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캘리포니아의 산불을 담지 못했다

조회수 2020. 9. 17. 1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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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서부는 산불 때문에 난리다. 9월 12일까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 주에서 2만㎢에 가까운 면적을 태웠다. 한국 면적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35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 천 명이 대피했다. 


이렇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도 많지만 간접적인 피해도 엄청나다. 산불 연기로 인한 대기 오염 때문이다. 지금 미국 서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기 나쁜 지역이 됐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지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출처: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이크카운티 산불 현장ㅣ레이크카운티=AP 뉴시스

특히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대낮에 주황색으로 변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상한 하늘 색깔에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댔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사진 속의 하늘은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직접 본 하늘은 내일이라도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색깔이었는데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려고 찍은 사진은 ‘비교적’ 멀쩡했다.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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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카메라는 인간의 눈과 똑같은 현실을 포착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인간의 눈과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사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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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사진 소프트웨어는 세상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포착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낮에 구름이 없는 하늘 사진을 찍으면 되도록 밝은 푸른색의 하늘을 재현한다. 구름 낀 하늘을 찍으면 회색의 하늘이 찍힌다. 


하지만 주황색 하늘은 스마트폰이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하늘색은 나올 수가 없는데…’ 하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하늘의 색을 정상으로 보이게 살짝 바꾼다.

출처: 오로빌=AP 뉴시스, 게티이미지뱅크ㅣ인터비즈 재가공

그래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주황색 하늘을 찍으면서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진 속의 하늘의 색은 흐린 날의 하늘과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셜 미디어에 이런 얘기가 퍼졌고 사진을 좀 아는 사람들은 앱을 사용해 스마트폰 카메라의 색보정 기능을 끄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 때서야 주황색 하늘이 제대로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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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사진을 잘 모르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스마트폰의 사진 보정 기능을 반긴다. 노출이나 셔터 스피드와 같은 복잡한 기능에 대해 잘 모르고 더 예쁘고 더 근사한 사진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보정 기능에 익숙해져 간다. 흐리게 나온 건 명확하게 나오게 만들고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은 밝게 만드는 걸 당연하게 느낀다. 그러면서 매일 찍는 사진이 조금씩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은 느끼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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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색 보정이나 밝기 조절은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조금씩 날씬하게, 조금 더 예쁘고 잘 생기게 나오도록 살짝 사진을 바꿔주는 게 일반적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진이 잘 나오는 스마트폰을 사고 싶어 할 것이고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당연히 사진 보정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이 좋아하도록 사진을 만드는 스마트폰 기술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흐릿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출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여기에 더해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는 필터 기능이 기본으로 장착이 돼있다. 예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멋지다는 뜻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웬만해서는 모두 다 인스타그래머블 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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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사진이 처음 개발되던 1800년대에 살았다. 그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우리가 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의 흥분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진 찍는 행위에 몰두하느라 정작 시간을 들여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하는 일은 오히려 더 멀리하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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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푸른 하늘,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꽃에 머물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멈추어 어떤 대상 자체를 그대로 바라보는 데에 있다. 재앙으로 인한 붉은 하늘을 보고 아름답다는 엽기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재해든,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서야,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은 꼭 멋지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장하고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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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비극이나 공포로 점철된 이야기가 어떻게 인간에게 현실의 긴장과 다가오는 불행에 대한 대비가 되는지 알고 있다. 일명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우리가 불행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하고 어여쁜 현실만은 아니다.

출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세상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진을 찍는다. 원래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찍었다. 지금도 이 사실은 유효하다. 하지만 우리가 찍고 있는 순간의 기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보다 조금씩 더 멋지고 아름답게 기록이 되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끔찍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미운 현실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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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Your smartphone photos are totally fake — and you love it

- 뉴욕타임즈 On Tech 뉴스레터 (2020년 9월 10일)

필자 김선우

약력

- 전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 이메일 구독서비스 '노멀 피플' 운영 (blog.naver.com/wildwild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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