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이 사람?!

조회수 2020. 1. 9. 1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지난해 말, 일본에서 벌어진 '탈출극'이 화제를 모았다. 보수를 허위 기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겸 CEO이 홀연히 일본을 빠져나간 것. 터키를 거쳐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그는 대리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은 "불공정과 정치적 박해로부터 도망쳤다"고 밝혔다. 1999년 경영위기에 빠진 닛산(Nissan) 자동차를 부활시킨 뒤 세계적인 CEO로 주목받으며 오랫동안 르노-닛산을 이끌었던 그는, 이렇게 20년 만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출처: 동아일보(아사히 신문 제공)
카를로스 곤 전 회장

닛산을 수렁에서 건져낸 해결사로 주목받아

카를로스 곤 전 회장과 일본의 인연은 1999년 시작됐다. 90년대 들어 닛산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데다 내수시장마저 침체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계열사 정리 등 나름의 개혁을 실시했지만 점점 늪에 빠져들 뿐이었다. 채무가 2조 엔을 넘어서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프랑스 회사 르노에 자사 지분을 매각하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넘겼다.


닛산 재건을 위해 투입 된 사람이 곤 전 회장이다. 96년 르노에 부사장으로 입사한 그는 99년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on Officer) 자리에 올랐다. 그는 레바논계로 브라질에서 태어나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뒤 미쉐린에 입사해 최연소 북미 CEO를 역임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곤 전 회장은 프랑스·레바논·브라질 국적을 가지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취임 직후 ‘닛산 부활 계획(Nissan Revival Plan)’을 발표하며 구조조정에 나섰다. 전체 직원의 14%인 2만1000명을 감축했고, 채산성이 맞지 않는 공장 5개를 폐쇄했다. 낮은 수익성의 원인 중 하나를 계열 부품업체와의 관계로 보고 납품업체를 1145개에서 600개로 줄였다.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2년 내 흑자 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와 모든 임원이 사표를 내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99년 10월 25일자 동아일보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신차 투입 등으로 99년 6843억 엔 적자에 시달리던 닛산은 이듬해 3000억 엔대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일본 재계에 ‘곤 신드롬’이 일었다. 2001년엔 타임지와 CNN이 공동 선정한 그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에 곤 이름이 올랐다. 한편에선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일삼는 그를 ‘코스트 커터(cost cutter)’ ‘칼잡이’ ‘장의사’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내부 고발로 19년 르노-닛산 이끌던 곤 물러나

르노-닛산의 실적은 부침을 겪었지만, 곤 전 회장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2001년 닛산자동차 사장 겸 CEO 자리에 올랐고, 2005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사장 겸 CEO를 맡았다. 닛산이 미쓰비시를 인수한 이후에는 미쓰비씨 회장까지 겸임했다. 2017년 닛산 사장 자리를 넘겨줬지만 여전히 회장 자리를 지키는 등 닛산-르노 동맹을 이끄는 상징적인 인물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출처: 동아일보
카를로스 곤 전 회장

영원할 것 같았던 곤 전 회장의 시대는 2018년 11월 저물었다. 그는 2011년부터 5년 간 유가증권보고서에 연봉을 절반 수준인 50억엔으로 축소 신고한 혐의(금융상품거래법 위반) 등으로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고액 보수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보수 일부를 퇴임 후 받기로 했다”는 그의 해명은 이후 쏟아진 추가 의혹에 묻혔다. ‘2015~2017회계연도에도 보수를 축소 신고 했다’ ‘회삿돈으로 해외에 호화주택을 구입했다’ 등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일부 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일본 경영진의 쿠데타'라고 평했다. 르노-닛산 합병에 반대하던 곤 전 회장이 체포 전 열린 9월 이사회에서 찬성 의견으로 돌아서 일본 경영진의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마치 때를 맞춘 듯 곤 회장 비리 관련 내부 제보 역시 그 후에 나왔다. 곤 전 회장 체포 후 히로토 사이카와 당시 닛산 CEO의 발언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너무 큰 권력이 집중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전임자를 매섭게 비판했다. 또 닛산은 그가 체포되자 바로 그를 회장직에서 해임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왕의 몰락은 피바람을 일으키며 빠르게 진행됐다. 마치 닛산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2018년 11월 20일 채널A 뉴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갈등 이면에는 프랑스 정부와 일본 정부의 알력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곤 전 회장을 연임시키며 르노와 닛산을 하나의 회사로 합병시킬 것을 요구해왔다. 닛산 생산 물량을 가져와 프랑스 자국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계산에서다. 일본 정부는 닛산의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합병을 반대해왔다.

"정치적 박해" 주장한 곤,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 할까

보석으로 풀려나 출국금지 상태였던 곤 전 회장은 어떻게 일본을 빠져나갔을까. 레바논 방송사 MTV는 곤 전 회장이 성탄절을 맞아 자신의 집에서 음악회를 연 뒤 콘트라베이스 보관함에 숨어 집을 빠져나갔고, 전용기를 통해 터키를 거쳐 레바논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 캐럴의 조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채널 A 뉴스

영화 같은 탈출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곤 전 회장은 AFP통신을 통해 해당 보도는 거짓이며 "혼자 출국을 준비했다"고 밝히며 여러 추측을 일축했다. 실제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가택연금 상태였던 곤 전 회장이 혼자 자택을 걸어나오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잡혔고 이후 귀가하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도의 헛점이 드러난 일본은 곤 전 회장을 데려올 묘안이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레바논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레바논 법무장관이 "다른 시민처럼 합법적 여권으로 레바논에 왔다. 어떤 위법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는 등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곤 전 회장은 레바논 출신 성공한 사업가로 명성이 높고, 그간 기부와 봉사활동을 해와 이미지도 좋다.


프랑스 정부도 곤 회장을 두둔하고 있다. 아녜스 파니에뤼나셰 재정경제부 국무장관은 "곤 회장이 프랑스에 온다면 돌려보내지 않겠다. 프랑스는 자국민을 송환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곤 전 회장의 입으로 이목이 쏠리고 있다. 탈출 후 "나는 유죄를 전제로 취급받았다. 나는 더 이상 차별이 만연하고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부정(不正)한 일본 사법 제도의 인질이 아니다"는 성명을 낸 그는, 오는 8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수사 중 겪은 일에 대한 폭로, 탈출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 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비즈 박은애 김정현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