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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인터넷 뒤흔든 세이클럽, '인턴'이 만들었다?

조회수 2020. 11. 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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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엑스 남세동 대표를 언급할 때면 '천재 개발자'라는 수식이 빠지지 않는다. 22년 전 세계 최초의 웹 기반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을 만들고, 한때 필터 카메라 붐을 일으킨 B612를 만들어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네오위즈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남 대표는 "인턴으로 6달 일할 계획이었는데 세이클럽을 만들어버려 오래 일하게 됐다"며 허허 웃었다. 2015년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 대표가 된 남 대표는 최근 인공지능(AI)에 빠져 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보이저엑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창업에 도전한 이유도 "AI가 너무 좋아서"라고 설명했다.

출처: 인터비즈 서정윤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인공지능, 그리고 보이저엑스

남 대표는 세이클럽 초기 개발자로 유명하다. 네오위즈 인턴 시절 6개월간 디자인을 뺀 모든 작업을 거의 혼자 다 했다. 이후 정직원이 된 그는 초기에는 세이클럽을, 이후에 검색 일을 주로 담당했다. 검색 파트는 분사돼 네이버에 인수됐고 3년쯤 지나 일본으로 발령받게 됐다. 바로 라인이다. 라인 카메라 일을 맡은 남 대표는 그곳에서 B612를 만들었다. 라인에서 서비스실장까지 맡았던 그는 어느날 회사를 그만둔다.

"제가 다녔던 회사들이 탄탄한 것도 맞고 좋은 것도 맞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들보다 더 좋은 직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남 대표는 창업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네오위즈와 네이버, 라인 모두 좋은 회사였지만 그보다 더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남 대표가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AI, 그 중에서도 머신러닝이다. AI의 무한한 가능성에 꽂힌 남 대표는 AI를 다루는 회사인 보이저엑스를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남 대표는 "AI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은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꼽았다. 그는 "AI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개발자들도 AI를 조금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기술을 잘 아는 사람들은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하거나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이저엑스는 이 두개를 조합한 유니크한 회사"라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보이저엑스는 'AI 서비스를 만드는 팀을 만드는 회사'다.

100억 규모 투자 취소 사건

하지만 보이저엑스의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남 대표는 보이저엑스 시작 전에, 위메이드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일방적으로 취소당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 바 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2017년 1월에 100억원 가량의 투자를 약속했고 남 대표는 이에 창업을 결심했다. 남 대표는 투자가 문제없이 이뤄질지 여러번 확인했고 그때마다 위메이드 측으로부터 "문제 없다"는 답변을 받고사무실을 세팅하고 직원도 모았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창업에 뜻을 모은 지인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4월 24일까지도 투자 관련 회의와 통화를 했던 위메이드는, 25일 이메일을 통해 급작스레 "약속했던 투자를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알렸다. 이후 남 대표는 위메이드를 상대로 고소하려고까지 했으나 중간에 소송을 포기했다.

다행스럽게도 보이저엑스는 이후 닻을 잘 올렸다. 1년에 하나씩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AI 기반 영상편집 서비스 '브루(VREW)'를 시작으로 책을 스캔해주는 '브이플랫(vFlat)', 자동으로 폰트를 만들어주는 '온글잎'을 출시했다.

남 대표가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브이플랫을 활용해 스캔한 페이지 수는 매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남 대표는 "세 서비스 모두 수익과 성과,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페이스북
브이플랫 사용자가 매일 스캔하는 페이지 수

아직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는 브루, 브이플랫과 다르게 온글잎은 유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사용자가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손으로 200글자를 작성하면 AI가 글자별로 모양새가 달라진 부분을 학습해 폰트로 만들어준다. 글씨를 좀 더 정교하게 교정하는 작업을 한 번 더 거치면폰트가 완성된다. 글씨체 한 개를 만드는 데 소비자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라이선스에 따라 다른데 최소 70만원 정도다.

특히 손글씨를 폰트화하는 서비스인온글잎의 경우 돌아가신 부모님의 손글씨를 폰트화하거나, 할아버지·할머니의 글씨를 손주들에게 남기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 대표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누구나 아는 케이팝 스타들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AI 서비스를 만드는 팀을 만드는 회사

보이저엑스는 높은 연봉과 자유로운 기업문화로도 유명하다. 이날 인터뷰를 하러 서울 서초구에 있는 보이저엑스 사무실에 갔을 때, 놀랐던 것은 사무실 한 켠에 피아노가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 곳곳에 운동기구가 있었고, 천장에 장식도 붙어 있었다.

보이저엑스의 정규직 개발자 20%는 연봉 1억원 이상이다. 남 대표는 "좋은 분들을 뽑기 위해 연봉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그렇고 개발자들은 원래 연봉이 높다. 그 중에서도 AI를 다루는 분들, 좋은 분들을 모시다보니 연봉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출처: 보이저엑스 채용 홈페이지

남 대표는 "사용자들에게도 좋고, 직원에게도 좋고 주주들에게도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좋은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뒤에는 보이저엑스 사용자도 10억명 정도 되고, 직원도 10만명, 주주도 아주 많은 주주가 있는 그런 모습을 꿈꾼다"고 말했다.

남 대표가 생각하는 보이저엑스의 가장 좋은 기업문화는 '최대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보이저엑스는 누가 들어오든 본인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다. 새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다. 홀로 또는 팀을 모아서 어떤 프로젝트든 진행할 수 있다. 기존에 있는 프로젝트들도 직원들이 하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다. 남 대표는 "직원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의사를 100% 반영할 수는 없지만 80%는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회사가 AI만 다루다 보니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AI가 아니라든지, 어떤 팀에 가고 싶은데 그곳에 이미 사람이 많다든지 그러면 어렵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른 걸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걸로 바꾸는 게 옳다고 봅니다. 이 팀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라든지, 일이 별로라면 바꿀 수 있어요."

휴가를 무제한으로 준다?

보이저엑스는 무제한 휴가라는 어마어마한 복지를 자랑한다. 남 대표는 "유급 무제한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급휴가는 다른 회사와 비슷한 15일부터 시작한다. 다만 무급 휴가를 사용하면 언제든 무제한으로 쉴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저희는 지식노동자들이잖아요. 회사에 나온다고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다고 해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아무도 몰라요. 일을 안하고 싶은데 회사에 나온다고 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잘한다고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남 대표는 "저희 인턴이 월급 300만원을 받는데, 이 분들이 하루 쉬면 10만원 이상을못받는 셈"이라며 "그렇게 자기 돈을 깎아가면서까지 쉬고 싶다고 하는데 일을 시킨다고 해서 잘할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제한 휴가라고는 하지만 본인이 가진 휴가를 초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남 대표는 "작년에 가장 많이 사용하신 분이 10일 정도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다만 언제든 자기가 쓰고 싶을 때 휴가를 쓸 수 있다는 편안함은 있어요. 언제든 쓸 수 있고 사유도 필요 없어요. '저 다음주에 3일 쉽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날 갑자기 휴가 내는 경우에는 미안하니까 사유를 얘기해주시곤 하더라고요. 그거 말고는 휴가 사유도 필요없고 언제든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스타트업 시작할 때 중요한 건? "선배 말 절반만 들어라"

AI는 남 대표의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저엑스를 꾸린 것도, 서비스를 3개나 출시한 것도 결국 AI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 대표는 "앞으로 AI가 사람의 지능적인 걸 많이 대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나와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좋아진 게 얼마나 많아요. 멀리 있는 사람과 통화도 할 수 있고 말이에요. 10년 전만 해도 영상통화를 하는 건 특이한 일이었고 20년 전에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거든요. 지금은 모두가 한다니 얼마나 좋아요. AI는 정말로 기계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 해줌으로써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2030세대에게는 "선배 말의 절만만 들으라"고 조언했다. 남 대표는 "선배들의 지식이나 경험이 완전 쓸모없는 건 아니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도 "요즘은 30년 전과 다른 세상이라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변한다. 그래서 선배들 말을 다 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은 무조건 새로운 일을 해야 해요. 새롭지 않은 일은 이미 있는 회사들이 더 잘하거든요. 그들이 못할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에요. 대기업이 잘 합니다. 그러려면 선배들이 안해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때 선배들 말을 들으면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적어요. 그래서 절반만 들어야 합니다. 이건 들을만한 얘기인지, 무시해야 할 얘기인지 판단하는 건 결국 본인 몫이지만요."

인터비즈 서정윤 기자
seo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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