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만든 '30만원'짜리 가방, "대체 왜 사나?"

조회수 2019. 8. 2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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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색다른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가치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이는 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현재는 국내서도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새활용’이라고도 불리는 업사이클링의 중심에 스위스산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이 있다.

출처: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탁은 가방 천은 트럭 방수천, 어깨끈은 안전벨트, 접합부는 자전거 바퀴의 고무 튜브로 만든다. 재료만 들었을 땐 가격이 저렴한가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평균적인 가격은 30만원 전후로 폐품을 모아 만든 것 치곤 터무니없이 비싸보인다.

이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방, 휴대폰 케이스, 지갑을 포함한 프라이탁의 제품은 매년 세계적으로 55만개 이상 팔린다. 현재 세계 400여 개의 직영 및 편집샵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는 프라이탁은 연 매출이 700억 원이 넘는다. 폐품을 명품으로 만든 프라이탁은 어떻게 시작한 회사일까. 이야기는 창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초반의 스위스 형제... 지나가는 트럭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 현실화시킨 행동력

스위스의 마커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1993년 프라이탁을 설립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두 형제는 그들의 성을 딴 가방 브랜드가 20년 후 업사이클링 패션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재활용 소재로 가방을 만들려 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만든 가방에 재활용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출처: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다니엘 프라이탁(좌)와 마커스 프라이탁(우)

프라이탁 형제가 처음 가방을 만들게 된 계기로 변덕스러운 취리히의 날씨가 한몫 했다. 취리히는 연간 120일 넘게 비가 내리는 도시다. 약 3일에 한번씩 비가 오는 셈이다. 취리히의 예술학교를 다니던 프라이탁 형제는 평소 자전거를 즐겨탔지만 날씨 탓에 가방에 넣은 미술용품 혹은 스케치북이 비에 젖어 눅눅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기후와 상관없이 ‘방수 기능’이 되는 실용성있는 메신저백을 찾아다니다 지나가는 트럭 위에 덮여진 단단하고 질긴 소재의 방수천을 보고 그것으로 자신들이 직접 가방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의 출발점이 됐다.

버려진 트럭 방수천을 집으로 가져온 프라이탁 형제는 하루동안 열심히 세탁을 하고 가방을 만들었다. 두 형제 모두 그래픽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가방을 디자인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처음 만들어진 이 가방은 현재까지 생산되어 프라이탁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F13 TOP CAT’모델이 되었다.

처음 만든 가방을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가방이 왜 이렇게 더럽냐'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버려진 트럭의 방수천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라 했을 때 멋지다는 반응과 함께 가방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프라이탁 형제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서 버려진 방수천으로 만든 가방의 성공가능성을 봤다. '판매하는 가방이 더럽다'는 모순적인 사실이 고객의 관심을 끌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출처: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탁 형제가 처음으로 만든 시제품

이에 프라이탁 형제는 1993년 방수천을 이용해 만든 가방 40개를 패션소품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2년 후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뒤로도, 두 형제는 프라이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꾸준히 활동중이다.

고객에게 가방의 역사를 들려준다...모든 가방이 한정판

우연으로 시작된 그들의 '친환경적'인 가방제조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프라이탁의 경영철학이 되었다. 이러한 철학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건 프라이탁 형제가 가방의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버려진 방수천은 지난 5년간 어떤 세월을 겪어왔는지 고객들에게 역사로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새 천으로 제품을 만든 뒤 회사에서 역사를 만들어 붙이면 그만이지만 억지로 만든 스토리는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소비자들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동시에 사용하는 그들의 새로운 경험이 가방에 더해지는 것이 프라이탁 제품의 본질이며 그 본질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프라이탁의 생산 라인의 모든 부분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출처: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사람들은 흔히 버려진 천으로 가방을 만든다면 새 천을 이용해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프라이탁의 공정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5년 이상 사용돼 수명이 다한 트럭의 방수천을 색깔 별로 크게 조각을 내고 이를 빗물로 세척한다. 이 과정에서 세제는 사용하지 않고 물의 압력만으로 세탁한다. 그 후 재단사들이 가방크기에 맞게 아크릴 본을 이용해 재단한다. 방수천에 새겨져있는 회사명이나 로고 등은 제품의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재단사들은 가방 디자이너로 불린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프라이탁의 가방 하나에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커스 프라이탁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객들은 우리가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미 잘 알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비싼 가방도 기꺼이 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공급받은 원단에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회사의 철학을 지키고자하는 진정성 담긴 노력 덕에 프라이탁은 지난 20년간 스위스와 세계인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취지가 좋으니 잘 팔린다? 실용성 갖춘 제품이어서 사랑받는다

프라이탁의 성공 키워드 중 하나는 '희소성'이다. 프라이탁에서 생산되는 연간 50만개 이상의 가방들은 모두 각기각색이다. 방수천마다 색과 모양이 다르고 방수천 하나에서 여러 개의 가방이 만들어져도 사용하는 부분이 다르므로 디자인이 다 제각각이다. 즉, 프라이탁에서 판매하는 모든 가방은 전 세계 단 하나만 존재하는 셈이다.

출처: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탁 매장 모습

제품의 희소성을 반영한 매장 전시 방법도 독특하다. 프라이탁 매장에는 제품이 진열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포장박스가 진열되어있다. 소비자들은 매장을 돌아보며 포장박스에 붙어있는 가방의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색과 디자인을 찾으면 직접 꺼내 확인해볼 수 있다.

프라이탁이 제품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모습은 마케팅 활동에서도 두드러진다. 실제로 2011년 도쿄에서 매장 개점식을 한 프라이탁은 기념사진으로 방문객들의 단체 사진이 아닌 방문객들의 가방 단체 사진을 찍었다. 프라이탁의 중요 가치가 잘 드러나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희소성만을 내세우거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취지와 명분만을 앞세웠다면 오늘날의 프라이탁의 명성은 없었을 것이다. 업사이클링과 무관하게, 제품 자체가 실용적이어서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실용성을 프라이탁의 성공 키워드로 꼽는다. 프라이탁 형제가 처음 가방을 만들게 된 본래의 목적도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면서 멜 수 있는 실용적인 가방을 찾고자 한 것에서 출발했다. 방수천, 자전거 바퀴의 고무 튜브, 안전벨트로 만드는 만큼 매우 견고해 오래 사용해도 찢어지거나 물이 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감성쓰레기'라는 말로 평가절하가 되기도 하고 창업 초 1년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들어왔던 프라이탁.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들과는 달리 희소성과 실용성을 내세운 디자인, 진정성 담긴 접근법으로 스위스의 국민가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창업자 마커스 프라이탁은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좋은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브랜드의 생명력이 오래가고 그것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다. 본질에 치중한다면 제품의 스토리는 자연스레 따라붙는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터비즈 신혜원,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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