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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끊으면 당신에게 나타나는 현상들

조회수 2019. 5. 25. 07: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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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커피 중독은 고교 시절 시험기간에 시작됐다. 그때는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마셨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뭐 이런 빨간색 브랜드였던 것 같다. 맛은 별로였다.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마법의 검은 물'이라는 효용성 하나로 낚였다. 여러 번 자체 테스트를 해본 결과 콜라보다 잠을 쫓는 면에서는 성능이 좋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자뎅이라는 커피 전문점에도 몇 번 드나들었고 연한 헤이즐넛 커피를 한동안 좋아했었다. 아 이런 맛에 커피를 마시는구나. 대학 때도 시험 기간엔 커피를 많이 마시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잠이 달아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커피가 너무 연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진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진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이때 처음 시도를 해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진한 커피가 좋아졌다.  

출처: 맥심 공식 유튜브
([맥심 모카골드 심플라떼] 심플하게 고소하게 35s_B)

연애를 하면서도 커피를 많이 마셨다. 서로를 알아가는 초반엔 술보다는 커피가 나으니까. 알려다가 못 알게 되는 여자가 많아질수록 마신 커피의 양은 늘어만 갔고 쓴맛은 더 좋아졌다. 그러다가 취직을 했고 외국계 커피 전문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피는 더 많이 마셨다. 월급도 받겠다, 커피집은 널렸겠다, 오전에 아메리카노 한 잔, 오후에 카페라테 한 잔을 거의 공식처럼 정해놓고 마셨다. 회사 앞의 단골 커피 전문점에 가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마시는 음료를 준비해주는 수준까지 올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일을 그만두고 시골로 온 지 3년. 커피를 끊기로 했다. 내겐 거의 피나 다름없는 커피다. 그런 커피를 왜? 시골에서 단순하게 살다 보니 커피 내려먹기가 거추장스러워졌다. 또 커피를 끊으면 돈을 아낄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무엇인가에 의존하고 살지 않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산 커피 원두를 다 먹은 날, 원두 그라인더와 드리퍼, 모카팟 및 남은 종이 필터를 중고 가계에 가져다주고 왔다. 커피 용품을 치우니 좁았던 부엌이 조금 넓어 보여서 좋았다.

다음은 커피를 끊었을 때 쓴 일지다

워낙 커피를 많이 마셨던 탓에 카페인 금단 증상이 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그리고 역시나 졸리다.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밤에 잘 잤음에도 낮잠도 1시간 넘게 잤다. (난 낮잠을 잘 안 자는 편이다)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고 약간의 소화불량 증세도 있는 것 같다. 담배 끊은 지 10년 정도 됐는데, 정신적 의존도는 담배가 훨씬 세지만 몸에 나타나는 금단 증상은 카페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하루 400mg(커피 두세 잔)까지는 카페인을 섭취해도 괜찮다지만 이렇게 금단 증상이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밤에 9시간 동안 완전 꿀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매우 개운한 느낌이 들어 '아니 벌써 금단증상이 사라진 건가?' 했다가 오전 11시부터 졸리면서 '역시나 아직은'으로 선회. 머리가 매우 아프다. 지끈지끈 끊이지 않고 하루 종일 아프다. 집중을 요하는 일이나 공부는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낮잠은 참고 자지 않았지만 졸리기도 하고 두통으로 별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잠자리에 들 예정.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깼다. 일어날 때 느낌이 가뿐하다. 담배를 끊었을 때에 비견될 정도. 정도는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졸리고 머리가 아프다. 낮잠은 또 잤고 참지 못하고 아스피린을 좀 먹었다. 약간 몽롱한 상태는 계속된다. 할 일이 있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제대로 집중해서 작업을 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식사 준비나 간단한 집안 일과 같이 몸을 조금 움직이는 일은 별문제 없이 할 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 조금 힘들게 느껴지는 듯. 운전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4일차는 3일차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그나마 머리도 조금만 아프고 졸린 것도 조금만 졸렸다. 아직도 금단 증상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커피 끊은 후 가장 평온한 하루였다고 할까.... 그래도 컨디션이 100%는 아닌 것 같은 느낌. 내일은 어떨지 기대.

아 오늘쯤이면 다 끝날 줄 알았건만.... 졸린 건 이제 거의 사라졌으나, 두통은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금단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디카페인 커피를 사 마실 기회가 생긴다. 아직도 가끔 커피 생각이 나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뭐하러 그리 나쁘지도 않은 커피를 사서 고생하며 줄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겠어. 너무 힘들면 하다 말지 뭐. 카페인은 집중력을 높여주고 좋은 점도 많다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시던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카페인을 흡입하지 않았을 때) 몸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현대인은 비타민보다도 카페인을 더 많이 섭취한다는데 인체에 해롭지 않은 적은 양이나마 20년 넘게 꾸준히 장복하면서 몸이 의존을 하게 된 걸까. 고통스러워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카페인이 주는 공포가 더 놀라웠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05년 스타벅스 커피를 사 마시는 대신 싼 일반 커피를 마시거나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 30년 동안 약 500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한 잔에 평균 3달러인 스타벅스 커피를 하루 한 잔씩 주 5일 마시면 연간 700달러가 든다. 그러나 0.2달러짜리 일반 커피를 마시거나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 이자까지 계산했을 때 10년 후면 9227달러, 30년 후면 무려 5만5341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요즘엔 커피값이 이보다는 올랐고 이자율은 높지 않으니 절약할 수 있는 가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실천은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 사소한 행동이 모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결국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커피를 끊었다고 내 인생이 바뀐 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아침마다 검정색 물을 마시겠다고 기를 쓰고 살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든, 건강을 위해서든, 또는 인생을 위해서든 작은 습관을 바꾸면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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