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한국의 '만남의 장소'.."대체 왜?"

조회수 2019. 9. 10.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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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종각역 일대 대로변 상가는 멀리 찾을 것도 없이 한눈에 봐도 임대 딱지가 즐비했다. 종로 3가에서 1가로 이어지는 대로변 상가는 수년 전만 하더라도 목좋은 자리의 대명사로, 나이키, 빠이롯드, 앤제리너스처럼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다. 이들 건물은 지금 전부 '임대' 딱지가 붙은 공실이다. 한때 만남의 장소로 불리던 일명 빠이롯트 건물은 이미 재작년에 매물로 나왔고, 지난해부터 공실인데 현재 문의도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규모 상가의 지역별 공실률은 9.1%로 서울 주요 상권 중에서 최대다.

조선시대부터 상권이 발달해 서울 대표거리로 일컬어지던 종로 2가 일대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처음엔 높은 임대료 탓에 나타난 일시적인 조정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한국감정원은 올해 2분기(4~6월) 종로 중대형 상가 ㎡당 평균 임대료가 8만1200원으로 서울 평균 임대료(5만8000원)를 훌쩍 뛰어넘는다. 높은 임대료 탓에 공실이 늘어난다는 해석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예전엔 꼭 판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대형 점포들이 들어왔다. 최근엔 그런 브랜딩 효과를 노리고 들어오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동인구도 예전 같지 않다. 점심 식사를 하는 수요 외에 머무는 인파가 줄었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트렌드가 바뀐 탓에 외면받는다는 해석이 더 힘을 얻는다. 대로 보다는 골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온라인이 뜨는 시대에 오프라인만의 매력도 뚜렷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트렌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상징...더 이상 안 먹힌다

종로2가는 오랫동안 핫플레이스의 대명사와 같았다. 맥도날드나 나이키를 비롯해 외식업체 마저도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부터 성공한 프랜차이즈들이 입점하는 지역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들 종로 점포는 브랜드를 알리는 플래그십 역할까지 해냈다. 종로2가 음식점 거리를 젊음의 거리로 불렸던 것도 이런 대형 프랜차이즈 자체가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들어 서울지역 상권이 분화되고 젊은층들도 이태원이나 연희동 등으로 분산되면서 차츰 거리가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글로벌 대형 브랜드나 프랜차이즈가 더 이상 젊은 이미지가 아니게 된 점 역시 종로 상권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최근 20대 젊은층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보다 개인화한 소형 점포들을 선호하면서 대형 요식업체들이 즐비한 거리를 외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층이 떠나다보니, 플래그십 역할 때문에 거리에 남아있던 브랜드들이 차츰 철수했고 이로 인해 거리가 다시 외면받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최근엔 브랜딩과 마케팅의 중심축이 온라인 특히 소셜미디어로 옮겨가면서 대형 점포 입점 필요성 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여기에 종로 2가 상권은 인근 오피스 단지와 맞물려 있다는 점 때문에 회식 수요에 맞춰 대형 점포화된 경향이 있다. 최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과 일생활 균형 트렌드에 맞춰 저녁 회식이 줄어든 것도 이런 대형 점포엔 직격탄이 됐다. 최근 뜨는 거리들은 소규모로 시작하는 1인 자영업자들이 빈틈을 채웠지만, 종로 2가 상권은 대형 점포로 개발된 탓에 이러한 보완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공실을 장기화하는 요인이다.

종로 유동인구는 여전히 적지 않아...상당수는 골목으로 유입

종로는 교통의 중심지인데다가 업무지구가 집중돼 있어 대표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실제 유동 인구 자체가 줄어들었다기 보다는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종로 유동인구가 이동한 곳은 익선동과 을지로 등 인근 지역이다. 익선동은 종로 중심 상권에선 떨어져 있지만 한옥마을은 서촌처럼 1970-80년대의 모습과 한옥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보다는 경험 소비가 중심이 되다보니 특색있는 지역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갔다. 여기서 인기를 끄는 아이템은 다른 곳에선 경험하기 힘든 개화기 풍의 카페 등 레트로 키워드다.

을지로도 최근 레트로 열풍을 타고 떠오른 지역 중 한 곳이다. 을지로에서 최근 유행하는 컨셉은 스피크이지 바(Speakeasy)다. 간판도 없고 입구도 찾기 어려운 장소를 말한다. 을지로를 좋아하는 이들은 찾기 어려운 장소를 찾아가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요즘 젊은층에게 대로변의 대형 프랜차이즈는 획일적이고 지루한 콘텐츠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골목길의 찾기 어려운 가게야 말로 젊은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년전까지 낡은 공구가게나 조명가게 였던 곳들이 젊은층의 외면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SNS는 핫플레이스 제조기...종로의 흥망성쇠가 알려준 것

새롭게 떠오르는 이른바 힙플레이스는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유명해졌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찾아가기 힘든 곳을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소셜미디어 정보가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체적인 음식점 혹은 카페가 이슈가 되는 현상도 흥미롭다. 때론 상권에 구애받지 않고 유명세를 타 고객을 모으기도 한다. 'SNS 핫플레이스'가 된 상점들이 모여 해당 지역이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가게를 직접 여는 소규모 창업자나 청년 기업가 등에겐 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임차료가 아주 비싸지 않은 곳에서도 개별 가게의 경쟁력을 통해 입소문을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상권으로 서울의 핫플레이스가 재편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거리들과 비교해 종로는 최근 떠오르는 장소들에 비해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차별성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점포가 있다는 점도 소셜미디어가 유행을 주도하는 시대엔 압도적인 장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공실이 늘어나는 등 빛을 잃은 곳은 종로만이 아니다. 이석준 데이터사이언티스트는 "핫플레이스의 대표와도 같았던 강남역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나온다. 똑같이 온라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플래그십 효과가 줄어들면서 좀 더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셜미디어 시대엔 핫플레이스의 열기가 점점 빨리 식는다는 분석도 있다.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타는 만큼 '인스턴트식 소비'가 된다는 것. 가게주인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느냐는 어떤 거리에 있느냐가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높은 임대료 탓에 청년 가게가 사라진 경리단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점의 매력도가 사라지자, 길 자체에 대한 수요가 죽어버린 사례다.


소셜미디어 시대엔 핫플레이스도 자꾸 변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상점 자체의 매력도이지, 가게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거리의 주도권은 이제 콘텐츠로 넘어갔다. 종로의 몰락이 실제 의미하는 바다.

인터비즈 임현석, 이다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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