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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거장들의 거장' 비발디가 잊혀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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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클래식 음악 황금기였던 바로크와 고전 시대엔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천재 작곡가들의 음악이 꽃피웠다. 그리고 이런 음악가들의 뒤엔 이들을 후원해주는 '조력자'들이 있었다.



음악계 원로, 후원자, 출판업자, 비평가들이 모두 이들의 조력자가 되었다. 본인의 음악적 색채를 구현하고자 한 거장들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조력자들과의 '전략적 거리두기'를 실현한 것이다.



음악가들이 조력자들과 전략적으로 거리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음악적 활동을 지속해 나갔을까. DBR 114호에 실린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클래식 거장에게 필요했던 주변인들의 '창조적 관심'

1830년대 이전까지는 음악가를 고용하는 고용주, 즉 후원자격인 귀족과 왕족의 입김이 클래식 음악에 강하게 반영됐던 시기였다. 이들은 재정 지원에서부터 작품 시연에 이르기까지 창작활동의 많은 부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음악가가 성공하기 위해선 본인의 성과를 인정해줄 수 있는 당시 음악계의 원로들과 동료 음악가들의 호응도 필요했다. 동료들의 관심 범위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거나 주류에서 멀어졌다.

체코의 작곡가 젤렌카(Zelenka)

실제로 문화수도였던 빈이나 파리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체코의 작곡가 젤렌카(Zelenka)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가 돼서야 비로소 재조명받았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다 200년도 훨씬 지난 이후 알려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대 거장들이 누구를 보고 배웠는지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은 대부분 선배들의 테크닉과 정신을 모방하는 데서 창작을 시작했다.


이런 여러 방면의 조력자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영향력과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 음악가를 도왔던 것은 아니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심했던 근대 유럽의 시대적 상황에서 누군가를 꾸준히 돕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가들의 가능성을 꿰뚫어본 훌륭한 주변인들의 ‘창조적 관심’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장들의 거장' 비발디가 잊혀진 이유: 선두주자는 영원하지 않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ionio Vivaldi)는 자신의 연주 노하우나 악기 사용 방식 등을 '트리티스(Treatise)'라는 이론서 형태로 남겼다. 그가 남긴 책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은 오랜 세월 동안 기악 연주의 표준으로 존경받았다. 또 '사계'를 비롯해 그가 남긴 바이올린 협주곡과 오케스트라 작품들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바흐나 헨델을 비롯한 대가들도 비발디의 작품을 꾸준히 학습하고 자신의 성악곡이나 종교극에 비발디 작품의 일부를 차용했다.

그러나 이런 ‘거장들의 거장’ 비발디는 그가 가진 작품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우위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다. 비발디는 62세까지 비교적 장수했음에도 불우하게 인생을 마쳤다. 그는 바로크 초기 독보적인 역량을 가진 음악가였고 선두주자였지만 숱한 후원자들에게 계약을 거절당한 채 쓸쓸히 죽었다.

캐서린 아이젠하트(Katherin Eisenhardt) 교수는 “초기 시장에서 개발된 지식과 자원들은 오랜 시간 노출되면서 모방과 해체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들 거장이 처음 음악계에 등장했을 때에는 독보적이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고 난 후에는 경력을 관리하는 데 치중하느라 혁신을 계속하지 못했다. 비발디만 하더라도 교회음악학교 교사, 오페라 작곡가, 협주곡 창작자 등으로 활동무대를 확장하는 데만 바빴다. 기본적으로 차별화된 작품 역량만 유지하면 자신의 이미지와 명성에 힘입어 독점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안토니오 비발디(좌), 표르트 차이콥스키(우)
출처커먼스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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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비발디를 비롯한 초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거장들이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오늘날 지나치게 비슷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대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인상적인 비판을 남기기도 했다.

비발디가 500곡을 작곡했다고요 ?

똑같이 만들면 누구나 할 수 있죠!

과거의 성공에 매몰된 초기 혁신가들은 후배들에게 곧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과의 전략적 거리 유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Bach) 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Händel)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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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선 동료 음악가들끼리의 친목을 유지해야 했다. 반면 동시에 동료들끼리의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한 자세였다. 어떻게 친목을 유지하면서도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그 모범사례로 서로의 아들들에게 대부 역할을 해줬던 텔레만과 바흐의 관계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각각 주요 종목을 달리하면서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갔다.

텔레만은 오페라의 중심지 드레스덴에서 화려한 극음악과 색채적인 협주곡의 결합을 선보였다. 반면 바흐는 인접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 종교음악과 기악을 작곡하는 데 주력했다. 각각 ‘타펠 뮤직(Tafel Musik)’과 ‘오라토리오(Oratorio)’를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집중한 것이다. 바흐는 건반음악과 종교 작품의 대가로 자리매김했고 텔레만은 오페라를 비롯한 성악곡과 협주곡의 권위자로 인식됐다.

이처럼 동업자라 할 수 있는 음악계 원로들과 동료 작곡가들로부터의 관계에서는 상호의존과 자율추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트렌드에 지나치게 편승하거나 꾸준한 변화를 선보이지 못했던 창작자들은 쉽게 외면받았다.



반대로 트렌드를 너무 무시하거나 기성 문화계와의 연대를 소홀히 한 이들도 경쟁력을 갖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관행으로부터 너무 떨어지지도 않고 너무 관행을 따르지도 않도록 정치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천재 작곡가들의 전략적 역량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음악 생태계로부터 성과가 저조한 이들을 걸러내는 필터작용을 하기도 했다.

음악 후원자들은 문화기술산업의 벤처투자가

그렇다면 예술가들의 후원자들은 어떤 동기를 갖고 있었을까? 군주와 귀족들은 일반인들과 차별화된 기호를 갖기를 원했기에 연주의 장을 열어주고 경제적 도움과 사회적 지위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비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딜레탕트(dilettante), 전문적인 수준까지 예술적 표현을 동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갖춘 애호가)들이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직접 구현할 수 없는 창의적인 표현을 전문음악인들의 힘을 빌려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귀족과 왕족의 음악후원은 단기적인 수익성을 노린 투자가 아니었다. 종종 그들은 장기적으로 대중의 소비기호를 바꿀 수 있는 창조적 변화를 원했다. 물론 상당수 후원자들은 근시안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도 했다.



취향의 문제로 작곡가와 싸우기도 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고스란히 빼앗아 자신의 작품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어하는 후원자들은 결국 음악가들에 의해 버림받는다. 헨델이 여러 번 직장을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후원관계는 음악과의 조력자 상호간의 믿음이 있어야 지속된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일수록 후원자들의 협상력은 약해졌고 예술가들의 권리 주장과 변덕은 점점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관계를 단순한 투자가 아닌 신뢰의 문제로 보았던 군주와 귀족들은 꾸준한 심리적 지지를 보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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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력한 신뢰로 구축된 의리는 이따금 예술가들에게 뜻밖의 용기를 주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추기경에 의해 감화를 받았던 베토벤은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상당수 작품들을 오스트리아 귀족에 헌정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는 시민혁명의 서슬 퍼런 시기에도 처형된 루이 16세를 위한 레퀴엠(Requiem) 미사곡을 작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통업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작곡가들은 대부분 작품을 자신의 명의로 남기고 싶어했다. 자기 노력과 창의력의 결과를 오롯이 자기만의 것으로 누리고 싶었던 욕구도 있었다. 고용주와의 계약조건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작품을 출간하는 경우 작품의 선별과 유통은 콘텐츠를 공급하는 작곡가가 아닌 출판업자의 재량에 맡겨졌다.



당시 출판업자가 유통업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따라서 고유의 명성을 구축하지 못한 창작자들은 헐값에 작품을 팔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출판업자들은 훌륭한 작곡가들을 식별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프리랜서 작곡가들의 숨통을 틔워주지 못했다면 헨델이나 비발디처럼 인생의 부침이 심했던 천재들은 도태됐을 가능성이 크다. 안정적으로 후원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상업적 가치를 당당하게 입증하고자 했던 창작자들은 오랜 세월 야인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작품의 구조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했다. 베토벤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낭만시대의 대작곡가들은 비평가들의 지지와 비판 여부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 출판업자와 비평가들이 문화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예술가들이 충분히 교섭력을 가지고 콘텐츠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유명 작곡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여러 출판업자들과 계약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이는가 하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비평가 진영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통업자' 들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바흐의 음악은 1740년대가 되면서부터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음악’이라고 공격을 받는가 하면 베토벤의 푸가(Fugue) 작품들도 ‘청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고 어렵기만 한 작품’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가들이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였고 결과적으로는 작곡가들이 직접 나서서 매체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동기 부여 역할을 했다. 외부 여론을 통해 끊임없이 창작자들을 자극함으로써 예술가가 논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했던 것이다.

혁신을 추구하는 생태계의 본질은 ‘상호의존성’

고전시대는 이전 시대에 비해 비교적 독립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교섭력을 갖고 본인의 상황에 맞는 경쟁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북독일의 원로 작곡가들과 살리에리, 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군주들의 후원을 받았던 음악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여러 파트너들과의 전략적 상호의존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명성과 지위를 이용해서 자율성과 중심적인 위치를 보장받기를 원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후원자들, 음악계 원로들, 후원자나 출판업자들이 수행했던 전략적 포지셔닝을 단순히 ‘책략(tactic)’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조직생태학자인 존 패지트(John Padgett)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은 음악가에 대한 균형적인 투자를 통해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상이 문화적으로 구현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신뢰, 심리적 지지, 시대 정신에 호소하는 공감지능과 같은 심성적 가치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시장 안의 이해관계자로서 서로의 이익을 조정(moderation)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창조자이자 조력자로서 각자의 정체성을 명료화(articulation)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창조적인 작곡가들의 성과는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혁신적인 관점과 전략적 관심을 지닌 조력자들과의 상호의존성이 낳은 음악생태계 전체의 산물이다. 이것이야말로 천재들뿐만 아니라 천재들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그 결과를 향유하는 이들 또한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인터비즈 이다희,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14호(해당 호수 목차 링크)

필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합창지휘전공 김혜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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