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최악"소리 들은 삼성, 어땠길래?

조회수 2019. 8. 17. 12: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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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13년 12월 21일 삼성전자는 ‘삼성 모바일’ 유튜브 공식 계정에 ‘Are You Geared Up?’이라는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미국 누리꾼들은 물론 유명 외신으로부터 해당 광고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고, 삼성전자는 급기야 해당 광고에 대한 반응, 평가 기능을 봉쇄했습니다.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의 실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에서는 ‘문화DNA’에 대한 이해 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보겠습니다.

한 남자가 스키 리조트에서 리프트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갤럭시 기어를 보여준다. 여자는 갤럭시 기어를 보자마자 남자에게 반한다. 한국 광고에 친숙한 사람은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미국 누리꾼들은 이 광고를 보고 “삼성이 애플하고 경쟁하는 줄 알았더니 오케이 큐피드(미국 온라인 커플 사이트)와 경쟁하는 것이었어?” 등 조롱의 리플을 수도 없이 달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삼성전자가 2013년에 수많은 광고를 냈지만, 최악의 광고는 막판에 내놓으려고 아껴 둔 것 같다”며 올해 나온 광고 중 ‘가장 저질’(cheesiest)이라고 평했다. 이틀 만인 23일 해당 광고의 조회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으며 ‘싫어요’ 클릭수가 ‘좋아요’의 6배에 달했다.

삼성기어 광고의 실패 원인 : 서양 언어구조에 대한 관심 부족

사실 서양 언어구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실수는 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갤럭시 기어의 경우 서양인들의 정서상 그것을 소지한 이성에게 한눈에 반할 만큼 멋지고 성적 매력을 발휘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 방식의 마케팅으로는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는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의 ‘지도’라고도 할 수 있는 언어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 광고에서는 클래식한 느낌을 얻을 수 없었다

미국인들은 멋진 상품을 보면 ‘classy!’라고 외친다. 이 단어는 멋지다, 고급스럽다, 소위 ‘있어 보인다’, 품격 있다, 섹시하다 등의 의미와 뉘앙스로 쓰인다. 이 단어의 어원은 ‘사회 계급’을 의미하는 단어 ‘class’다. ‘Class’는 ‘부르다’를 뜻하는 ‘call’과 같은 뿌리를 가졌다. 로마시대에 병무 담당자들은 징집된 병사들을 마을별로 동네 앞에서 호명(call)을 해서 데려갔다. 징병자를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순으로 호명했고 로마 군인의 계급은 아버지의 재산 정도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class’는 점차 군대에서의 계급과 사회 계층을 동시에 일컫는 말로 발전했다.


훗날 로마제국은 시민을 보유 자산 정도에 따라 5개의 법적인 등급, 즉 ‘class’로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이 5개 등급에 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class를 부여받았다’를 뜻하던 ‘classicus’가 ‘부자’로 의미가 확장됐다. 클래식한 스타일은 부와 권력, 높은 문화 수준과 안목의 상징이 돼서 오늘날까지 ‘classy’라는 칭찬의 뉘앙스로 남아 있다.


이 단어를 수천 년간 그런 뉘앙스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서양 소비자들의 인문학적 배경을 알면, 클래식(classic)과 클래시(classy)가 같은 어원에서 온 만큼 이들에게는 한눈에 반할 만한 섹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예스러움과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처: 유튜브캡처
한국어로 의역하면 "준비됐습니까?"를 의미한다

삼성 광고에서 사용된 언어 회로는 첨단 기기인 갤럭시 기어를 미국 소비자로 하여금 ‘섹시할 만큼 고급스럽다’라는 이미지와 결합시키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문화 DNA는 첨단 소재로 만든 첨단 기기와 외형적 매력을 연결하기 힘들다. 아이폰을 유리 등 고전적 소재로 만드는 것도 서구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서구의 보통 여성들에게 공대생이나 첨단 테크놀로지 물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


이런 문화 DNA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갤럭시 기어를 보고 예쁜 여자가 한눈에 반한다는 콘셉트의 광고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일으켜 혹평을 받았던 셈이다. 소비자의 문화 DNA를 간과한 광고는 소비자들의 격렬한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문화DNA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문화DNA, 소비행태를 좌우한다

문화는 소비자들의 눈에 걸린, 그러나 벗길 수 없는 색안경이다. 문화 색안경은 자라온 환경, 접해온 미술, 음악, 전통, 전설, 책, 학창 시절의 교과 과정 등을 총망라한 인문학적 기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인문학적 배경 지식에 따라 같은 상품 디자인, 상품명, 광고 문구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문화생활에서 얻은 지식 프레임 안에서 사물과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운 것, 예를 들어 집에서 자주 들은 말, 학교 수업시간에 읽은 소설과 시, 라디오에서 들었던 음악과 TV 쇼 같은 것과 관련이 있는 상품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호의가 생기고 구매 욕구가 발동하는 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 소비그룹의 ‘취향’을 결정짓는 소비자들의 문화 배경 지식과 안목을 그 소비 집단의 ‘문화DNA’라고 부른다.

출처: DBR

요즘을 디자인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 DNA가 서로 다르면 미적 기준도 달라져 같은 디자인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고(故)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교육 배경에 따라서 안목과 취향에 얼마나 큰 격차가 생기는지를 연구한 내용을 실었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그는 실험 대상군을 인텔리, 전문직, 노동자 계층으로 나눠 각각 3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다. 그 3곡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발췌한 퓨가, 바그너의 ‘발키리의 행진’, 스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이었다. 조사 결과 인텔리 계층은 바흐, 전문직은 바그너, 노동직 계층은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가장 ‘아름답다’라고 답했다.


부르디외 박사는 이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안목과 소비 취향이 그 사람의 문화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타깃 고객층을 세분화하는 데는 연령, 국적, 성별보다 문화 취향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 전공자와 공대 전공자가 구매하는 물건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출처: DBR

사람의 DNA는 세포 속 게놈 지도 속에 들어 있다. 한 문화권의 게놈 코드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사용해온 어휘 속에 들어 있다. 외국인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경우 외국어 어원 속에 숨어 있는 문화 DNA를 발견하는 안목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사 제품을 타깃 고객에게 알릴까?

프랑스 르노 사가 대주주인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은 CUV 라인인 ‘쥬크’에 아날로그 시계를 탑재했다. ‘쥬크’의 한국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 한국인 고객이 ‘다 좋은데 웬 최신 자동차에 아날로그예요?’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에 대한 딜러의 답변은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입니다’였다. 정확한 답변이다. 닛산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이미 미국 소비자들의 문화 DNA 안에 classy와 classic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여러 시장 진출 경험을 통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class’라는 말은 로마에서 유래됐다

classic과 classy의 관계는 ‘class’, 즉 사회 계급에 민감한 고급 소비자 계층일수록 두드러지기 때문에 서구 디자이너들은 비싼 상품일수록 예스럽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Classy 외에도 서양 언어에서의 ‘고급스럽다’의 뉘앙스를 가진 단어들은 반드시 ‘남과 다르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미국에서는 흔히 고객에게 ‘취향이 고급입니다’는 표현을 하려면 ‘discrimina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직역하면 ‘차별할 줄 안다’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 다 쓰는 보편적인 물건을 쓰지 않는 것을 고급 취향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특권을 뜻하는 ‘Privilege’도 ‘뜯어내다’를 뜻하는 ‘Pry’, 또는 단체와 구분된 개인을 뜻하는 ‘Private’과 같은 어원이다.


반대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도 서양인들의 문화 DNA는 쉽게 발견된다. Vulgar는 ‘널리 퍼졌다’로 쓰이지만 ‘천박하다’로도 쓰인다. Mean은 원래 ‘수학적 평균’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잔인하다, 도리 없다’로도 쓰인다. Common은 ‘보통’ ‘평범한’ ‘흔한’이지만 ‘지루하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만큼 우리는 튀지 않는 것을 좋게 여기지만 서양인들은 튀지 않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문화 DNA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말로 직역하면 욕으로 들릴 만한 extraordinary(규정에 안 맞는다), remarkable(찍힐 만큼 별나다) 등이 서양에서는 최고의 찬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전혀 다른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한국 젊은이들의 소비 패턴마저 바꾸고 행동 형태까지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서구화된 젊은 소비자들은 판매자가 ‘요즘 이런 거 많이들 해요’라는 말로 구매를 권하면 짜증을 낸다. 이들은 이미 흔한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기는 서구 사고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게다가 문화 DNA는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동안 기술과 문화를 발명하고 퍼뜨리는 입장에 있는 강대국에서 배우는 입장에 놓인 개발도상국으로 무의식중에 전파돼 왔으니 우리의 소비자 취향도 서양 문화 쪽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과 문화 DNA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개척 중인 동남아 소비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서양 인문학적 관점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1595년부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가 진출해서 각 지역의 호족 왕들을 자사 직원처럼 부리더니 1800년부터는 아예 네덜란드 영토로 편입시켜 250년 가까이 식민지로 통치했다. 네덜란드 문화가 인도네시아인들의 고유문화 DNA에 결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 특히 한국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하는 베트남 시장도 마찬가지다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100여 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여서 국민들은 싫건 좋건 프랑스의 철학, 이념,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도시 계획까지 문화 DNA에 각인됐다. 필리핀에는 1521년, 스페인이 들어왔는데 1898년 미국 식민지로 바뀔 때까지 스페인 왕실의 지배를 받아 스페인어, 문화, 종교, 건축 디자인 등을 자국 문화와 합쳤다.


중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상업 지역으로 떠오른 상하이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공동 출자로 만들어진 상업 도시고, 칭다오는 오랫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홍콩은 100년간 영국령이었다. 이처럼 중국도 지역별로 나뉘어 약 300여 년간 유럽, 미국에 예속되거나 저항하면서 고유의 언어, 사고방식 등이 서양 것과 뒤섞여 소비자들의 문화 DNA에 유럽 인문학이 서양 대중문화와 함께 고유문화에 얽혀 들었다.


아시아 시장도 서양 문화 유입과 결합 경로,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현지 소비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행동 패턴을 제대로 예측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서양 인문학의 배경 지식과 문화 DNA를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 경쟁 시대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의 필수 덕목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149호
필자 조승연

필자 약력

-오리진보카 대표

-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인터비즈 박성준 정리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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