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를 향한 오타쿠적 집념.. LG전자의 이색제품

조회수 2019. 6. 16. 12: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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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표는 기술을 상징한다"
"기술의 상징 금성"

199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 전자제품 시장을 휩쓸었던 금성사의 명카피들이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카피에서 드러나듯이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회사였다. 지금도 금성사 로고가 박힌 세탁기나 선풍기를 쓰고 있는 집이 있을 정도로, 제품 하나는 무식하게 튼튼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신제품도 과감하게 내놓았다.


기술 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해진 아이폰 혁명 이후 지금까지도 집요할 정도로 기술에만 매달린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기술만 최고면 잘 팔린다는 생각은 전략 스마트폰 모델인 V30과 G시리즈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아는 내용이니 슬픈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자.)


LG전자는 빠른 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시장에 없는 제품을 출시하고 선점해 승승장구해온 회사였다. 현재 명실상부 한국 최고 기업은 삼성전자지만, 국내 가전역사만 돌이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LG가 최초 제품을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LG전자가 신시장을 보고 만든 국산 최초 제품들

TV, 냉장고

출처: LG전자
(1966년 8월 국산 첫 흑백텔레비전인 VD-191)
출처: LG전자
(1965년 눈표냉장고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최초의 국산 냉장고 GR-120.)

일반 세탁기 + 통돌이 세탁기

(1969년 금성사가 출시한 국내최초 세탁기 '백조'. 광고 이미지는 1981년 TV광고)

이외에도 LG전자는 국내 최초의 라디오와 선풍기 등을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이들 첫 국산 제품들은 외면받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백조세탁기의 경우, 당시 일반 가정에서 사치품으로 여기고 외면한 탓에 195대만 판 뒤 첫 해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당초 1500대를 팔려고 했던 계획에도 큰 차질이 빚어졌다. LG전자가 당시 외산 냉장고에 비해 절반값 정도인 8만 원에 내놓은 눈표냉장고 또한 고가 사치품이라는 이유로 판매가 부진했다. 1961년 만든 국산 최초 선풍기 또한 전력 소비량이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생산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실패작으로 남게...될 줄 알았는데, 모두 경제수준이 높아진 1970년대 들어선 필수품의 반열에 오른다.

출처: LG전자
(1996년 LG전자는 업계 최초로 통이 돌아가는 통돌이 세탁기를 개발해 돌풍을 일으켰다. 시장 출시 후 게재한 통돌이 광고)

LG전자는 기술을 바탕으로 최초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성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때론 묘한 집착을 보이게 된다. 집착을 하다보면 오타쿠가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때론 뜬금없는 제품을 내놓아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제품들이다.

최초를 향한 오타쿠적 집념(?)...LG전자의 이색제품

태블릿의 원형? 아이패드 보다 8년 앞선 아이패드

LG전자는 2001년 8.4인치 LCD디스플레이에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스마트기기를 선보였다. 제품명은 '디지털 아이패드' (국내명 : 웹패드). 지금으로 보면 태블릿PC의 원형처럼 보인다. 2년 동안 10여 명의 연구인력과 20억 원이 투입된 제품이었다. 애플이 자사 태블릿 아이패드를 선보인 시점이 2009년이었으니 최소 8년은 앞선 제품이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와 애플간의 특허소송 국면에서 애플 제품의 독창성을 부인하는 근거로 회자되기도 했다.

차세대PC 경쟁 국면에서 치고 나가려는 전략이었으나.. 미비한 무선 네트워크 기술, 낮은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 신시장 확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세계 최초의 음주측정폰

LG전자는 2005년 6월 세계 최초로 휴대폰에 음주 측정 센서를 탑재, 음주 자가진단 기능을 구현한 ‘레이싱폰'을 선보였다. 음주 상태에서 입김을 불면 혈중 알코올농도가 내부 LCD 에 자동 표시되는 ‘음주 자가진단’ 기능을 지원해 휴대폰 사용자 스스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숙취해소방법과 음주 후 건강수칙 등이 내장돼 있었다고;;

개발자들이 레이싱이라는 키워드에 꽂힌 탓에 핸드폰 폴더를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도 자동차 시동음과 출발음이었다.... 디자인을 위해서 이탈리아 출신 스포츠카 디자이너를 섭외해 차 매니아들을 공략했다. 차량 매니아와 술꾼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아이디어라니, 실로 놀랍다.

최초의 영상통화 시계

LG전자는 200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전시회 'CES 2009'에서 영상통화가 가능한 시계를 선보였다. 제품명은 3세대 터치 워치폰.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기능과 MP3 플레이어 등이 포함된 모델이었다.



다들 스마트워치를 시계로 볼지, 스마트폰과 연결하는 웨어러블 기기로 해석한지 고민할 때 LG전자는 손목에 찰 수 있는 휴대폰이라고 설명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가격은 150만 원에 책정돼 시장에서 반향은 제한적이었다.

LG의 영상통화에 대한 집념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7년 금성통신의 자체 연구소에 박사급 2명, 연구원 6명으로 구성된 특별팀을 구성해 영상통화기술은 물론이고 오디오 카세트에 전화기를 연결해 녹화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 역시 고가의 장비 치고는 실용성이 떨어져 사장됐다.

출처: 매일경제/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매일경제 10월 7일자 24면. 금성통신의 화상전화기 관련 기사. 오디오카세트에도 녹음이 가능하다고 쓰여있다. 진정한 괴작.)

이색제품인줄 알았는데...결국 신시장 만들어낸 제품도

이밖에도 최초의 무선 충전형 도크형 스피커인 아하프리를 비롯해 다양한 괴작들과 다수의 실패작을 만들어낸 LG지만, 신제품으로 꿋꿋하게 신시장을 만든 제품들도 있다.

출처: LG전자
(LG스타일러)

대표적인 사례가 트롬 스타일러다. 트롬 스타일러는 양복, 블라우스, 니트 등 한번 입고 세탁하기 애매한 의류를 항상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도록 유지해주는 가정용 의류 관리기로 2011년 출시됐다. 스팀과 무빙행거를 이용해 옷의 구김과 냄새를 제거하는 제품이다.



현재는 의류관리기 시장을 선점한 제품으로 일컬어지지만, 출시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 제품이었다. 세상에 없던 가전이라는 별칭을 달고 나왔지만, 세상에 왜 필요한지도 설득하지 못해 판매가 부진했다. 또 다른 이색제품, 괴작 정도로 그칠 줄 알았으나... 최근 미세먼지의 영향과 신혼 혼수 필수품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2016년부터 판매량이 급증. 현재 월 1만 대씩 팔리고 있다. 삼성전자 등 주요 제조사들이 뒤늦게 전략을 짜고 부랴부랴 시장에 합류하는 제품군이 됐다.

출처: LG전자
(트롬 트윈워시)

트롬 트윈워시도 블루오션을 개척한 사례에 해당된다. 2015년 세계 최초로 드럼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 두 대가 붙어 있는 듀얼 세탁기로 출시돼 현재 세계 8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LG전자의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최근 보도 등에 따르면 침실 등에 두는 협탁에 냉장고와 공기청정기 등을 결합하는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달 특허청에 홈브루와 홀브류라는 상표권도 출원했다. 가정용 수제 맥주 제조기 출시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LG전자가 만든 가정용 맥주 제조기의 출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왜 매번 새로운 제품에 집착할까? 기존 가전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새로 개척해 스스로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엔 가전 전반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놓은 LG전자의 기술 경쟁력도 뒷받침돼 있다. 기술이라는 기초 체력이 있기에 과감한 실행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의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라는 제품명이 의류관리기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스팀(세탁기), 온도 관리(냉장고), 기류 제어(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트윈워시도 세탁기 라인을 모두 가지고 있는 데다가 기존 제품 개발 노하우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제품이었다. 블루오션을 공략하는 도전은 단순히 발상의 전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LG전자는 기술에 대한 집착으로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받는 데다가 실제로 시장을 잘 못 읽어 실패도 거듭했다. 감성의 시대에 기술만을 앞세우다 보니 빈축을 샀다. 내실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성에는 이러한 미련함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기술이라는 원동력이 충분히 뒷받침된 덕에, 시장을 뒤흔들 만한 영향력은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훗날 LG전자는 어떻게 기억될까? 뛰어난 기술이라는 장점과 감성의 부재라는 단점 중 어느 쪽이 성패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까. 이 극적인 대조로 인해 LG전자는 성장과 퇴보를 번갈아 거듭하고 있다. 역사는 지금을 LG전자의 갈림길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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