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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조회수 2019. 5. 18.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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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총알을 막는다는 뜻을 담은 방탄소년단. 아이돌 그룹에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선 이름이다.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2013년 데뷔해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2014년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상남자'라는 곡으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세 아이돌이라기보다는 '루키' 또는 '기대주' 정도의 느낌이 강했다. 데뷔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오른 선배 아이돌 빅뱅이나 엑소에 비하면 아쉬운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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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theK (원더케이) 공식 유튜브
([MV] BTS(방탄소년단) _ Boy In Luv(상남자))

하지만 천천히 내공을 쌓으며 실력을 끌어올리고 팬덤을 키우더니 결국 날아올랐다. 중소기획사의 아이돌, 소위 '흙수저 아이돌'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이 이 자리에까지 오를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방탄소년단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자신들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어떻게 막강한 경쟁자들 틈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보했을까.

출처: DBR

국내와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다

출처: 동아일보

그동안 대부분의 아이돌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궤도를 다진 뒤 해외로 진출했다. 그룹 동방신기는 2003년 데뷔해 2005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빅뱅의 경우 2006년 8월에 데뷔해 2008년 1월 일본에 앨범을 발매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병행했다. 이후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아시아 투어를 시작했다.


방탄의 경우는 좀 달랐다. 활발한 SNS 활동으로 데뷔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해외 K-POP 팬들에게도 노출되기 시작한 방탄은 한국에서 인기를 쌓은 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성장 전략'을 선택했다. 2013년 데뷔 후 그 해 12월 일본에서 쇼케이스를 열며 해외에 얼굴을 알린 뒤 2014년 독일, 스웨덴 등 유럽은 물론 브라질 등에서도 팬미팅을 열었다. 일본 외에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대만 등 아시아에서 연달아 공연을 개최하며 보폭을 넓히더니 2015년에는 미국과 호주, 멕시코, 칠레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이렇게 한국과 해외를 동시에 공략하는 가운데 해외에서 더 뜨거운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신호탄은 2014년 8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K-pop 컨벤션 '케이콘(K-con)'이었다. 방탄은 매력적인 퍼포먼스로 단숨에 해외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2015년 4월 공개한 미니앨범 '화양연화 pt.1'의 수록곡 '쩔어'의 뮤직비디오가 해외 팬들의 꾸준한 클릭 속에 1억 뷰를 돌파했다.

글로벌 시장 트렌드에 부합한 힙합 음악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음악이다. 음악적 매력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활발하게 SNS 소통을 하고 퍼포먼스가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팬덤을 쌓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많은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힙합'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는다. 기존의 K-pop 그룹들이 밝고 경쾌한 댄스음악에 머물렀다면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그룹들이 잘 선택하지 않았던 힙합음악을 선택했다. 따라서 원래 K-pop을 좋아했던 해외 마니아들을 넘어 팬덤을 확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사실 힙합을 선택하는데 리스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니아들이 많은 힙합에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아이돌이 뭣도 모르고 힙합에 손을 댔다"는 빈축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방탄의 리더이자 주축 멤버인 랩몬스터와 슈가는 연습생이 되기 전부터 힙합에 빠져 있었다. 직접 믹스 테이프를 만들고 길거리에서 랩배틀을 즐기던 것이 이들의 일상이었다. 빅히트 관계자는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본래 힙합이었고, 힙합이 글로벌 팬들에게 다가가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내다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방탄의 성공 뒤에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이 있었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 출신인 방시혁 대표가 직접 트레이닝한 방탄의 연습생 생활은 다른 아이돌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다른 아이돌이 주어진 곡의 소화, 칼 군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달렸다면 방시혁 대표의 주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탄은 일상, 자신들의 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노래로 만드는 과제를 해결하고 평가와 피드백을 받으며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 이를 통해 전 멤버가 작곡과 작사가 가능한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은 데뷔 이후 앨범에 멤버 랩몬스터와 슈가를 필두로 앨범 창작에 적극 참여해 왔다.


작업만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줄곧 자신들의 이야기를 곡에 녹여내고 있다. 데뷔곡 'No more dream'에서 '니 꿈은 뭐니', '삶의 주어가 되어봐'와 같은 가사로 10대들의 꿈의 의미와 고민을 담았고, '수십짜리 신발에 또 수백짜리 패딩, 수십짜리 시계에 또 으스대지 괜히'라며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청소년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이 10대들의 고민, 혼란스러운 청춘을 대변하는 가사들은 자연스레 팬들의 공감과 동질감을 자아냈다. 스타가 자신들과 동떨어진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도 잘 안 풀리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직접 작사, 작곡해서 말이다.

"파도, 파도 끝이 없다" SNS로 덕후 몰이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방탄소년단의 성공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SNS다. 방탄은 SNS를 통해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이들이 즐길 만한 놀거리와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했다. 실제로 방탄의 적지 않은 팬들은 '입덕(入+덕후)'의 계기로 풍성한 떡밥을 꼽는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유혹하는 미끼를 던지듯 팬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하며 팬들을 유인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은 해외 활동 중이거나 활동을 쉴 때도 유튜브와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했다.


이들은2013년 6월 데뷔에 앞서 연습생 시절인 2011년 7월부터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7명이 한 계정을 사용하는데 지금까지 트위터에 올린 트윗이 9600여 개, 팔로어 수는 500만 명에 달한다. 트윗 1건이 올라오면 팬들이 10만~20만 건씩 리트윗에 나선다. K-pop을 대표하는 스타 지드래곤에 비해 팔로어 수는 적지만 전체 트윗 수나 리트윗 수는 오히려 높다.


유튜브 공식 채널인 '방탄TV'를 통해서도 각종 동영상이 시시때때로 공개된다. 300만 명을 훌쩍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해당 채널에는 다양한 포맷으로 방탄소년단의 일상이 담긴다. 멤버들이 각자의 특징과 개성에 맞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예컨대 멤버 슈가는 앨범 리뷰 동영상을, 제이홉은 안무 동작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동영상을 올린다.


과거 아이돌은 '우상'이었다. 수년 간 트레이닝을 거쳐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해 무대 이외의 일상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연애는 물론이고 숙소 밖으로의 외출까지 철저히 통제되며 신비롭고 완벽한 모습만 노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2017년의 아이돌은 '신비로운 우상'이기보다는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는 친구여야 한다. 방탄소년단은 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행한 아이돌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 및 시사점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다른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국제화에 성공한 방탄소년단.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경영학적 시사점과 일반 기업에의 적용 포인트는 무엇일까.

첫째,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이다. 본 글로벌 기업은 탄생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기업을 말한다. 창업 초기부터 경영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본 글로벌 기업은 내수 시장에서 충분한 학습 과정을 거쳐 국제화를 시도하는 일반 기업에 비해 비용 부담이나 실패 위험이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적고 내수시장의 한계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는 더욱 추진해 볼만한 전략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기부터 국제 활동에 초점을 둬 왔고 혁신적인 전략과 능력 등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본 글로벌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SNS 전략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K-pop의 성공 요인은 SNS", 프랑스의 <르몽드>가 "페이스북이 K-pop의 유럽 공연을 만들었다"고 분석할 정도로 SNS는 K-pop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 국내 가수를 해외에 정식 데뷔시키려면 현지의 방송사 접촉, 홍보 등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SNS를 통하면 이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늦게 출발한 후발기업들이 짧은 기간 내 인지도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최적의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 역시 SNS라는 강력한 지원군의 도움으로 비아시아 지역에서도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셋째, 틈새시장 개척이다.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세분화된 모든 영역에 뛰어들기보다는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해 진입하고 이후 다른 분야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니치마케팅은 아래로부터 위로(bottom-up)의 시도, 즉 소수의 소비자들의 니즈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큰 시장으로 발전해가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른 그룹이 댄스음악을 중심으로 시장을 개척해 온 데 비해 방탄소년단은 힙합이라는 분야에 파고들어 다른 그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니치마켓을 개척했다. 이들의 성공은 일반 기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제한된 자원을 가진 기업이나 후발자가 시장에 진입할 때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넷째,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에는 스토리적 요소가 많다. 성장과정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젊은이들을 가사로 풀어내는 스토리적 요소가 먹혀든 것이다. 최근 스토리텔링 전략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감동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 기업조직에서의 대화 기법, 제품이나 기업의 광고, 마케팅 등에 활용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다섯째, 팬덤 전략이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국내외 열성적인 팬들이 반복해서 영상을 조회하고 이로 인해 특정 동영상이 웹페이지 메인에 노출돼 팬들이 확보되고 서로 입소문을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구전 마케팅이 이어졌다.


팬덤은 스포트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기업이나 제품도 얼마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고 출시할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온라인과 SNS의 발달로 일반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되고 온라인 팬덤이 형성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수용자의 능동적인 참여와 생산, 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변화는 팬덤을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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