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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거름'이 되다?..미국서 시작된 '인간 퇴비 서비스'

조회수 2019. 12. 1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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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건축학을 공부하던 카트리나 스페이드(Katrina Spade)는 서른살이 될 무렵, 이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생사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완벽하게 스며들 수 있는 인간의 죽음은 무엇일까?'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비영리조직을 만들고, 강연을 하고, 국제 조직의 자문 위원이 되는 등 수 년 간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올해 5월, 워싱턴주의 법까지 바뀌었다. 개정된 워싱턴주의 법은 이렇다.

전통적인 방식의 매장, 화장, 자연 매장을 포함하여 알칼리 가수 분해 방식과
시신 퇴비화 방식까지 허용한다.

시신 퇴비화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출처: 카트리나 스페이드 트위터
5월 22일 워싱턴주 의회에서 카트리나 스페이드와 상원의원 제이미 페데르센, 그리고 시신 퇴비화 지지자들이 함께 찍은 기념 사진

2019년 5월 22일, 워싱턴주 의회는 미국 50개 주 중 최초로 '시신 퇴비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말 그대로 인간의 시신이 새로운 생명을 위한 퇴비로 변환되는 과정을 합법화한 것이다.이와 동시에 알칼리 가수 분해 장례 방식 또한 합법화하였다.



알칼리 가수 분해 장례 방식이란 수산화칼륨 용액에 시신을 넣어 2~3시간 동안 10기압, 180ºC로 가열해 신체 조직을 분해하는 것으로, 워싱턴주를 제외한 미국의 16개 주에서 이미 합법화된 방식이기도 하다.(워싱턴주의 이번 법안은 2020년 5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카트리나 스페이드의 노력이 컸다. 카트리나는 '화장' 혹은 '매장'이라는 이분법적인 기존 장례 방식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국의 장례 산업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안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첫 걸음으로 'Urban Death Project'라는 비영리 조직을 창설했다. Urban Death Project는 카트리나를 비롯해 토양 전문가, 환경 전문가, 장례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장례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카트리나는 이 과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워싱턴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제이미 페데르센(Jamie Pedersen)을 만나 본격적으로 시신 퇴비화 합법화 추진 논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카트리나는 워싱턴 주립 대학교(WSU)의 토양 과학자들과 함께 공동 연구도 진행하였다. 이들은 WSU 측으로 기증된 6구의 시신을 통해 시신 퇴비화 안정성 검증을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해당 기술을 특허 신청한 상태다.

카트리나는 2018년 워싱턴주 시애틀에 Recompose라는 '공익 목적의 시신 퇴비화 기업'을 설립했다. 이 실험은 Recompose가 가진 시신 퇴비화 기술력의 기반이 되었다. 워싱턴주에서 시신 퇴비화가 합법화된 만큼, 자연스레 현재 유일무이한 시신 퇴비화 기업인 Recompose의 큰 성장이 점쳐지고 있다.

시신 퇴비화는 왜 지속가능한 장례 방식일까?

현재 미국의 장례 산업 규모는 우리 돈으로 약 23조 83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부분 소수의 장례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는 구조다. 장례 방식은 크게 봤을 때 '매장'과 '화장',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자연 매장은 매장에 포함, 수목장은 화장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간주). 하지만 매장과 화장 모두 환경 오염을 가중시킨다는 문제점에 놓여 있다.

출처: pixabay

매장은 모든 사람이 땅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전통적 방식의 장례 문화다. 이는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 보기 힘들다. 특히 도시 지역 등 인구 과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적용하기 힘든 방식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매장할 때 필요한 토지 면적은 약 7.5mile3. 즉, 587만 4550평의 가용 토지가 고스란히 묘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묘지는 쇠, 나무, 콘크리트 등 처분하기 어려운 물질들도 혼재되어 있는 공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신 방부 처리 과정에 있다. 북미 지역 및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례 문화다. 시신 방부 처리 과정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시작되어 현대까지 장례 절차로 남아있다. 방부 처리 약품은 땅 속에서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공동 묘지에서는 유해 박테리아, 심지어는 발암물질까지 검출되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는 방부처리제를 꼽는다.

출처: pixabay
인도 사람들에게 '생'의 터전이자 '사'의 공간인 갠지스강.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자욱하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이상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추세다. 매장에 비해 공간 차지가 적고 비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35년까지 사망하는 미국인의 80% 이상은 화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화장 또한 환경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화장 처리 과정에서 온실가스 및 입자성 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화장으로 인해 매년 6억 파운드(약 2억 7200만 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출처: Recompose 홈페이지
Recompose의 내부 모습

카트리나가 세운 시신 퇴비화 기업 Recompose는 새로운 방식의 장례 시설을 도입했다. Recompose는 시애틀 기반의 건축회사 Olson Kundig와 협업하여 친환경적인 장례 공간을 디자인했다. 높고 둥근 아치형 천장 구조의 Recompose 건물은 '죽음'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 달리 매우 쾌적하고 빛이 잘 드는 밝은 건물이다.



한쪽 벽에는 시신을 눕힐 수 있는 베셀(vessel)이라는 시설을 만들었다. 각각의 베셀 안에는 잘 말린 나무 조각과 알팔파(alfalfa)라는 약초, 그리고 지푸라기가 가득 들어있다. 시신은 그 위에 올려놓는다. 베셀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시신을 빠르게 퇴비화 시키는 작용을 한다. 개별 베셀 안에서 시신은 1~2달 내외로 새 생명을 위한 퇴비가 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참고 : 한 되의 용량이다.

시신 퇴비화는 1인당 1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시신을 퇴비로 만들면 1yd3(1 세제곱야드)의 토양이 생성되는데 이를 가시적으로 설명하자면 약 '424되'의 비옥한 토양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Recompose, 사후 세계의 '디그니타스' 되나?

출처: 카트리나 스페이드 트위터
엄숙하면서도 밝은 Recompose의 장례 공간

시신 퇴비화 기업 Recompose는 2021년 3월 경부터 시애틀에서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퇴비화 장례의 가격은 5500달러(약 655만 원)로 책정되었다. 미국에서는 자연 매장(green burial이라고 함. 방부 처리가 기본 과정인 서구식 전통 매장 풍습과 달리 일체의 약품없이 시신을 땅에 묻는 친환경 장례 방식)이 6000달러(약 715만 원), 화장이 1000~7000달러(약 120만 원~835만 원), 전통적인 매장이 8000달러(약 955만 원) 정도다. 화장보다 비싸고 매장보다는 저렴한 장례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시애틀의 Recompose 시설이 운영되기 시작한다면 해마다 750구 정도의 시신을 퇴비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운영 첫 해인 2021년에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전망이므로 150구 정도로 예상) 다만 퇴비화 제외 대상도 존재한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과 같은 프리온(단백질성 감염성 입자)질병으로 사망한 사람 혹은 에볼라 등의 전염성이 높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퇴비화가 불가하다.

일각에서는 시신을 퇴비화하는 것이 장례의 존엄함을 무시하는 행위라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종교계에서 크게 반대하고 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주에서 최초로 퇴비화 장례가 합법화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주가 다른 주에 비해 종교적 성향이 약한 편이고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기 때문이다.

출처: pinterest
외국인의 조력 자살도 허용되는 공간, 스위스 디그니타스의 모습

하지만 Recompose가 아직 시신 퇴비화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세계 각지에서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은 국가에서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미리 퇴비화 작업을 예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신 퇴비화가 합법화되지 않은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들도 워싱턴주의 시애틀을 찾으면 퇴비화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Recompose를 '시체의 디그니타스'라 부르기도 한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스위스의 비영리조직 디그니타스는 매년 수천 명의 '자살 관광객'들이 스스로 생을 마치려 찾아온다. Recompose 역시 국적 및 거주지와 관계없이 열린 공간이다. 워싱턴주의 시신 퇴비화 합법화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사후를 결정하려는 '시체 관광객'들의 발길이 시애틀로 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비즈 박윤주 윤현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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