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나가는 게 낫겠다" 그가 사표 제출한 이유

조회수 2020. 11. 3.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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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 대안' 편을 통해 '부팀장'을 두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팀제의 애초 목적과는 거리가 있지만, 팀장이 고려할 만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팀장은 장차 팀장이 될 재목이고, 팀원 중에는 부팀장이 될만한 재원을 미리 챙겨볼 수 있는 계 기로 삼으실 수도 있습니다.

제게도 부팀장 후보가 될만한 팀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직위는 낮았지만(대리) 제 뒤를 이을 사람이 돼주길 바랐죠. 사무실 자리 배치를 '팀장 - 부장 - 과장 - 대리' 순서가 아니라 '팀장 - 부장 - 대리 - 과장' 순으로 했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얘가 부팀장이 될 후보다.'

어느 날, 부팀장에 대한 언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 의향을 물었습니다.

"이제 너도 장차 팀장이 될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 당장은 아니어도 부팀장을 맡아서 팀장되는 연습을 하면 좋을 거야."

잠시 말이 없던 그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팀장 되기 싫어요."

순간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당황해 말이 많아졌습니다. 팀장이 되면 좋아지는(?) 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죠. 승진하면 팀장급도 생겨서 연봉도 올라가고, 팀원들 평가권도 가질 수 있고 등등. 책임질 일도 생기고 가끔 욕도 먹지만 원래 조직에 있다 보면 다 그런 거란 얘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이 원래 욕 먹는 대가로 월급을 받은 거라고요.

그랬더니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면서 고개를 젓더라고요. 재차 이유를 묻자 한참 뜸을 들이더니 입을 뗐습니다.

"팀장은 외로워서 싫어요"

팀장은 외롭다, 결단을 내릴 때도 받아들 때도 혼자

팀장은 고독해지는 자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크지 않지만, 권한을 갖게 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이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결과 를 초래합니다. 그 결과는 기분 좋은 경우보다 속 아픈 경우가 훨씬 많지요. 저 역시 그런 결과 앞에서 좌절할 때가 많았고, 그 모습이 외로 워 보였나 봅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과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엔 혼자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20XX년, 당시 다니던 회사는 3개월치 급여를 지급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어려웠습니다. 사장이 횡령을 하거나 불합리한 운영으로 위기 상황에 몰린 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출시한 제품 평판이 좋아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버티고 있었죠.어느 날 사장 님이 절 호출했습니다.

"김 팀장, 우리 이번에 A사 수주전에 뛰어들었잖아. 조금 전에 낙찰이 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어. 휴우... 알다시피 지금 회사에 현금은 바닥난 상황이네. 인력감축을 위해서 팀에서 세 명을 골라 다음 주까지 보고해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던 만큼 한마디도 못 하고 나왔습니다. 관련 사항을 인사팀장에게 물어봤습니다.

"들으신대로 상황이 대략 그렇습니다. A팀장, B팀장한테는 아예 권고사직 통보를 했고요. 그래도 김 팀장님은 남으실 수 있습니다. 재무 팀에서 적지만 자금을 융통할 듯하니 상황을 지켜보시죠."

차라리 내가 나가는 게 낫겠다

우선 팀에서 선임이고, 가장 능력 있는 팀원을 골랐습니다. 실력이 있는 만큼 다른 곳으로 이직을 용이하게 할 친구였습니다. 다음은 실적 이 가장 좋지 않은 팀원을 골랐습니다. 경력직이었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매출에 기여하기 힘든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한 명 을 더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거였으면 내가 잘리는 게 낫지. 내가 잘리는 게 나아."

불면의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사장님께 인원 감축 대상자가 적힌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아니, 김 팀장, 내가 세 명을 올리라고 했는데, 왜 둘 뿐인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 건데, 팀장인 자네가 결심을 해줘야지. 자네 팀에서 두 명만 감축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건가?"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 팀원 중에는 두 명 이상 감축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장님께 조용히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사장님, 제가 사표를 내겠습니다. 그러면 세 명이 채워지잖습니까. 그러니 팀원들은 둘로만 해주십시오. 남은 팀원들이 합심한다면 기본 업무는 끌고 갈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과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아껴두셨다는 양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다 비웠습니다. 사장님의 불콰하고 낙심하는 모습이 저와 닮았다 고 느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두 명만 감원하는 것으로 결단해주셨습니다. 퇴직자들에게 한 달치 위로금도 챙겨 주는 거로 했습니 다.

내 맘 알아주는 팀원 하나 없네

곧이어 팀원들을 모아 놓고, 회사 사정과 감축 계획에 관해 설명을 했습니다. 실력 좋은 팀원은 크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고(후일 들어 보니 이미 타사로 이직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다른 팀원은 상당히 분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번에 쏟아놓더 군요. '이것도 팀장이 할 일이려니'하고 다 들어줬습니다. 두 팀원이 나간 후 남은 팀원들의 불평이 이어졌습니다.

"팀장님, 저희끼리 이 많은 업무를 어떻게 다 처리합니까?"

"고객사에서 OO과장(나가는 직원)이 담당했던 업무에 문제가 많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 인수인계도 안 해줄 거 같은데 누가 맡아야 죠?"

"팀장님... "

'하아... 다들 제 살길 찾기 바쁘구나. 이런 친구들을 위해 내가 사표를 냈었던가.'

"저기, 퇴근 시간도 다 됐으니까. 일 얘기는 내일 하지." 다들 퇴근한 텅 빈 회의실에서 혼자 창밖을 쳐다봤습니다. 저녁 퇴근길로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내 맘 알아줄 사람 하나 없구나.'

‘외로움’은 팀장의 숙명

리더에게는 권한과 함께 ‘외로움’이 별책부록처럼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팀장은 그 첫 번째 자리이며, 처음 겪는 상황이라 심정적으로 더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초보 팀장을 여럿 봤습니다. 아예 팀원들과 업무 외에는 담을 쌓고 속으로 원망을 키워가는 은둔 형, 자신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것 같은, 일부 예스맨들만 옆에 두는 황제형 등. 이 모두 팀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저해해서 잘못 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할 뿐만 아니라, 팀 성과 달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움이 찾아왔다면 리더로서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냉철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 라고 하겠습니다.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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