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승무원과 칠면조의 공통점은?

조회수 2019. 6. 14.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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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면 보통 뭘 하는가?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른 뒤 거울이 있으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바뀌는 층의 숫자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회사에서 타면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방송을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다. 가끔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거나 멍 때리곤 한다. 엘리베이터가 원래 그렇다. 목적 층에 가기 위해 아주 잠시 동안 몸을 맡기는 그런 곳이니까.


그런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승무원을 만난다. 인공지능과 자율 주행차를 논하는 시대에 엘리베이터 승무원이라니. 말도 안되는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1991년 5층 이상 상업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승무원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 리우 시내의 웬만한 빌딩에선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경우가 드물다.

출처: AFP통신 유튜브 영상 캡처
(브라질 리우에서 근무하는 엘리베이터 승무원)

승무원들은 의자에 앉아 몇 층을 가는지 알려주면 버튼을 눌러준다. 승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빌딩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잘 알게 되는 사람도 생기고 승객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기껏해야 하루에 1분 정도겠지만 자신이 운전하는 작은 공간에 매일같이 타는 승객들의 얼굴에서 그들의 그날 기분을 읽고 세상을 읽는다. 엘리베이터 승무원 노조에 따르면 아직도 약 4000명의 승무원이 이렇게 리우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렇다. 당연히 노조도 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을 덮친 불경기 때문에 많은 엘리베이터 승무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빌딩 관리 비용을 줄이 위해서다. 그나마 남은 엘리베이터 승무원들도 머지 않아 모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제정된 엘리베이터 승무원 의무화 법을 올해 초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승무원들의 존재가 빌딩 주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이유였다.



엘리베이터 승무원 노조는 투쟁 중이다. 하지만 투쟁의 노선은 과거와 다르다. 한 때 더 나은 처우와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을 했던 노조는 이젠 생존만을 바랄 뿐이다. 승무원들은 한 달에 약 30만 원을 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은 생각지도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에 남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승무원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직업의 수명이 연장돼 봐야 기껏 몇 년뿐이라는 사실을 승무원들도 잘 알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사라져가는 엘리베이터 승무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앞으로 많은 직업들이 엘리베이터 승무원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국내 백화점에서 밝은 색의 유니폼을 입은 엘리베이터 승무원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그건 1980년대 일이었다. 1991년의 브라질에서는 무슨 이유에서건 엘리베이터 승무원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이유였을 수도 있고 일자리 수를 늘리기 위한 법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있으면 2019년이 된 지금은 엘리베이터 승무원의 존재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자동화된 엘리베이터들이 즐비한데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걸 굳이 타인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사실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리우의 엘리베이터 승무원들이 처한 상황을 한 번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직업 자체가 불필요해졌다는 점, 임금 수준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는 점, 비용절감 차원에서 없앤다는 점, 노조가 투쟁 중이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 직업을 잃을 승무원들이 다른 직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 이런 점들은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수 많은 직업들이 처한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많은 직업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천천히 사라져갈 것이다.

여기서 배울 점이 있다면 현재나 과거의 시각으로 미래를 봐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은 안정적이고 별로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직업이 미래에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저서 ‘안티프래질 Antifragile’에서 칠면조를 통해 이와 같은 논리를 설명한다. 칠면조는 태어나면서부터 안전하고 풍족한 삶을 산다. 살균된 환경에서 매일 먹이를 먹고 보살핌을 받는다. 이들의 삶은 아주 편하다. 그러다가 추수감사절(미국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잡아 먹힌다. 칠면조에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은 가장 위험했던 셈이다.

출처: 동아일보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갑작스레 사라지는 일자리들이 적지 않다. 졸업식이나 공원 행사 등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거리 사진사도 그런 직업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이 이뤄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앞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라지는 일자리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리우의 엘리베이터 승무원도 칠면조와 운명이 비슷하다. 승무원 의무화 법 덕분에 25년도 넘게 (지금의 관점에서는 필요도 없는) 직업이 유지됐지만 기술의 발달과 사회적인 변화, 비용절감 움직임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테일러 피어슨은 책 ‘직업의 종말’에서 위험은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식으로 위험이 찾아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미래를 대비해 끊임 없이 변해야 한다. 모든 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칠면조와 같은 운명이 되는 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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