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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아도 못 산다" 4억 원 넘는 에르메스 버킨백, 왜 이리 비쌀까

조회수 2019. 12. 8.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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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한 에피소드에서 사만다(Samantha)는 꿈에 그리던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 버킨백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다. 종업원은 버킨백을 사기 위한 대기 명단이 길어 가방을 구매하려면 무려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사만다를 향한 종업원의 한 마디.

It's not a bag. It's a Birkin.

(이건 '백'이 아니예요, '버킨'이죠)

평균 천만 원을 넘기는 매장 가격에도 수요가 많아 몇 년은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 백. 그중 가장 비싼 가방은 단연 '버킨백(Birkin Bag)'이다. 2017년, 흰색 히말라야 악어 버킨백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7만 7261달러(우리돈 약 4억 2000만 원)라는 최고가로 낙찰되기도 했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이토록 비싼 가방을 왜 사지 못해 안달일까?

비행기에서 쏟아져 버린 여배우의 가방? "주머니가 없어서.."

버킨백은 영국 출신의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 전 에르메스 CEO는 우연히 버킨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 당시 버킨은 밀짚으로 만든 토트백을 들고 탔는데, 그녀가 머리 위 선반에 가방을 올리자 그만 가방 안에 든 내용물이 모두 쏟아져 버리고 말았다.

뒤마는 쏟아진 잡동사니를 보고 "무슨 여배우 가방이 그리 지저분하냐"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버킨은 "가방에 주머니가 없어서 그렇다"며 불평을 했고, 뒤마는 직접 주머니가 있는 실용적인 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바로 디자인 스케치를 해서 탄생한 가방이 '버킨백'이다.

버킨백은 에르메스의 대표 가방인 켈리백(Kelly Bag)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하지만 켈리백이 손잡이가 하나라면 버킨백은 손잡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달려있으며 안의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끔 밀봉력이 좋다. 소재는 송아지, 악어가죽 등과 같은 다양한 고급 소재를 사용한다.

버킨백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드라마에 등장, 할리우드 배우들의 애장품으로 자리 잡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가수인 빅토리아 베컴 (Victoria Beckham)은 100개 이상의 버킨백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SNS 스타 제이미 추아 (Jamie Chua)는 200개가 넘는 버킨 가방을 가진 '세계 최대 버킨 컬렉션 보유자'다.

'럭셔리 전략(The Luxury Strategy)'이 만든 버킨백의 위상

미국 뉴스 웹사이트 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격대는 9000달러(약 1070만 원)에서 50만 달러(5억 9000만 원) 사이다. 가방의 가치는 지난 35년 동안 500%, 매년 14% 증가했다. 도대체 이 가방은 뭐가 그렇게 '특별'하길래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걸까?

책 <The Luxury Strategy: Break the Rules of Marketing to Build Luxury Brands>은 에르메스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의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은 희소성 유지와 양적 성장을 위한 럭셔리 브랜드의 '반대 법칙(Anti-laws of Marketing)'을 집중 조명한다.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은 전통적 마케팅과는 다르며, 이 특유의 전략이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에르메스 역시 해당 전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1. 버킨백 하나 만드는 데 48시간..철저한 '장인 정신'을 추구하다

에르메스의 가방들은 가죽 장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3년간 에르메스 가죽장인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년의 수련 과정을 거친 자만이 에르메스의 장인이 될 자격을 부여받는다. 장인 한 명당 버킨백 한 개를 제작하는데 평균 4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나의 가방을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한 장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제품 생산 마지막에는 장인 고유의 서명과 넘버, 제작연도가 새겨진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해당 장인에게 직접 A/S를 받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에르메스 가방은 100% 프랑스에서만 제작된다. 해외 공장 이전, 생산 공정 일부 자동화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에르메스는 "품질에 대한 타협은 없다"며 지금까지도 장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예약하고 오세요"..고객들이 쉽게 구입하지 못하도록 만들다

에르메스는 매년 생산하는 디자인과 가방 수의 제한을 두며 소비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이 '희소성',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럭셔리를 지탱시키는 힘이다. 한정된 생산량에 비해 수요는 매우 높아서 버킨백을 사기 위해 에르메스 VIP 고객들도 최소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돈이 많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가방이 아니라는 뜻이다.

색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를 놀라게 한 대기자 명단(waiting list)은 이제 사라졌다. 2017년부터 에르메스는 ‘온라인 예약제’를 통해 파리 매장에서만 가방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느 브랜드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독특한 제도다. 예약은 오직 모바일로만 가능하며, 랜덤 추천으로 진행된다. 어렵게 예약에 성공한다 해도 방문일에 원하는 상품의 재고가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 같은 독특한 제도 때문에 파리 에르메스 '구매 대행' 업체나 아르바이트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3. 에르메스가 한국 작가들에게 상을 준다고? 예술과 가까운 브랜드가 되다

럭셔리 브랜드는 창의성을 위해 예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특히 전도 유망하지만 아직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비인기 예술 분야와 가깝게 지낸다면 떠오르는 트렌드의 후원자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며, 럭셔리 브랜드 오브제 자체를 현대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에르메스는 예술과 누구보다 가까운 브랜드다. 에르메스는 2000년부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제정하여 외국 기업 최초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당 상을 통해 김범, 서도호, 박찬경, 오민, 전소정 등의 신진 작가들이 발굴됐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작가들은 브뤼셀, 도쿄, 싱가포르, 서울(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등 세계 4곳에만 있는 아틀리에에서 개인 전시회를 연다.

에르메스는 예술가 후원을 더욱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2008년 에르메스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현대 미술, 사진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작가에게 상을 주거나 비디오아트 작가를 발굴해 전 세계 순회 상영을 하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둔다. 이렇게 예술을 '브랜드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만들면서 에르메스는 사람들이 브랜드 자체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예술성'까지도 동경하도록 만들고 있다.



*참고 자료

Jean-Noël Kapferer, Vincent Bastien, <The Luxury Strategy: Break the Rules of Marketing to Build Luxury Brands> (2010), pp 125-150.

인터비즈 김아현 윤현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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