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이 빵집'..힙플레이스 된 비결은?

조회수 2019. 12. 5.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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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이 주목받는 요즘이다. 뉴트로(또는 레트로) 열풍에 장년층은 과거를 추억하며, 젊은 세대는 새로움을 찾아 과거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세월의 더께가 쌓였다는 것만으로 눈길을 사로잡을 순 없다. 오래된 브랜드/공간에 새로움을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리브랜딩을 통해 6070부터 1020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빵집 태극당처럼.

70년대 한해 매출 3억원이었는데…

태극당은 1946년 문을 열었다. 고(故) 신창근 씨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 기계들을 인수해 서울 명동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최초의 빵집이었다. 이후 현재 위치인 장충동으로 본점을 옮겼다. 73년 당시 태극당 명성을 증명하듯, 최고급 자재들로 내부를 꾸몄다. 개점 행사엔 배우 남궁원 등 연예인들이 참석했다. 한때 매장도 7개까지 운영했다. 79년 경향신문 기사(‘달콤한 장사’로 큰 재미 제과점)에 따르면 78년 태극당 본점의 매출은 3억 원에 달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건물이 낡아가듯 태극당의 이미지도 노후화됐다. 60대 이상 단골들의 발길은 이어졌지만, 새로운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언젠가 내가 태극당을 운영하겠지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다 태극당에 들어와 카운터를 맡았는데, 매출이 좋지 않았어요. 어릴 때 보던 그 태극당이 더 이상 아니었던 거죠. 1년 반 동안 ‘태극당에 무엇이 필요할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창업주의 손자인 신경철 전무(34)는 2012년 태극당에 합류했다. 가게 문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꼬박 카운터 앞에 앉아있었다. 하루 종일 있다 보니 태극당의 문제들이 보였다. 홍보가 절실했다. 당시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었다. 매장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낡은 주방 설비 개선이 시급했다. 한동안 제품 품절이 이어졌는데, 많이 팔려서라기보다 그만큼 만들지 못해서였다.


1년 반쯤 지났을 때, 고민을 실행에 옮겨야만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아버지 신광열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 한 달 뒤엔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영 전면에 나서야 했다. 태극당 제2의 전성기를 이끌기 위해 신경철 전무뿐 아니라 누나인 혜명(38)∙혜종(36)∙혜민(35) 씨도 힘을 보탰다.

‘태극당스러움’을 보여주는 브랜딩

신 전무는 “없어지지 않기 위해 리브랜딩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절박했다.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보단 태극당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월의 강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오래된 제품이 갖고 있는 이야기, 옛날 제품 디자인이 주는 추억 그리고 (요즘 세대들이 느낄) 새로움이 마케팅 요소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추억의 동네 빵집’ 이미지를 알리는 거죠.”


우선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쓰이던 무궁화 모양 로고 심벌을 하나로 통일했다. 포장 디자인은 기존의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했다. 50년대 간판에서 착안해 ‘태극당 1946체’라는 자체 폰트도 만들었다. 배민체만 봐도 사람들이 배달의민족을 떠올리듯, 태극당도 자신들만의 글꼴을 만든 것이다. 태극당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 폰트는 자체 홈페이지와 SNS 등 마케팅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더불어 과거 사용하던 쇼핑백에서 발견한 ‘태극당 빵 아저씨’라는 캐릭터도 소생시켰다.

신혜명 부장은 “요즘 소비자들은 맛 못지않게 브랜드 스토리와 분위기를 중시한다”며 “(과거의 것을) 바꾸면 저희 장점을 스스로 버리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제품도 크게 바꾸지 않았다.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빵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과거 인기 빵들을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야채 사라다, 모나카 아이스크림, 시본케잌, 버터케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매출의 80%가량이 이러한 기존 빵에서 나온다.

지금부터 50년을 이어갈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브랜딩은 장충동 본점 리모델링으로 이어졌다. 금전적 여유가 없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빚을 내서라도 설비 개선이 시급했다. 건물에 있는 주방 시설이 오래되다 보니 오븐 하나 바꾸려 해도 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노후화된 설비와 화장실 시설 등은 개선하되, 기존의 틀은 바꾸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한 갈색 루바 인테리어와 ‘태극식빵’이라고 쓰여있는 간판 그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산대 옆에는 ‘카운타.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 계산을 정확히 합시다’라고 적힌 나무 안내문이, 벽에는 ‘영수증을 꼭 받아 가라’는 액자가 있다. 모두 원래 가게에 있는 것들 것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2015년 한 달 동안의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단골들로부터 “많이 바꾸지 않아 다행”이란 얘길 들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니 별로 손볼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샹들리에만 해도 수리 업체를 찾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업체 세 군데에 연락했는데 아무도 안 가져간다고 했어요. 차라리 새 걸 사라고. 그만큼 돈을 많이 들였죠. 겨우 한 업체가 맡아서 기존 크리스털을 하나씩 다 빼서 닦고 고리를 교체해 다시 제 모양대로 만들었어요.”


신혜명 부장은 리모델링에 공을 들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건물이 73년에 지은 건물인데, 지금 40여 년이 지나 우리가 일하고 있어요. 지금부터 또 40-50년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유행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 제 모습을 오래 간직한 공간이 서울에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카페 만드니 동국대 학생들이 오기 시작

태극당이 과거의 것만 되살리려 노력한 건 아니다. 젊은 고객들을 끌어오기위해 커피 맛에 공을 들였다. 소위 ‘다방 커피’라 불리는 음료만 팔았지만, 이걸론 2030을 끌어들일 수 없겠다 판단했다. 실제 동국대가 근처에 있지만 리모델링 전엔 학생들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맛에 대해 공부한 뒤, 유명 커피 로스팅 업체와 계약해 태극당 전용 로스팅 원두를 제공받고 있다. 바리스타도 고용했다.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신경철 전무는 “리모델링을 끝내고 나서 처음 받은 손님이 기억난다. 동국대 학생 3명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더니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폈다. 신기했다. 그전엔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업체와의 컬래버레이션 역시 ‘젊은 브랜드’로 남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Brown Breath), 신발 브랜드 수페르가 등 관련이 없어 보이는 브랜드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태극당의 로고나 포장지 디자인 요소를 패션과 접목하는 형식이다. 빵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든 제품에 모두 태극당이 녹아있다. 태극당의 역사와 리브랜딩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 전무는 “사실 돈 버는 건 없다. 오히려 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다만 "컬래버레이션이 손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트렌디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컬래버레이션 과정을 담은 영상 등을 통해 태극당의 역사를 쌓아갈 수 있고,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 자체가 태극당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충동을 벗어나자

장충동 본점은 멋진 공간이지만 그것만으론 태극당이란 브랜드를 알리는데 충분치 않았다. 고객이 직접 찾아와주지 않으면 매력을 알릴 길이 없었다. 이에 신 전무는 온∙오프라인 두 가지 방향으로 고객 접점을 늘리기에 나섰다.


새로운 포장 디자인과 서체, 빵 아저씨 캐릭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운영하며 브랜드 스토리와 제품을 알리고 있다. 또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켓에 나가 빵을 판매했다.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40여 회 참석했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빵 아저씨 캐릭터를 적극 활용해 마케팅하고 있는 태극당 인스타그램 캡처

신경철 전무는 “서울에서부터 빵을 배송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장사가 잘 돼도 버는 건 많지 않았지만 태극당을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신나게 다녔다”고 회상했다.


일부 업체들은 “태극당이 왜 나오냐”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의 태극당을 떠올리며 여전히 큰 기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혜명 부장은 “어쩌면 그때(마켓을 운영할 때) 그분들이 훨씬 더 잘 벌었을지도 몰라요. 저희가 더 절박했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출처: 태극당
서울 재즈페스티벌 참여 당시 모습.

점차 매장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본점 외에는 현재 서울 을지로 부영빌딩 지하 디스트릭트 C에 매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인사동에도 들어갈 예정이고, 그 외 번화가에도 매장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생산 시설을 5년 이내에 갖추는 게 목표다.


도쿄 바나나 빵 같은 브랜드 되고 싶어

다양한 노력 덕분에 현재 매출이 리브랜딩 이전인 2012년에 비해 5배 이상 뛰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도 늘었다. 이전엔 공장 5명, 매장엔 바쁠 때인 주말에도 3명뿐이었지만, 지금은 전체 직원이 70명이다.


태극당 꿈은 대한민국 대표 제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일본 여행 간 사람들이 귀국할 때 로이스 초콜릿이나 병아리 빵을 사는 것처럼, 외국 사람들이 면세점에서 한국 기념품으로 태극당 빵을 사가는 때가 오길 꿈꾼다.


“맛은 물론이고, 저희 이름이 태극당인데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란 타이틀도 달고 있으니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아요. 해외 진출도 한국에서 잘 되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제안이 많이 오는데 좀 더 우리 규모를 키워 매뉴얼을 갖춘 다음에 시도하려 합니다.”

인터비즈 박은애 임혜민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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