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문맹' 줄여 최종우승한 한국의 '이 앱'

조회수 2020. 1. 1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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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98개 팀 중 유일한 '한국' 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지난 5월 개발도상국 아동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총 1500만 달러(한화 약 180억원 )의 상금을 걸고 장장 5년에 걸쳐 진행된 국제 경연대회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가 막을 내렸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엑스프라이즈 최초의 대회로, 미션은 "학교도, 교사도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스스로' 문해(literacy)와 산술(numeracy)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태블릿PC용 학습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출처: DBR
2019년 5월 15일 최종 시상식에서 우승팀 '에누마'의 이수인, 이건호 부부가 테슬라 창업자이자 대회 후원자로 상금을 쾌척한 일론 머스크(왼쪽 세번째)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전 세계 198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최종 우승을 거머쥔 팀은 '에누마(Enuma)'와 '원빌리언(one billion)'. 에누마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출품한 유일한 한국인 팀이었기에 뜻 깊은 성과다. 이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원빌리언과 에누마의 특성을 비교해보면 더욱 놀랍다.



원빌리언은 10년 넘게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교육 사업을 벌여왔던 비영리단체지만 에누마는 스와힐리어는커녕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험조차 전무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에누마는 어떻게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해 온 세상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일까? DBR 279호에 실린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원문 기사 더보기

"한 명의 아이도 뒤처지지 않도록" 장애아동 학습 앱에서 출발한 에누마

에누마는 엔씨소프트의 개임 개발자 출신인 이수인, 이건호 부부가 지난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스타트업이다. '장애로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혼자서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 도구를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는 에누마는 2019년 7월 말 기준 미국 본사와 한국 지사에 약 50명이 일하고 있다.

이 부부가 장애 아동을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 건 10여년 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부터다.



처음엔 엔씨소프트의 기업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인지 장애가 있는 영,유아용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연구했고 2012년 미국 버클리에서 로코모티브랩스(LocoMotive Labs, 현 에누마)를 창업해 이듬해 6월 '토도수학(Todo Math, 토도는 ‘모든’을 뜻하는 스페인어)’을 출시했다.

토도수학은 미국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커리큘럼을 담은 수학 교육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념을 놀이하듯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700여 개 이상의 게임을 통해 어린이들이 많은 분량의 수학 문제를 즐겁게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학습 소프트웨어로 원래 타깃은 학습 장애가 있는 아동이었지만 게임화 기법이 잘 적용돼 있어 일반 아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에 선보인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토도수학은  여전히 애플 앱스토어에서 많이 다운로드되는 앱 중 하나이며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700만에 달한다. 

회사명을 에누마로 바꾼 건 2015년. 영어 단어 'enumerate(열거하다)'에서 따온 이름으로 하나하나 이름 붙여 세듯이 모든 아이를 위한 학습 도구를 만들어 단 하나의 아이도 학습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꿈을 사명에 담았다.

출처: DBR

엑스프라이즈에서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하는 국제 경연대회 개최를 발표한 건 에누마가 토도수학을 출시한 지 1년이 좀 넘어가는 2014년 9월이었다. 토도수학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던 중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개최소식을 접하고 이수인 대표는 전례가 없는 현장 테스트를 통해 에누마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과거에도 개도국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테스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처럼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 환경 속에서 장기적으로 대단위 테스트를 실시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창업한 지 갓 1년 된 회사가 5년이나 소요되는 대회에 출전하는 게 맞는 것인지, 스와힐리어로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수 있을지 등의 여러 걱정과 위험 요소들이 존재했지만 인지 장애가 있는 영유아용 학습 애플리케이션과 토도수학 개발을 통해 축적한 역량을 활용하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 판단했다.

2015년 4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참가할 팀 구성원을 확정 지어 대회 등록을 신청했다. 첫 번째 관문은 2017년 1월까지 엑스프라이즈에 출품할 교육 소프트웨어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제 아동 구호 비영리단체인 ICRI(International Child Resource Institute),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 등과 협력해 두 차례 현장 테스트를 실시하며 '킷킷스쿨' 개발에 나섰다.

킷킷스쿨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우승'으로 이끈 에누마의 세 가지 비결

게임 설계 기법 적용해 교육에 '재미' 더하다


이 대표가 기존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재미'였다. 이에 킷킷스쿨을 경험할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가장 집중했다. 글로벌 엑스프라이즈의 규칙 또한 아이들에게 태블릿PC를 한 대씩 나눠주되 누구도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에누마는 '게임화'기법을 적용해 아이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자극을 줌으로써 콘텐츠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데 게임 개발의 최우선 순위를 뒀다. 이는 킷킷스쿨의 프로그램 구성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출처: DBR
태양, 풍뎅이, 돌멩이 등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물을 활용한 킷킷스쿨 학습 콘텐츠

킷킷스쿨은 알들(eggs)을 하나하나 터치하면서 그 안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도록 구성돼 있다. 즉, 메인 시작 화면을 클릭하면 들판 위에 헛간 이미지가 보이고, 이 헛간을 클릭해 들어가면 여러 개의 알이 놓여 있어서 알을 하나씩 눌러가며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한 개의 알에는 대략 1달 정도(하루에 15∼20분씩 놀 때 기준) 분량의 게임형 학습 콘텐츠가 들어 있어서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닭, 도마뱀 등 조류와 파충류에 속하는 각종 동물이 알에서 부화해 나온다.

킷킷스쿨 게임의 큰 틀을 헛간에서 알이 부화하는 설정으로 잡은 이유는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맥락(familiar context)’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누마는 이 외에 개별 게임 속에서도 가급적 친숙한 이미지들을 사용하려 애썼다. 가령, 숫자를 더하고 빼는 등의 연산 관련 게임에 망고 같은 과일이나 개미, 풍뎅이 같은 곤충, 돌이나 막대기 등 탄자니아 시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물을 주로 등장시켰다.

출처: DBR
칭찬, 별 모양 코인, 왕관 등 게임 진행 단계별로 학습자에게 다양한 보상을 제시하도록 설계된 킷킷스쿨

이어 게임을 할 때마다 단계별로 칭찬이나 코인, 왕관 등 다양한 보상 시스템을 마련해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효과를 배가했다. 이는 아이들이 게임이라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반복 훈련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었다. 이 밖에 게임을 진행할수록 알에서 부화한 동물의 크기가 커지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게임을 할수록 무언가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sense of progression)을 줬다.

현지 테스트 결과 바탕으로 지속적인 사용자 UX, UI 개선


에누마는 5년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치르면서 초기 제출 버전(2017년 1월), 필드 테스트 버전(2017년 9월), 1차 업데이트 버전(2018년 5월), 2차 업데이트 버전(2018년 10월) 등 총 네 차례 애플리케이션을 출품했다. 프로그램을 수정할 때마다 콘텐츠의 양을 늘려나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 속에서 에누마는 매번 아프리카 현지 테스트를 통해 학습자들의 사용 습관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도 함께 개선해 나갔다.

출처: DBR
킷킷스쿨 초기 버전(왼쪽)에선 학습 콘텐츠(알)를 전부 화면에 보여줬지만 개선된 버전(오른쪽 위, 아래)에선 기초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갈 수 있도록 음영 처리를 통해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선

태블릿PC의 잠금 화면 해제 방식을 스와이프 방식에서 터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나, 오른쪽 상단에 자리 잡고 있던 설정 버튼의 위치나 접근 방식을 바꾼 것, 쉬운 단계부터 어려운 단계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갈 수 있도록 UI 설정에 변화를 준 점 등이 대표적 예다.



업데이트 과정에서 부득이 프로그램의 큰 틀이 변경(헛간 1개→2개)된 데 대해 아이들이 당황해 하지 않도록 안내 영상을 따로 만드는 세심함도 돋보인다. 에누마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의 UX는 물론 학습자가 태블릿PC를 받아 든 최초 순간에서부터의 UX를 중시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편적 학습 설계' 통해 교육 효과 극대화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란 건축(도시공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더 많은 이가 편익을 누리게 되는 디자인을 뜻한다. 예컨대 보도블록에 턱이 없는 구간을 만드는 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지만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나 사이클링 취미 활동을 위해 자전거를 올리고 내려야 하는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는 이런 개념을 학습 환경에 적용한 것이다.

킷킷스쿨에서 UDL 원칙이 적용된 대표적 예는 ‘사운드 트레인’ 게임이다. 설령 정통 교수법 원칙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가급적 많은 복수의 자극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려 했다. 즉 단어가 가진 소리, 발음을 배우는 교수법인 '파닉스'라는 원칙에 붙들려 귓병을 앓고 있거나 난청인 극소수의 아이들이 학습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각적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기며 반복 훈련을 할 수 있게 유도했다. 장애로 인해 특수한 필요를 가진 극소수의 아이들까지 고려함으로써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에누마의 기업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출처: DBR
킷킷스쿨을 사용하며 즐거워하고 있는 아이들

만약 에누마가 비용 효과적인 관점에서 적당한 수준의 기술만 투입해 특수 상황에 놓여 있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만 했다면 향후 활용도나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에누마는 장애인과 일반인, 부유층과 빈곤층, 선진국과 개도국 등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유효한 최고의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고,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그 효과성을 입증함으로써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증명했다.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철학으로 킷킷스쿨을 개발한 에누마는 결선 심사를 위한 필드 테스트에서 빛을 발했다. 3000명의 탄자니아 아동 중 90%가 스와힐리어를 읽지 못하는 '문맹'아동들이었지만 15개월동안 태블릿PC를 사용한 덕에 문맹 수치는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킷킷스쿨은 에누마라는 회사의 사업적 성장과 회사가 창출할 사회적 가치의 크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실제로 에누마는 작년부터 탄자니아, 케냐, 르완다, 우간다 등에 상업용 킷킷스쿨을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보급된 킷킷스쿨은 정규 학교의 방과후 활동 도구나 학교 밖 커뮤니티 센터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교육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재 상업용 게임에 투자하는 만큼의 돈을 아이들을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쓴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재미있고,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79호

필자 이방실

인터비즈 신혜원,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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