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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80%가 복용하는 자본주의의 마약.. 당신은?

조회수 2020. 5. 27.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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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만 해도 커피는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와 중동 지방 밖에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전설에 따르면 커피의 효능은 한 염소지기에 의해 발견됐다. 커피 열매를 갉아먹은 염소들이 밤에 잠 안자고 까부는 걸 봤다나. 커피 열매는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화학물질을 만드는데 이 물질을 인간이 흡입하면 활력이 넘치게 된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려졌다. 이 물질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약물, 바로 카페인이다.

인간은 이제 깨어있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또는 아침마다 침대에서 기어 나오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물론, 맛있어서 마신다는 사람도 많다.) 인류의 80%가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이렇게 커피는 전 세계 2700만 에이커의 땅에서 2500만 농가가 키우는 작물이 됐다. 열매를 먹지 못하고 예쁘지도 않으며 키우기도 쉽지 않은 나무치고는 엄청 성공한 셈이다.

커피가 서구 유럽에 들어오기 전인 1600년대 초까지 사람들은 맥주나 와인 종류의 알코올이 들어간 술을 주로 마셨다. 깨끗한 물은 구하기 어려웠고 비교적 위생적인 수분 섭취의 수단이 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 농사일을 할 때 새참에 막걸리를 곁들였듯이 논밭에서 일할 때 알코올 섭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기계를 다뤄야 하는 시대가 되자 술은 더 이상 좋은 옵션이 아니었다.

커피는 구세주였다. 맥주나 와인보다 안전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집중력과 체력까지 높여줬으니. 술에 절어 있던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유럽의 각국은 진정 깨어나기 시작했다. 커피는 문명적인 음료로 각광을 받았다. 커피와 조명의 도움으로 인류는 그 동안 암흑일 뿐이자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밤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커피가 인류에 좋은 일만 가져다 준 건 아니었다.


원주민 착취의 그늘

이런 여러 모로 좋은 음료의 원재료를 서구 유럽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수입만 할 리가 없다. 유럽은 커피가 잘 자라는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찾아 식민지화 하고 원주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1871년 영국 맨체스터 빈민가에서 태어난 제임스 힐이었다. 그는 18세에 엘살바도르로 가서 커피 왕국을 건설했는데, 1951년 그가 사망할 당시 2500 에이커에서 2000톤이 넘는 커피를 생산할 만큼 거대했다. 지금도 힐스 브라더스(Hill’s Bros) 커피로 남아있다.

착하게만 살아서는 이런 대규모 왕국을 건설하기가 쉽지 않다. 커피를 재배하고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착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빈민가에서 자라난 힐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야 일을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인들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아보카도와 무화과, 망고, 구아바, 파파야가 넘쳐났다.

그래서 커피를 수출하기 위해 엘살바도르는 개발이라는 명분 하에 토지를 사유화 하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커피 농장에서 돈을 받고 일하지 않으면 안됐다. ‘사유화’의 개념을 잘 모르는 원주민이 농장의 한 구석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아보카도를 따먹다가 걸리면 운이 좋으면 매질을 당했고 운이 나쁘면 총에 맞아 죽었다.

힐은 수렵채집과 낮은 수준의 농업에 종사하던 원주민을 월급을 받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여성에겐 하루 15센트, 남성에게는 하루 30센트를 주고 일을 시켰다. 아침과 점심은 제공했다. 엄청난 잉여가치의 창출이었다. 하지만 큰 갈등은 없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찾아오기까진.

대공황이 오고 커피 가격이 폭락하자 원주민은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땅도 없고 일자리도 없으니 먹고 살기가 막막했다. 사회주의의 바람이 일었다. 배가 고파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배고픔은 혁명의 힘으로 돌변했다. 혁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자 커피 농장주들의 명령에 따라 엘살바도르 정부는 반란 진압에 나섰다. 커피 농장 노동자같이 보이는 사람은 모두 모아놓고 기관총으로 학살했다.


‘커피 브레이크’의 유래

그러는 사이 미국에서 커피는 노동을 위한 약물이 되어갔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칼로리가 하나도 없는 이 음료가 어떻게 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이야기는 미국 덴버에 있는 ‘로스 위그왐 위버(Los Wigwam Weavers)’라는 넥타이 제조업체에서 시작된다. 1940년대 전쟁 통에 젊은 남성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업체는 나이가 많은 남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동자들은 젊은이들만큼 넥타이를 만드는 손놀림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년 여성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일은 잘 했지만 오랜 시간 일할 체력이 부족했다. 문제를 해결해보려 회의를 열었는데 하루에 2번 15분씩 휴식 시간을 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커피와 함께.

커피와 함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나이 많은 남성들이 8시간 동안 하던 일을 중년 여성들은 6시간 반 만에 해내기 시작했다. 업체는 휴식 시간을 의무화 하면서 휴식 시간엔 시급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일 하지 않는 시간엔 돈을 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소송이 걸렸다. 1956년 재판부는 결국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커피 브레이크’는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기 때문에 노동자뿐 아니라 회사측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커피 브레이크’는 이렇게 공식화가 됐다. 

하지만 커피와 자본주의 공생 관계는 조만간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커피는 상당히 까다로운 나무다. 일조량과 물, 배수, 심지어 위도까지 딱 맞아야 자란다. 세상에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 이유다. 기후 학자들에 의하면 2050년이 되면 지구 상에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땅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앞으로 진짜 커피를 즐기려면 돈이 좀 많아야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역시 계획이 다 있다. ‘아토모(Atomo)’와 같은 수박씨나 해바라기씨 등의 화합물로 커피 맛을 내는 대체 커피 업체가 생겨나는가 하면 카페인 알약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알약은 아침과 오후에 한 알씩 나눠주면 굳이 휴식시간을 줄 필요도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마시는 커피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음 번 커피를 마실 땐 그 검은색 물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커피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역사학자 어거스틴 새지윅(Augustine Sedgewick)이 쓴 책 ‘Coffeeland: One Man’s Dark Empire and the Making of Our Favorite Drug(국내 미번역)’을 요약한 월간지 디 애틀란틱의 기사 ‘Capitalism’s Favorite Drug’을 참고해서 썼습니다.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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