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는 이런 사람" 아마존 미드 추천!

조회수 2020. 1. 18.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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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고급 아파트의 한 도어맨이 있다. 지긋한 나이의 도어맨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멋진 모자도 쓴다. 입주자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주고, 택시를 잡아주고, 방문하는 손님을 맞아주고, 짐도 날라준다. 그가 일하는 아파트엔 한 젊은 여성이 산다.



도어맨과 친한 이 여성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도어맨에게 보여준다. 도어맨은 솔직한 의견을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쟤는 안돼”라고 한다. 그리고 결국 도어맨의 말대로 좋은 남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곤 한다. 적중률은 100%.

아마존이 만든 새 미드 ‘모던 러브’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던 러브’는 뉴욕타임즈의 인기 독자 투고 칼럼 ‘모던 러브’를 바탕으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 그러니까 약간의 픽션이 가미되긴 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에는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며 단순히 남녀 사이의 사랑뿐 아니라 요즘 세상의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첫 에피소드 스포일러!) 여성은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된다. 아이의 아빠는 이미 헤어진 찌질한 남자 친구. 역시나 도어맨이 ‘머리가 비었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남친이다. 여자는 도어맨이 경솔한 임신을 비난하거나 낙태를 권유할까 봐 겁을 먹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는 여성을 안아주고 위로를 해준 건 도어맨이었고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조언해 준 사람 역시 도어맨이었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건 필요하다는 얘기와 함께.

여성은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이후 임신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여성과 함께한 건 도어맨이었다. 초음파 사진을 처음 보여준 사람도, 아기 용품이 배달 됐을 때 날라 준 사람도 모두 도어맨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엔 급하게 맡길 곳이 없으면 봐준 사람도 도어맨이었다.



그리고 여성이 더 좋은 직장 때문에 아이와 함께 멀리 떨어진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됐을 때 도어맨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성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준다. 이 때도 여자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기도 하고, 도어맨을 떠나는 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망설이지만 도어맨은 아주 쿨하게 도전을 격려한다.

5년 후 여성은 남편감을 데리고 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와서 도어맨을 찾는다. 그리고 초조하게 도어맨의 남자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기다린다. 그런데 도어맨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묻는다. “아저씨는 어떻게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를 그렇게 잘 가려내는 거죠?” 도어맨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니에요. 난 한번도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항상 당신의 눈을 보고 있었던 거죠.”

이 30분짜리 미드 한 편만큼 부모 노릇에 관해,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에 대해 명쾌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내용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식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짝도 찾아주고, 가정교육이라는 이름의 엄한 예의 범절을 잘 가르치면 ‘좋은 부모’가 됐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좋은 부모’가 되는 공식은 달라지고 있다. 혈연으로 맺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부모 노릇의 반을 먹고 들어가는 세상은 끝났다. 어쩌면 좋은 부모라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도어맨은 사실 요즘 세상에 볼 수 있는 좋은 부모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우선 첫 번째로 세상의 눈이나 내 눈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뒤로 미루고 대신 아이 눈이 반짝하는 순간을 본다는 건 정말이지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도 모르는 아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읽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지켜보기 보다 자신의 잣대로 아이를 판단하고 잔소리를 시작하는가.

출처: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둘째로 도어맨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입주자들이 필요할 때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게 도어맨의 일이듯이 아이가 필요할 때를 위해 그 자리에 머무는 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힘든 일이 있든 좋은 일이 있든 아이를 위해 자리를 지켜주는 건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일에 매여 있는 요즘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시간을 낸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정작 아이들이 부모를 진정 필요로 할 때는 자리에 없는 상황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출처: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셋째로 도어맨은 자신의 딸뻘이 되는 젊은 여성을 존중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도어맨과 여자의 대화는 좋게 말해서 정중하고, 부모 자식간의 대화라기에는 너무나 깍듯하다. 부모 자식 간에는 이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자식이 투정부릴 수 있고 그러다가 부모가 화를 낼 수도 있으며 나중에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안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너무 자식을 소유품인 마냥 막 다루는 경향이 있다. 애 키우면서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어맨은 입주자에게 화 내지 않는다. 부모는 어찌 보면 자식에겐 항상 ‘을’인 존재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도어맨은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다. 도어맨은 여자가 데려온 남자가 ‘꽝’이라는 건 분명히 말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꽝이니까 당장 헤어지라든지 그런 조언은 하지 않는 것처럼.

이제부터 부모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 무조건 도어맨을 떠올리기로 했다. 내 아이만을 보는 것. 그 아이의 눈빛에서 그 아이의 세상을 읽어주는 것. 그게 다다. 내가 애써서 딸 아이의 인생을 쉽게 만들어주기 위해 좋은 남자를 찾아줄 필요도 없고, 나쁜 남자를 만난다고 아이를 말릴 필요도 없다. 아이가 물을 때,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그 얘기만을 들려주면 되는 거다.

출처: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사실 이 도어맨 이야기의 압권은 바로 도어맨이 여자만을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어맨은 하나의 직업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얘기다. 아이만을 기다리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필요할 때는 어김없이 그곳에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사는 부모여야 한다는 얘기다.

비행기를 타면 안내 방송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비상시 어린애와 함께 동승한 경우,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면 어른 본인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찾아 쓰고 그 다음에 애를 도와주라는 내용. 이처럼 내가 유능한 도어맨이 되는 것이 먼저다.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자가 “당신은 도어맨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하자 도어맨은 차분하게 대답한다. “나는 이 직업을 좋아해요.”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당신을 무시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사과한다. 도어맨은 여자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만 결코 자신의 영역을 허물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먼저다.



아이의 인생은 온전히 아이 거다. 산소 마스크를 먼저 찾아 쓰는 게 이기적인 걸까? 내가 배고프고 졸릴 때 아이의 필요를 적당히 다스리고 나 먼저 잘 먹고 잘 자는 게 이기적인 걸까? 도어맨이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는 것과 같이 아이에게 좋은 부모이기 이전에 내 자신을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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