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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에 열광하는 이유는?

조회수 2019. 6. 20.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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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사람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른바 착한 기업에 찬사를 보낸다. '갓뚜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오뚜기나 유한양행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디어 콘텐츠를 대하는 시청자들의 태도는 다르다. 시청자들은 '노블리스' 모습에 열광하기 보다는 오히려 탐욕적이고 속물적인 타락한 상류층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은 왜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에 열광하는 것일까? DBR 271호에 실린 기사 <도덕적 대중,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하다>를 통해 알아보자. 원문기사 더보기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상류층의 모습 : 도덕적 타락

출처: 스카이캐슬 공식 홈페이지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폭로’는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형적인 문법 중 하나다. 최근 폭발적 인기를 끈 드라마 'SKY 캐슬'도 대한민국 상위 0.1%가 사는 SKY 캐슬에서 교육을 매개로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상류층의 비도덕적인 모습을 그렸다. 한동안 장안을 뜨겁게 달군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봤을까?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이라는 별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입시에 미쳐 날뛰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느라 바빴다. 교육을 매개로 돈·권력·지위를 독점하려 발버둥 치는 그들의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집착을 비웃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주어진 풍부한 기회의 사다리들이 우리에게는 감쪽같이 감춰져 있었다는 데 분노하면서 말이다.

출처: 풍문으로 들었소 공식 홈페이지

2015년 방영됐던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도 한번 떠올려보자.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 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었다"라는 드라마 공식 소개 문구처럼 대중은 이 드라마를 통해 ‘풍문’으로만 들려오던 그들의 은밀한 이면을 구경했다. 억 소리가 나게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패션, 사치스럽고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뒤에 숨겨진 천박한 행태와 속물근성을 향한 대중의 호기심이 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출처: 밀회 공식 홈페이지

2014년 JT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밀회’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완벽하게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들의 생활도 겉에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울까? 그들에게도 민낯이 있을 텐데, 대체 어떤 민낯을 하고 있을까? 왠지 그 민낯이 깨끗하고 선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반대로 타락, 부패했고 부도덕할 것만 같다.

일견 단순하고 순진해 보이는 대중의 호기심은 사실 일정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대중보다 우월한 상류층이 아닌, 대중보다 못한, 그래서 헐뜯을 수 있는 상류층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문화 흐름은 근대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은 왜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에 열광하는가?

근대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부르주아는 기존의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을 문란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계층으로 규정하면서 문화적, 상징적인 혁명을 수행해갔다. 예컨대, 일생 동안 한 사람에게만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을 바친다는 ‘낭만적 사랑’의 관념은 바로 이러한 혁명의 일환으로 형성된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당시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통해 부의 분산을 막고 지위와 권력을 세습했다. 그러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는 어려워서 귀족 사회에서는 공공연히 애인과 정부(情夫/情婦)를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부르주아는 바로 이 점을 꼬집어 귀족의 성적 문란, 타락을 비판하며 자신을 귀족과는 반대되는 정결하고 도덕적인 계층으로 표상했다.

애인을 여럿 두는 귀족과 달리 결혼한 상대에게 사랑과 충실을 바치는 계층, 불로소득으로 흥청망청 사치나 즐기는 귀족과 반대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부를 쌓은 계층이라는 부르주아의 자기상은 이렇게 일정 부분 귀족과의 대조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사랑, 성공과 같은 추상적 관념의 재규정을 둘러싼 문화적 투쟁의 심층에는 귀족이 부와 지위를 독점하는 체제에 대한 부르주아의 공격이 존재했다. 오늘날 대중도 도덕성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매개로 돈과 권력을 독차지한 기득권층에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처: 네이버 영화 <버닝>
(영화 버닝의 금수저 벤과 흙수저 종수)

과거와 같은 공식적인 신분질서는 폐지됐다. 그러나 대중은 자본주의 질서 아래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로 진입했다. 우리는 사회 이면에 기득권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굳건한 구조가 존재함을 알지만,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회 구조에 화는 나지만, 실체는 알 수 없다. 불명확한 적대감만이 쌓여갈 뿐이다.

다만 갈등이 심해질수록 대중 사이에는 '뭔가 잘못됐다, 누군가가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 나는 기득권층이 아니다, 기득권층이 나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고 있다'와 같은 불명확하지만 아주 강렬한 느낌들이 더욱 많이 공유된다. 그러한 느낌들이 뚜렷하게 결집하는 결절점이 바로 '갑질'처럼 기득권층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부도덕은 기득권층의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방아쇠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처럼만 보이는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폭로’를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는 사실 이 같은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불명확한 적대감을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71호
필자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인터비즈 김연우, 장재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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