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팔아 외산무덤 日 시장 뚫은 한국의 "이 회사"

조회수 2020. 3. 23.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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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일본 전자제품 시장은 흔히 '외산(外産) 무덤'으로 불린다. 자국 브랜드가 내수 시장에서 위력을 떨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조차 2007년 TV를 비롯한 가전사업에서 철수했다. 현재 일부 부품과 스마트폰 사업만 전개하고 있다. 이런 일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기업이 있었다.


레이캅코리아는 침구 살균청소기로 2013년 닛케이 트렌드 '히트 상품 베스트 30'에서 한국 가전 최초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30초 당 한 대씩 팔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며 2014년 일본 침구 살균청소기 시장의 90%를 장악하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레이캅코리아가 개척한 침구청소기 시장에 대기업 등이 진출해 유사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고고행진하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수 년 간 부진에 빠져있던 레이캅코리아는 지난해 신제품을 선보이며 재기에 나섰다. 레이캅코리아가 걸어온 길을 DBR 198호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2013일본 경제신문이 선정한 히트 상품 베스트 30위 중 8위를 기록한 레이캅코리아

어떻게 예방의학 실천할 수 있을까... 의사에서 사업가의 길로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는 한때 의사였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치료 못지않게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예방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하면 예방의학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차단하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 병원에 사표를 던졌다. 2000년 듀크대 경영전문대학원(MBA)로 유학을 떠난 그는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3년간 일했다. 그러다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자동차 부품 B2B 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으로 들어갔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의사 때 고민했던 문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알레르기 환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알레르기의 주요 원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식, 꽃가루가 아니었다. 환자의 약 80% 정도는 집 먼지 진드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에는 집 먼지 진드기를 박멸할 마땅한 제품이 없었다.


의사 시절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 '무엇'이 없어 아쉬웠던 그는 집 먼지 진드기와 알레르기에 대한 책과 논문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부분의 집 먼지 진드기는 이불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움직일 때, 그리고 이불과 접촉했을 때 코나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알레르기는 이런 진드기에 대항해 일어나는 면역반응이다. 자연스레 ‘이불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출처: DBR 198호
이성진 레이캅코리아 대표

사업은 쉽지 않았다. 제품을 생산하도록 협력 업체를 설득하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를 모집하는 것 등은 의사로 살아온 그에게 힘든 경험이었다. 자금이 부족해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이 대표는 "당시에는 '우리가 고민하고 기획했던 상품이 반드시 세상에 나오게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회상했다. 2006년, 각고의 노력 끝에 침구 살균청소기가 세상에 나왔다.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건강한 삶에 도움을 주는 웰빙 가전’이 콘셉트였다.


세계 최초로 침구청소기를 개발했지만 판로를 확보하가 쉽지 않았다. 대기업이 장악한 가전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낯선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날 기회를 얻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어겨졌다.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홈쇼핑, 부녀회 공략, 인터넷 판매 등은 물론, 해외에서 열리는 가전 전시회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러다 영국에서 거래를 트게 됐고, 프랑스 미국 일본 등으로 확대됐다. 수출에서 한줄기 빛을 본 이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30초에 한 대씩 팔리며 日 시장 안착

이 대표는 '깔끔한 문화'를 갖고 있는 데다 시장 규모가 큰 일본 공략에 나섰다. 당시 일본은 온라인을 제외한 청소기 시장 규모만 보더라도 2조 원에 이른다. 한국은 이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시장 조사 결과, 일본 특유의 문화가 보였다. 모든 아파트 가구마다 밖에 이불을 널어두었다. 일본은 예전부터 청결을 중시하며 이불을 털어 말리는 문화가 있었다. 섬나라 기후 특성상 습도가 높고 강우량이 많아 이불이 곧잘 눅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화, 중국발 미세먼지 등으로 더 이상 이불을 밖에 말리기 어려워졌다. 레이캅코리아는 여기서 기회를 봤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초반 3년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네이밍에서부터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생겼다. '침구 살균청소기'로 명명하다보니 '다다미나 책상에는 쓰면 안 되는 건가?' 등의 물음이 생겼다. 에이전트 활용에도 실패했다. 작은 규모의 현지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었는데 그들은 레이캅코리아의 전략과 달리 단기적인 매출을 올리는 데만 급급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이 대표는 2012년 현지 에이전트와 계약을 해지하고 모든 것을 직접 하기로 결심했다.



① 홍보의 초점은 '계몽'



자금력이 부족한 레이캅코리아는 대기업처럼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친숙하지 않은 제품을 사게 하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무엇인지 꼼꼼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설득시키는 작업밖에 대안이 없었다. 모든 홍보활동의 초점을 '계몽'에 맞추고 일을 진행했다.


소비자가 찾아보면 "의사가 개발한 제품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다" "이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이렇게 달라진다" "실제 사용 후기를 이렇다" 등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했따. 또, 일본 문화에 맞춰 일본식으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했다. 한국에선 이불을 물빨래한다면, 일본은 매일 이불의 먼지를 터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 소비자들에겐 "(침구 살균청소기를 쓰는 게) 너는 것보다 좋아요"라고 접근했다.


② 발로 뛰며 좋은 '목' 차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목'이었다. 양판점(대형 소매점)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제품이 놓여 있으면 매출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다. 작은 회사가 무작장 자리를 내어달라고 말한다고 점포장이 내어줄리 없다. 이 대표는 양판점을 유심히 관찰해 점포장에게 협상 카드를 제시했다.


일본 양판점에는 양판점 소속 직원 외에 필요한 경우 가전회사의 직원이 나와 판촉활동을 벌인다. 청소기 판매 층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말에만 가전회사에서 직원을 파견하고 있었다. 판매원이 있어야 매출이 높아지는데 주중엔 판촉사원이 없으니 점포장 입장에서도 고민이 컸다. 이 대표는 "레이캅코리아에서 주중에 판매원을 보내겠다. 대신 가장 좋은 자리에 우리 제품을 올려달라"고 제안했다. 어쩌면 불리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이 대표는 '좋은 자리'의 효과가 더 크다고 믿었다.


자리를 바꾼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판매원들이 투입되는 주중에는 물론이고 레이캅코리아 판매원이 없는 주말에도 판매량이 늘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서서히 들던 때, 예상치 못한 행운도 같이 왔다. 한 일본 연예인이 TV에 제품을 들고 나오며 큰 홍보효과를 누린 것. 의뢰하지도 않았는데 방송에서 직접 “이 제품 써봤는데 정말로 좋아요”라고 소개한 이후 매출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이전 실패를 거름 삼아 '침구 살균청소기’기 아니라 ‘이불 전용 진드기 클리너’라고 이름 지어 사용처를 분명하게 한 점도 매출 상승을 도왔다. 이름만 들어도 소비자들은 어디에, 무슨 용도로 이 제품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 점점 상승세를 그렸다. 기존 손잡이용 청소기 가격이 5만-8만 원 대였는데 레이캅의 제품은 20만~60만 원에 달했다. 그래도 30초, 40초당 한 대씩 팔려나갔다.


이에 따라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 2011년 336억 원, 2012년 454억 원 수준에서 2013년 1316억 원, 2014년 1820억 원으로 급상승했다.

일본 최대 온라인쇼핑사이트 라쿠텐의 레이캅코리아 소개 “생활가전 장르 1위 획득, 판매하고 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옛 명성 되찾겠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중소기업은 물론, 도시바 파나소닉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차 건조기로 소비자들의 시선이 옮겨가면서 침구 청소기에 대한 수요 자체도 줄었다. 브랜드 파워에서 밀리고, 침구청소기 후속작까지 미리 준비하지 못한 레이캅코리아의 실적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4년 1820억 원에서 2016년 808억 원으로 떨어졌다. 2018년엔 266억 원까지 주저앉았다.


잠시 주춤했던 레이캅코리아는 지난해 무선청소기를 내놓으며 재기에 나섰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무선청소기에 레이캅의 강점인 '침구살균' 기능을 더한 올인원 제품을 선보인 것. 지난해 6월,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일본에 먼저 선보였고 한국에도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제작 지원에 나서며 이름을 알렸다.


이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재도약을 꾀하겠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98호

필자 정지영 기자

인터비즈 김정관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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