: 인터비즈 서정윤
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

Q.

다양한 원사가 있는데 '리젠'을 활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패션업계에 근무하시며 효성티앤씨와 친분이 있으셨나요?

A.

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이 기존에 나와있는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가 여부에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대안 선택지를 만들어주자는 거죠. 앞으로 가방, 의류, 라이프스타일 굿즈 등으로 영역을 넓힐 생각이에요.




효성티앤씨와는 원래 모르는 사이였어요. 믿을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안내 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창업을 결심한 건 제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였어요. 남아있는 원사가 가격으로 치면 8억원~10억원 정도였는데 너무 아까워 이걸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한계가 있었어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해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텐데, 남아있는 원사로 그렇게 하기엔 한계가 있었죠.




원사를 찾아보며 세계 유명 원사메이커 거의 모든 곳에 메일을 썼어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메일을 썼는데 단 한 곳도 답변을 주신 곳이 없었어요. 마지막 심경으로 효성티앤씨에 전화를 드려 저희가 이런 가방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리젠 샘플을 받아보고 싶다고 설명을 드리니, 효성티앤씨 측에서 의외로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샘플도 보내주시고 한 번 효성티앤씨 측으로 와달라고 하셔서 미팅도 하고 시제품을 만들 수 있게 소량의 실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어요.


출처: 효성티앤씨
리젠 원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Q.

플라스틱이 어떻게 가방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리젠 원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가방은 또 어떻게 제작되나요?

A.

시작은 분리배출된 투명 페트병입니다. 분리된 페트병을 공장으로 가져가 선별하고 세척한 뒤 '플레이크'로 잘게 쪼갭니다. 그다음에 플레이크를 원사를 만들 수 있는 형태인 '폴리에스터 칩'으로 다시 만드는데요, 이 칩을 효성티앤씨에서 실로 만들어줍니다. 효성티앤씨가 제공한 실을 가지고 가방을 만들고 있어요.



​사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방이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폴리에스터 100' 원사와 플라스틱 원사는 근본적으로 같아요. 폴리에스터 100은 원사를 만들며 바로 플라스틱에서 원사를 뽑아내는 거고, 리젠 원사는 페트병이 그냥 버려지면 안 되니까 그걸 재가공해 폴리에스터로 만드는 거예요. 다만 리젠 원사는 일반 폴리에스터 원사보다 발색력이 좋다는 게 강점입니다. 리사이클을 통해 지구에 환경적인 부담을 덜 준다는 것도 좋은 점이고요.


최근 선보인 제주 에디션은 100% 제주도에서 분리배출된 페트병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창업 초기부터 고객분들이 우리가 먹고 마신 페트병으로 가방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셨는데요, 그런 걸 느끼고 일하다 보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국내산 폐페트병으로 장섬유를 뽑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저희가 효성티앤씨에 역으로 제안을 했어요. 제주산 폐페트병으로 리젠 원사를 만들어보자. 처음에는 거절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 분리배출 시스템이 투명 페트병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니라고 거절하셨어요. 어떤 품질로 나오든 저희가 100% 매입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리스크를 함께 안고 만들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상용화된 게 제주도 에디션이에요. 제주도 에디션에는 '리젠 제주'라고 써놓았어요.


출처: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 추자 에디션

Q.

국내 페트병으로 가방을 만들다니 정말 뿌듯하실 것 같아요. 혹시 지역 에디션으로 제주도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주도는 섬이잖아요. 저희가 사랑하고 아끼고, 많이 가면 갈수록 쓰레기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 쓰레기들은 소각하거나, 매립하거나, 육지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주도 지자체와 제주도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은 쓰레기 문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으세요. 저희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어요.




또 도와 함께 삼다수가 분리배출 수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셔서 깨끗한 투명 페트병이 모여있기도 했어요. 서울, 부산, 천안, 김해, 제주, 서귀포 등 6개 지자체에서 무색 폐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시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제주도가 구축한 거점배출 제도 '클린하우스'를 통해 제주도개발공사가 양질의 폐페트병을 수거하고, 효성티앤씨에서 '리젠 제주' 원사로 만들어 플리츠마마가 패션 아이템으로 완성시키는 선순환 구조에요.




지난 6월부터 제주도와 부속 섬을 주제로 한 지역 에디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어요. 제주 에디션을 시작으로 두 번째 지역인 추자도에서 투웨이 쇼퍼백, 추자요 등 '추자 에디션' 2종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우도 에디션'도 출시했어요. 앞으로 내년, 내후년에도 지역 로컬로 리젠을 뽑아내는 자연순환시스템을 하나씩 선보일 생각이에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이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정도는 아니고, 여러 기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섬을 넘어 내륙 지역까지 지역 특색과 자원순환의 의미를 더한 에디션을 확장하고 싶어요.

Q.

플리츠마마의 컨셉이 '최소화'라고 들었어요. 최소화라는 컨셉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A.

저희는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합니다. 제품도 최소화, 쓰레기도 최소화하는 거죠. 고객들에게 저희 제품이 도달했을 때 주는 이미지도 최소화에 적합한 모습이길 바라고 있어요. 낱개로 포장할 때 자가 접착식 완충 포장재를 사용해 배송용 별도 박스, 별도의 완충재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어요. 택배를 받았을 때 상자를 뜯고, 그 안에 비닐이 있는 모습은 싫었어요. 포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다 보니 패키지까지 친환경적인 모습이 됐습니다.




니트 기법을 사용한 것도 친환경적인 제품을 고민한 결과에요. 니트가 사실은 제품을 만들 때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법이에요. 시작점부터 끝까지 한 번에 다 짜버리면 원사가 1g도 남지 않아요. 가방을 만들 때 스웨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그런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노트북 파우치를 만들었는데 충전재를 같이 짜버렸어요.


제품을 오래 사용하시는 것도 추구하고 있어요. 브랜드를 론칭할 때부터 고객분들이 저희 가방을 오래 사용하시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무료 수선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희 측에 과실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고객 측에서 문제가 있었어도 무상으로 수선을 진행해드립니다.




가방을 디자인할 때에도 질리지 않는 컬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깔을 사용해 실증이 덜 나고, 친숙한 느낌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 에디션의 경우에는 비자림 그린, 현무암 블랙과 같이 제주도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을 사용했어요.

Q.

플리츠마마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으로도 유명한데요, 브랜드를 런칭할 때부터 빈폴과 협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칠성사이다, 동화약품, 골든듀, 아우디와도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셨는데요. 콜라보레이션할 기업을 정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A.

빈폴은 우연히 디자인 관계자가 저희 제품을 보시고 협업을 제안하셨어요. 이런 제품은 처음 본다고 하셨죠. 저희는 어디든 콜라보레이션 요청을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나름 내부에서 여러 조건을 두고 있는데요, 조금 더 친환경적인 기업이 저희와 결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존에 만들던 제품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변형할 수 있다든지, 함께 친환경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다든지 등이요.

Q.

경력단절 여성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신다고도 들었어요.

A.

저도 경력이 단절될 뻔했던 여성이에요. 회사가 문을 닫고 다른 데로 이직하기에는 제 나이가 조금 많기도 했고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던 거거든요. 창업 초기에는 따로 인원이 없어서 상품 포장 등을 저 혼자 다 했어요. 힘에 부쳐서 검수하실 분들을 찾게 됐는데, 자연스레 저와 비슷한 연령대에 경력이 단절돼 일할 곳이 없는 여성분을 찾게 되더라고요.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봐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 따로 채용 공고를 낸 건 아닌데, 직원분들이 계속 다른 분들을 추천해 주셨어요. 새로 오신 분이 또 다른 분을 추천해 주시고 그랬죠. 그렇게 인력을 채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규직 직원 중에도, 아르바이트생 중에도 경력단절 여성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Q.

대표님에게 있어서 가방은 참 특별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A.

가방은 물건을 담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잘 드러내고 보여줄 수 있는 도구라고도 생각해요. 명품 가방이든 에코백이든 다들 취향에 맞는 물건을 들고 다니잖아요. 요새 가방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나 라이프스타일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플리츠마마를 운영하며 저희 제품 중 애정이 안 가는 제품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플리츠마마가 탄생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가방을 들고 출근한 적이 없어요. 의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정말 다 좋아요. 특히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걸 꼽자면, 이번에 나온 제주 에디션은 출시됐을 때 너무 벅찼어요. 제작 과정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 남모를어려움도 많았거든요. 그 가방이 조금 더 애착이 가요.

Q.

앞으로 플리츠마마와 대표님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플리츠마마는 아직 성장하는 단계에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정말 많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데요, 그 안에서 소비자들이 쉽게 에코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일차적으로는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목표입니다. 자원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더한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면 다시 버려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소비자가 선택한 우리 제품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에요. 우선은 페트병뿐만 아니라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다른 친환경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사실 회사가 잘 되는 게 좋지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가 막 버린 쓰레기는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게 되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인터비즈 서정윤
seo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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