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이것' 때문에 삼성의 역사가 바뀌었다?

조회수 2019. 8. 11. 10: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987년 8월, 1M D램 양산을 위한 삼성의 반도체 공장 3라인이 착공됐다. 故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왜 늦느냐? 빨리 해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라며 자신감으로 반도체 투자를 밀어붙인 탓이다. 임직원들은 그동안 누적된 반도체 사업 적자 때문에 목숨 걸고 투자를 말렸다. 하지만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삼성의 역사가 바뀌었다.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감(感)의 경영이다?

1983년 3월 15일 삼성전자는 1984년 1라인(64K D램 양산라인), 1985년 2라인(256K D램 양산라인)을 준공하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기초 기술과 경제 규모로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 현실도 암담했다. 1984년 8월 삼성이 64K D램을 출하하자 미국 마이크론(Micron) 등이 256K D램을 출시하고 64K D램의 가격을 크게 내렸다. 후발업체를 견제하는 흔한 전략이었다. 1986년 256K D램이 본격적으로 출하됐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1985년 시작된 세계적 불황으로 반도체 사업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갔다. “반도체 사업 때문에 삼성그룹이 위험하다"라는 말이 삼성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임원들은 2라인을 너무 빨리 지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3라인(1M D램 양산라인)건설을 지시했다. 임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회장을 말려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을 걸고 삼성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 삼성 반도체 이야기
3라인 착공식에서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맨 우측)이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8월에 3라인 착공식이 끝나고 같은 해 11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87년 말 반도체 경기가 호황 국면으로 진입하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질린 일본과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미루고 일부는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인텔도 이때 메모리 사업을 접었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삼성전자는 1, 2, 3라인을 풀가동하고도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했고, 1988년엔 그동안의 적자를 모두 상쇄하고 흑자로 전환했다.


혹자는 이를 이병철 선대 회장의 ‘감(感)의 경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감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았다. 노련했지만 노련함만을 믿고 비즈니스에 뛰어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병철 회장은 무슨 생각으로 모두가 주저하던 3라인 투자를 재촉했던 것일까?

한국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끼친 의외의 요인

출처: 위키백과
1980년대 소련에서 건조한 핵추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당시 미국의 공격형 잠수함(SSN)이었던 LA급 잠수함보다 소음이 적다고 알려졌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1980년대 초,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일명 ‘잠수함 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 발생했다. 소련 잠수함의 움직임이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자 미국은 소련 잠수함의 저소음화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일본의 도시바(Toshiba)가 '고성능 스크류 제작용 기계'를 비밀리에 소련에 수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도시바 사장은 사임하고 미국에 공개 사과를 하는 등 악화된 미국 여론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일 감정은 급격히 악화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일 간 반도체 무역마찰은 심화되고 있었던 터에 ‘잠수함 사건’은 미국 업체들의 일본에 대한 보복의 계기가 됐다. 이때 이병철 회장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과 일본의 갈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세계의 움직임을 읽었다.

1985년 6월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7개 반도체 회사를 국제무역센터(ITC)에 제소했다. 미 정부는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986년 7월 31일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됐고, 일본은 반도체 출고 가격을 올리며 대미 수출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산 반도체가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커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삼성의 반도체 3라인 투자는 감에 의존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치밀하게 연결되고 계산된 전략이었다. 세계의 정세를 지켜보던 삼성은 경영과 무관해 보이는 미·소 냉전의 흐름을 고려하면서 시장을 전망했다. 이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감의 경영’이라고 불렀겠지만 실제는 뜻밖의 기회를 활용한 철저한 분석경영이었던 셈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48호
필자 유귀훈

인터비즈 박성지 정리 / 미표기 이미지 출처는 게티이미지뱅크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